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 낮에 6자회담 타결 속보가 날아들었습니다.
누워 뒹굴거리며 TV를 보고 있는 데 화면 아래쪽으로 속보가 뜨는 데, 솔직히 머리가 띵하고 소름까지 끼치더라구요. 우리 정부의 외교력이 저 정도로 좋아졌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우리를 짓 누르던 전쟁의 위험에서 거의 벗어났다는 안도감이 들더군요.추석 연휴에 민족 최대의 추석 선물인 셈입니다.
처음부터 회담 결과를 낙관했었습니다. 회담 중 잠시 정회가 되기도 한 상황이 있었지만 정회의 이유였던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권 문제는 사실 미국이 끝까지 우기기 힘든 사안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런 문제는 예컨대 시기를 몇년간 유예한다든지 갖가지 조건을 단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얼마든지 서로의 체면과 실리를 살려줄 수 있음에도 북미 양자가 초등학생 수준으로 자기 입장만 우기면서 정회한 것은 한마디로 코메디였습니다.
어쨌든 불과 몇 달 전 까지만 해도 북한에 핵무기가 몇 개나 있냐 없냐,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하냐 마냐 가지고 험악한 분위기까지 갔던 것과 비교해 보면 이른바 '막판 진통'은 너무 싱겁기까지 했습니다.
하여간 이번 6자회담 타결로 인해 한반도에는 정말 새 시대의 빛이 비추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남북한이 주도적으로 자신들의 문제에 개입해서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소기의 성과를 이루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 근현대사의 아픈 과거를 돌이켜 보면 얄타회담이니 포츠담 회담이니, 모스크바 삼상회의니 우리 민족의 미래에 대한 중대한 결정이 우리 당사자가 아닌 주변 강대국들에 의해서만 내려졌었지요.
아마 수십년 내지 수백년 후 우리 후손들이 오늘을 기억하면서 베이징 6자회담 타결을 한반도 새시대의 출발점이라고 국사 시간에 배우지 않을까 싶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한반도 새시대의 요체는 결국 냉전체제의 종식과 평화체제로의 전환입니다. 이는 이번 회담 과정에서도 간간이 드러났듯이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기도 합니다. 2차 6자회담이 시작된 지난 7월초부터 이미 한반도의 평화체제로의 전환과 동북아에서의 새로운 안보질서 구축 얘기까지 나왔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6자회담에 참가하고 있는 모든 국가(심지어 미국조차도 어느 정도!)가 이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 또한 한반도 새 시대의 전망을 밝게 하는 근거입니다.
미국은 이미 미일동맹에 대한 새로운 구상이 끝난 상황이고 주한미군마저도 전략기동군화하는 등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동북아 정책을 펴고 있지요. 대 중국 견제나 포위라는 새로운 전략적 과제에 직면하여 북한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어느 정도 계산이 나왔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변수는 역시 북미관계인데, 부시 정권은 이라크전 장기화와 카트리나 피해로 인해 북한에 대해 이라크 혹은 이란에서와 같은 강경정책을 펴기가 힘들고, 이 마당에 6자회담까지 타결되었기 때문에 제아무리 부시라고 하더라도 북한에 대해서는 새로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클린턴 시절에 추진하다가 실패한 북미수교를 자신의 임기 동안에 성사시켜 최대의 외교성과로 남기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북한의 김정일에게도 그렇겠지만 미국의 부시에게도 이번 6자회담 타결은 말 그대로 '돌이킬 수 없는' 국면으로 동북아 정세를 이끌어갈 것이 분명합니다.
일본에서는 고이즈미가 총선에서 승리하여 일본의 보수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북일 관계만 놓고 본다면 조만간 북일수교 협상이 곧 재개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미 고이즈미는 부시집권 1기에 이런 시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외교에 관한 한 안팎으로 욕을 집어먹는 고이즈미로서는 북일 수교를 통해 이웃나라들과의 불편한 관계를 개선하는 돌파구로 마련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북한 위협론이 물론 일본의 개헌과 보수화에 큰 도움을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솔직히 이건 이미 약발이 다한 사안입니다. 6자회담 타결은 그 약발이 끝났다는 보증서와도 같습니다. 아마도 이제 일본 보수 우익들은 이른바 일본의 '정상국가' 건설 논리의 정당성을 다른 데서 찾을 것입니다.
남한 내부로 시야를 돌려 보면 한층 재미있습니다.
우선 6자회담 타결은 노무현 정권의 최대 치적으로 꼽힐 만한 사안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을 비판하는 것이 대체로 '근거없음'이거나 보수 언론의 준동에 놀아난 '세뇌의 결과', 혹은 유시민이 말했듯이 그로 인한 대통령 조롱하는 국민스포츠 참여 수준을 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이번 6자 회담 타결만큼은 아주 심각한 꼴통이 아니고서야 그 성과에 의문과 회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국내 경제에 6자회담 타결 자체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당장 주가가 얼마 오르기는 하겠지만, 어차피 외국 자본으로서는 한국의 안보상황이 투자의 결정적인 변수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6자회담 타결은 위험요소의 완전한 해결과 미래에 대한 새로운 기대치를 갖게 함으로써 경제 전반에 엄청난 활력을 불어 넣을 것이 확실합니다. 경제는 역시 마음(심리적인 요인)요하기 때문에, 타결은 국내 소비가 살아날 충분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서부터 2차 북핵 위기를 노무현 정부가 6자 회담으로 마무리지은 지금까지, 우리 내부의 냉전적 사고와 대립의 정서가 대부분 와해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안보장사'를 해 먹으면서 커 온 조선일보 등의 입지가 굉장히 줄어들 것이 확실하겠지요. 한나라당조차도 이제는 대북 문제에 대해 전향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게 이미 시대의 대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연장선에서 차기 대선에서는 통일한국시대를 과연 누가 이끌어갈 것인가가 최대의 화두로 등장할 것입니다. 그래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금은 지지율이 낮지만 이런 형세가 1,2년 더 가면 가장 유리한 고지에 오르게 될 것 같습니다. 노무현 임기 중 김정일 답방이라도 성사된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그에 따라서 남북간의 경협이나 교류가 그 이전의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급물살을 탈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 동안 남북경협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미국의 경제제재 혹은 전략물자 반입 금지조치가 완화 내지는 해제될 것이고, 이는 곧 남한 자본 뿐 아니라 서방 자본의 본격적인 북한 투자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중국식의 개혁 개방 노선을 걸으면서 예컨대 개성이 북한의 샹하이로 거듭날 날도 성큼 다가왔다고 보입니다.
어쨌든, 앞으로 우리 눈앞에 펼쳐질 시대는 지금까지 우리 한민족의 역사가 여지껏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아마도 상상해 보지도 못한 그런 날들이 될 것이 확실하다고 믿을 수 있습니다.
노무현대통령과 외교부의 대단한 노력과 성과에 다시 한 번 치하를 하는 바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