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얼마 전 여성 경제인구가 사상 최초로 1천만 명을 돌파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여자들이 경제활동을 많이 한다는 것은 자녀양육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일까? 천만에! 경제활동 인구가 늘어난 것은 대부분 자녀양육을 끝낸 이후에 비정규직으로 취업하는 사례가 늘었기 때문이란다. 한창 일할 젊은 나이의 여성들은 아직도 자녀양육과 직장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 묘기를 계속하고 있다. 며칠 후면 시어머니께서 다시 우리 집으로 이사를 오신다. 작년까지 함께 사셨던 시어머니께서 외손자들을 돌봐 주시느라 딸네 집에 '파견 근무'를 가셨는데, 칠순의 시어머님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는지 덜컥 병이 걸려 버리셨다. 병든 어머니를 돌려보내는 시누이는, 어머니에게는 미안할 대로 미안하고, 아직 손길이 필요한 아이는 아이대로 걱정이 되어서 무척 난감해 하고 있다. 시누이를 생각하니 지금은 여섯 살이 된 아이를 낳았을 무렵의 일이 떠오른다. 난 그때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일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또 맞벌이를 해야만 그럭저럭 살 만큼 벌기 때문에 아이를 맡아 키워 줄 사람을 찾아야 했다. 친정어머니 건강이 안 좋은 것을 아시는 시어머니께서 기꺼이 아이를 키우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시어머니께서는 높은 연세로 아이 돌보는 고단함을 견디기 힘들어 하셨다. 회사에 다녀와서 저녁을 차리는 동안, 시어머님은 어느 틈에 꾸벅꾸벅 졸고 계셨는데, 그때의 미안함이란. 나는 그런 시어머니를 보며 '스페어'이자 '히든카드'였던 외숙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시어머니께 아이를 맡겼고, 목요일 아침이면 분유병과 기저귀를 바리바리 싸서 외숙모에게 아이를 데려다주고 토요일 퇴근하면서 데려왔다. 그러나 이런 생활은 두어 달 못가서 그만두게 된다. 애착관계가 형성되어야 할 시기에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아이를 내주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지만, 문제는 시어머님, 외숙모, 나까지 세 사람의 보육방식이 너무도 달라, 아이 하나를 가운데 두고 서로 마음 상하는 일이 종종 일어났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취할 방법은 단 한 가지, 회사를 그만두고 직접 키우기로 했다. 설마 내가 안 번다고 굶어죽으랴? 1년반 동안 전업주부로 아이 키우기에만 전념했는데, 일을 계속 하고 싶다는 희망을 놓지 않아서였던가, 예상치 않았던 취업 제의가 들어왔다. 아이를 또 맡겨야 했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고민하지 않고 보육시설을 찾았다. 다행히도 집 가까운 곳에 시설 좋은 '어린이집'이 있어서 20개월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곳에 아이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어린이집 선생님께 나는 늘 죄인이다. 회사 퇴근이 매일 늦어 7시반 어린이집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아이를 찾으러 갈 수 있는 날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정식 퇴근 시간이야 6시지만 특별한 야근이 아니더라도 빨라야 7시 반 정도나 되어야 회사 문을 나설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회사와 어린이집이 비교적 가까워서 7시 50분 정도에 어린이집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복되는 '지각'에 어린이집 선생님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커지다보니 허겁지겁 아이만을 데리고 빠져나오기 일쑤다. '그저 한 달에 딱 한 번만이라도 회사 눈치, 사람들 눈치 보지 않고 맘 편히 정시퇴근해서 우리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직접 내 눈으로 확인도 하고 선생님과도 편하게 얘기 나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여전히 이 땅에서 직장 여성이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벽들과의 끊임없는 부딪침'이다. 어린 자녀를 가진 직장여성이 맘 편하게 직장생활과 자녀양육을 병행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뒷받침과 사회(기업)의 배려가 절실히 필요함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여성 경제인구 1천만 명이라는 숫자가 정작 여성 본인들에게 지금처럼 허수로 다가오지 않고 진정한 여성 권익 신장의 의미로 다가올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
============================================================================
완전 공감가는 글이라 퍼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