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요.제가 어려서 집에 불질러갖구 초가지붕위로 뻐얼건 불길이 넘실넘실댈때 방안 시커먼 연기속에 아무것도 모른채 누워있다가 구사일생 살아나온 갓난아기 혜영이가 지금 딱 마흔살이 되었네요. 예쁘고 착하게 자라서 따라다니던 남자친구넘과 결혼하더니 아이셋을 낳고 '어머니,진지잡수세요.어머니.어머니.염색해 드릴께요.어머니. 어머니,목욕가요.어머니.' 요렇게 어머니어머니 우리어머니를 쉴새없이 부르짖으며 잘하구삽니다.
너무 착하고 예뻐서 가슴아픈 동생.
그런데 이동생이 어려서 공부를 못했어요. 노다지 나머지공부를 하네요. 학교끝나고 집에 가려하면 동생 담임선생님이 부르셔요. 동생 공부가르치라고. 국어책을 펴놓고 몇수십번을 따라 읽혀도 그걸 못읽어서 복도에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는 해거름이나 되어야 손을잡아 집으로 데려오곤 했는데 혹시 그게 내가 집에 불질르는 바람에 애가 그리된건 아닐까싶어 부랴부랴 친정엄마께 전화를 걸었어요.
"엄마,근데 내가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혜영이가 공부를 못한게 태어나자 마자 연기에 쟁여놔서 그런거 아닐까?"
엄마는
"아이구. 뜬금없이 얘는. 아녀.아녀. 그리구 걔가 뭐 어떠니. 저르키 잘하구 사는데. 본새 공부하는 머리는 따루 있능거지."
절대 아니라십니다.
"아니.엄마,공부머리는 그렇다치구 걔가 어려서 왜 한꺼번에 눈감고 입다무는걸 못했잖어."
저희가 어렸을때는 이발을 집에서 엄마가 해주셨어요. 감나무 아래 가마니때기를 깔고 보자기를 두르고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내린다음 옆머리는 귀볼약간위로, 뒷머리는 둥그스름 돌려깎아 면도를 해내면 목위에 파르스름한 반달을 엎어놓은 모양이 되고요. 앞머리는 눈썹위 1센치정도 일직선으로 반듯하게 깎는것이 그당시 저희시골 유일한 헤어스타일이었는데 저희엄마는 특별히 솜씨가 좋으셨어요.
그래 언제나 이발소갈 필요없이 날잡아 집에서 아이들을 주루룩 앉혀놓고 돌아가며 한명씩 이발을 하는데....
셋째가 앞머리를 깎을때마다 웃음바다가 되어요. '눈 꼭 감아. 머리카락 들어가.'그러면 양손과 두눈에 힘을 잔뜩주고 눈을 꼭 감는데 입이 헤 벌어저요. '에구.입 꼭 다물어. 머리카락 들어가.' 그러면 입을 꼭 다무는데 눈이 번쩍 뜨여요. 눈감어, 그러면 눈은 감는데 다시 입이 헤 벌어지고..
그러면 빤쓰바람 아이들이 옹기종기 빨갛게 모여앉아 그모습을 쳐다보고 우헤헤헤 뒹굴며 웃어요.
엄마가 웃으시네요.
"하하하 얘는. 지금은 잘하잖니? 한번에 눈감고 입다물구 다잘한다 얘.하하하.
걱정을 하지를 말어라 얘 하하하"
에구....그착한것이 이제 한번에 눈감고 입다무는것만 잘하는게 아니랍니다. 저도 귀찮아서 여기저기서 얻어다 먹는 된장간장을 그애는 올해도 일찌감치 담아서 메주건져 된장버무려놓고 간장빼서 다려놓고,가을까지 먹을 봄김장 한차례 담구고, 시어머니 모시고 나가 일년두고먹을 쑥뜯어다 대쳐 저장해놓고 저살기바쁜 이언니보고 애들데리고 다녀가라는걸요.
어려선 엄마아버지 밭으로 일가시고 언니 둘은 학교에 가거나 저보다 어린동생 젖먹이러 엄마한테가고나면 혼자서 이리저리 가마니떼기를 끌고다니다 논둑이고 밭둑이고 아무데나누워 잠자고일어나
배고프면 왱왱왱 파리가 들끓던 부뚜막위 보리밥 한덩이를 집어먹으며 그렇게 바랭이풀처럼 달개비풀처럼 자라나더니. 라디오부품 납땜하는 공장다니면서 중학교 다니고 백화점 한귀퉁이에 서서 아이스크림 팔면서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어디에 숨어있다가 그렇게 반달같은눈에 오똑한 콧날하며 뽀얗게 예쁜모습이 함박꽃처럼 화사하게 피어나와 눈부시게 아름다운 숙녀로 바뀌던지요.
너무착해서 가슴아픈동생. 괞이 눈물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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