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이라고 하는 최연희의 강제성추행 행위를 두고 동료 의원들에게서 나오는 상식 이하의 옹호발언을 보고 있자니 과연 이 사람들이 한 나라의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으로서의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러워진다.
최연희의 강제성추행이라는 명백하고 엄중한 범법행위를 두고 많은 동료 남성 국회 의원들이 "폭탄주가 주범"이라느니 "급성 알콜중독"이라느니 하면서 허튼 소리를 해대고 심지어는 "노출을 즐기는 여성에 대한 남자반응을 용납하지 못하면 가치관의 독점"이라는 말까지 내뱉고 있다.
"폭탄주가 주범"이라는 말에 대해서 따져보자.
폭탄주는 성추행이라는 결과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단순한 하나의 '조건'일 뿐이다. 형법에서 '조건'이라는 것은 '원인'이라는 것이 되기에는 불충분하다. 따라서 폭탄주가 성추행이라는 행위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사유는 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폭탄주가 주범"이라는 말은 고려할 가치가 전혀 없는 주장이다.
폭탄주를 이유로 최연희의 책임을 면하려면 이른바 '명정(酩酊,Drunkenness)상태'가 돼야한다. 명정상태. 즉 술에 만취해서 사리 분별을 못하고 선악 판단을 못하는 정도, 행위 당시의 기억을 떠올릴 수 없는 정도, 정신병자와 같은 수준까지 돼야 '책임무능력'이 인정되며 '행위'로서 성립하지 못한다. 이때는 "폭탄주가 주범"이라는 말을 할 수 있다. -자신이 술취하면 비정상이 된다는 것을 알고 술을 마시면 여전히 책임이 있다-
최연희의 경우, 행위능력을 부정할만큼의 명정상태였다고 볼 수 있는 곳이 어디에 있나?
최연희는 사건 당시에 있었던 일을 잘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자의 반항을 받은 직후 자신의 행위가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고 행위를 중단했다. 이러한 정황을 판단할 때 행위 당시 사리분별을 못한다거나 선악판단을 못할 정도까지 취했다거나 속된말로 '필름이 끊길'정도로 취한 상태까지 이르지 못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 정도가 되어 법적으로 책임이 없다고 해도 도덕적으로는 여전히 책임이 있다-
게다가 사건 직후 변명을 한다며 "음식점 여주인인 줄 착각하고 (강제성추행을) 했다"라고 내뱉은 발언은 그가 책임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결정적인 발언이다. 그 발언은 '자신의 강제성추행 대상이 여기자였음을 알았다면 저지르지 않았을텐데, 음식점 여주인이라서 (마음 놓고) 했다'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최연희는 착오를 일으킨 것인데 그의 착오를 법적으로 살펴보면, 그는 두가지 측면에서 착오를 일으켰다.
첫째, '피해자의 특정 신분이 범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착오를 일으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강제성추행의 경우 피해자의 신분은 범죄의 성립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설령 피해자가 성매매여성일지라하더라도 강제성추행은 성립한다. 그래서 그러한 착오는 성추행에서는 법적으로 아무런 의미 없다. 혹 떼려다 오히려 혹을 하나 더 붙인 꼴이다. 전국의 음식점 주인들에게 망언을 한 것이다.
둘째, 최연희가 여기자를 음식점 여주인으로 착각을 하고 저지른 행위는 '행위대상의 착오'라고도 볼 수 있는데, '행위대상의 착오'는 범죄성립에 하등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데 학설과 판례가 완전히 일치하므로 최연희의 착오는 그 어디에도 고려받을 수 있는 곳이 없다. 다만 그가 명정상태가 아니었음을 확실히 입증시켜줄 뿐이다.
"급성 알콜 중독"이라는 말은 개그프로에서나 통할 말이다. 국회의원이라는 자가 내뱉었다는 것이 어이없을 뿐이다.
"노출을 즐기는 여성에 대한 남자반응을 용납하라?
국회의원들이 도대체 사태 파악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갈수록 더 황당하다. 한 국회의원은 최연희의 행위를 두둔하며 "노출을 즐기는 여성에 대한 남자반응을 용납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피해자 책임론에 입각한 전형적인 망언이다.
물론 노출을 즐기는 여성이 있을 수도 있고 남성이 그 여성에 대한 관심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허용되는 수준은 잠시 눈길을 주는 정도 뿐이다. 길 가다가 아름답고 섹시한 여성이 있어서 남자의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쳐도, 2~3초 이상 눈길을 주면 그 여성에 대한 실례가 된다. 지나치고 나서 다시 고개를 돌려 보는 것은 상당히 추잡해 보인다. 남자를 스스로 망신시키지 말라. 뚫어지게 보는 것은 실례를 넘어 보는 것만으로도 성희롱이 될 수 있으니 주의하길 바란다.
최연희의 경우는 어떤가? 잠시 눈을 돌리는 정도가 아니었다. 강제성추행을 한 것이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노출을 즐기는 여성에 대한 남자반응을 용납해야 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지 그 의원의 정신상태가 의심스러워진다. 노출행위는 자신에 대한 성추행을 용납한다는 의사를 표명하는 것이 아니다. 그 여기자가 또 무슨 노출을 하기라도 했나? 뜬금없이 왜 '노출'이라는 말이 나오나.
이번만이 아니다. 얼마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동국대K교수 사건
최연희 사건에서 국회의원들이 보여주고 있는 행태는 이전에도 볼 수 있다. 동국대 사회학과 K모교수사건을 기억하는가? 노래방에서 여제자를 성추행 해놓고도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발뺌한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K모교수는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만취했다"고 했다. 피해자책임론에 입각한 망언들도 속출했다.
이 사건은 2003년에 서울지법(민사)판결에서 K모교수의 성추행에 대한 책임을 인정해 위자료 지급 판결이 났다. 그러나 교수사회에서는 '침묵의 카르텔'로 K모 교수를 옹호했다. 교수사회는 판결 뒤 책임을 제대로 묻지도 않고 2004년 그를 복직시킨뒤 '2년휴직'을 주어 면죄부를 주었다. 또, 당시 동국대 사회대 학생들을 상대로한 대자보 스티커 설문조사결과 28%의 학생들이 "남자가 술에 취하면 그럴 수도 있지"라는 답변을 보이기도 했다.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술취한 사람들에게 관대해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해방이후 군사문화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옛부터 마을마다 '향음주례'라고 해서 일정한 규범 속에서 술을 마시고 예법을 지키는 엄격한 행사를 치뤄왔다. 술에 만취해서 저지른 행동에 대한 관대한 처분은 우리의 전통에 반한다.
K모수를 옹호하고 나온 행태들이 지금 최연희 사건에서의 행태들과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 불법행위를 하고서도 남성중심 우월주의와 특권에 기댄 권위의식으로 스스로를 변호하고 집단의 명예를 지키려는 행태는 오히려 자신들의 집단의 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는 점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최연희의 강제추행. 이것은 친고죄다. 정황상 최연희의 행위에 위법성과 책임은 충분히 인정된다. 친고죄에서의 고소행위는 법적으로는 단지 소송개시요건일 뿐이다. 이 말은 피해자의 소송제기가 없어도 이미 범죄는 성립해버렸다는 뜻이다. 이 점을 의원들은 명심하기 바란다. 최연희는 10년이하의 징역형에 해당하는 중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진작에 사퇴나 파면이 나왔어야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