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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여름 미국을 가기 위해 비자 신청을 한 적이 있다.
93년인가 미국에 갈 때 비자를 받은 적이 있으나 그 후로 갱신하지 않아 새로 발급 받아야 했다.
그런데 미국 대사관에서는 내가 반미주의자라고 분류돼 있다며 쉽게 내주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애써준 분들이 있어 다행히 비자가 나와 미국에 갈 수는 있었다.
그러나 나는 반미주의자는 아니다. 성향으로 볼 때 굳이 그렇게 분류할 수도 있겠지만, 미국의 실체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진실을 말하려고 할 뿐이지 반미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용미(用美)에 가까운 현실주의자로 분류하는 것이 온당하다고 생각한다. 유비가 간웅 조조에게 의탁하면서 때를 기다리고 힘을 길렀던 지혜가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의 외교도 미국이나 중국에 치우치지 않으며 실리를 챙기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역시 중요한 것은 미국의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는 일이다. 이게 전제되지 않으면 미국 정부와 정치인, 단체 등이 주장하는 바의 진위를 알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의 일방적 주장을 고스란히 옮기는 한국 언론의 편향을 가려낼 수 없다. 특히 조·중·동은 미국의 나팔수라는 사실을 유념하고 읽어야 한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2월28일 발표한 ‘2004년 인권보고서’에서 북한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탄압적이고 잔인한 정권 중 하나”로 규정했다. 보고서는 그 이유로 몇 가지 사례를 제시했지만, 이 정도의 사례는 미국(또는 미국 이주 앵글로색슨족)이 지난 세월 동안 저지른 만행에 비하면 ‘조족지혈’ 밖에 되지 않는다.
콜럼버스 이후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하기 전 그곳에는 2천만 명 가까운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지금 미국의 소위 인디언 인구는 25만 명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의 인종청소정책에 의한 대량의 인디언 학살이 주 원인이다. 캘리포니아와 텍사스 지역이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빼앗은 땅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오늘의 거대한 미국은 침략과 학살의 열매인 것이다.
현대사로 넘어와서 보면 패권주의적 태평양전쟁 및 원자폭탄 투하,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400만 명 이상 희생)에서의 대량학살, 중남미 독재정권 지원과 인권탄압 방조, 이라크인 20만 명 학살한 걸프전쟁과 이어지는 경제제재로 100만 명 추가 사망, 그리고 또 다시 이라크 침략전쟁으로 10만 명에 이르는 민간인 희생 등 미국의 만행은 쉬임없이 계속된다. 북한의 경제적 곤궁함도 사실은 미국의 책임이 크다.
사실이 이러할진대 도대체 미국이 무슨 염치로 인권을 논하며 남의 나라를 평가하는가? ‘세계에서 가장 탄압적이고 잔인한 정권’은 다름 아닌 미국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중국 정부가 3일 발표한 ‘2004년 미국 인권기록’이 잘 지적했듯이 “미국은 자신들의 산적한 인권문제에는 침묵한 채 다른 나라의 주권을 폭력적으로 침범해 국제적으로 끊임없이 인권 침해를 자행하는 비극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동아 3월4일자).
조·중·동은 ‘인권보고서’ 뿐 아니라 서구적 편견으로 북한의 인권 실태를 과장하는 미국의 각종 움직임을 소상히 전달하는데 충실하다. 중앙은 미 국무부가 북한 인권 국제회의를 여는 미국 인권단체 ‘프리덤 하우스’에 올해 170만 달러를 지원한다는 사실을 인권보고서 기사와 나란히 3월2자 2면 톱으로 실었다.
조선은 미국이 전 세계 독재국가를 20년 내에 민주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민주주의 증진법’을 곧 하원에 제출한다는 기사를 역시 2일자 1면 사이드에 실은 데 이어 6면을 인권보고서 기사와 더불어 도배를 해놓았다. 조선은 2면에 “한국정부의 北인권法 오해 바로잡아야” 한다는 헤리티지재단의 보고서도 소개하는 친절을 베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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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은 4일자 2면 톱 기사를 ‘민주주의 증진법’ 상정 사실로 채우고 19면 톱(‘북한 등 압박 상징적 선언’)으로 다시 상세하게 다루었다. 조선도 2일자에 이어 상정 사실을 30면 톱으로 올렸다.
언론(인)으로 대접받으려면 최소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조·중·동은 이 기본이 돼 있지 않다. ‘미국은 인권 국가인가?’ 라는 물음에 대한 성찰도 필수적이다.
그러나 같은 ‘인권보고서’라도 미국의 보고서는 1면이나 2면 등에 비중있게 싣고, 중국의 보고서는 국제면 하단에 배치한다. 균형도 성찰도 찾아볼 수 없는 저질들이다.
“미국은 자국 인권부터 챙겨라”(중앙 3월4일자 22면)나 “미국이 인권 말할 자격 있나”(동아 4일자 15면)를 1면 톱으로 배치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중앙이 전달한 ‘미국 인권기록’의 한 대목이다.
“미국 상류층 1%가 전체 부(富)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350만 명이 돌아갈 집이 없는 형편이다. 미국 사회에 뿌리깊은 인종 차별도 거론했다. 백인 가정의 순자산은 8만 8000달러. 이는 남미계 가정의 11배, 흑인 가정의 15배에 달한다. ···또 매년 40만 명의 아동이 매춘 활동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미국은 자신의 인권부터 먼저 살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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