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729

그래 이것쯤이야


BY 중년 여인 2006-03-07

오늘 하루 종일 생각해도 화가 났다.

백번 이해 해주려고 해도 이건 아니다 싶어 나쁜 말도 나오고 싶지만

그래 나는 행복한 사람인걸 이것 쯤이야하고 넘기기로 했다.

 

어제 밤 일이다.

 

나는 퇴근 후 7시 30분에 인근에서 지인들과 저녁 식사 약속이 있는데

마침 나가려는 시간에 맞추어 남편이 들어왔다.

 

남편도 가도 될만한 자리라서 인사치레로 같이 가자니 싫다고 했다.

사실 다행이지만...

 

혼자 가서  마치고 오니 밤 10시다.

 

오는 길에 회도 한 접시 사 왔는데 마침 일찍 온 아들에게 상을 차려주면서

남편에게 먹겠느냐니 먹기 싫다고 한다.

고집인 것 다 아는 나인지라 한 번 더 권한다.

 

 그러니 슬며시 앉는다.

 국을 데워 밥을 차려주니 그제서야 숟가락을 드네

회는 식사가 아니기 때문에 제대로 된 밥상을 원하는게지

 숟가락을 들고는 말도 안한다.

 

참 이유도 모르겠다.

 

너무 피곤해서 11시쯤 누웠더니 안절부절 자꾸 왔다 갔다 한다.

우리 또래의 여자들은 알 것이다.

 

남편이 왔다 갔다하면서 말은 안하고 뭔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냉장고를 열거나 아이들 이름을 부르거나,

 한숨을 쉬거나하는 것이 다 시위의 한 방법이란 것을 ....

 

그리고 무척 듣기 싫고 어떤 친구는 엄청난 적개심도 느낀다고 표현했다.

 

한 친구가 남편의 이런 행위를  밥맛이다라고 하자 어떤 친구는 깜짝 놀라며

(한창 중년에 밥맛이 도는 아이다)그  귀한 밥맛을 어디 거기에 대느냐면서

썩은 죽맛이다라고 정정해서 웃은 기억도 있다.

 

어쨌든 그냥 잠이 들었나보다.

버럭 소리에 잠이 깼다.

 

 밤 12시 30분이다.

 

아직 딸이 안 왔다.

학원에 전화 하라고 야단이다.

우리 나라는 여자들이 들어서 망한다.

왜 학교 다니면서 새벽까지 학원가느냐?

 그리 안해도 할 놈 다한다는 등등...

 

 우리딸이 집에도 안오고 밖으로만 돌면서 좋은 대학 가면 뭐하느냐는둥,

정말 밑도 끝도 없는 소리를 하면서 안절부절이다.

 

득달같이  학원에 전화하더니  12시 30분에 차를 탔으니 한 20분 걸린다는 말을 듣는다.

 1시 5분전에야 문이 열리고 딸이 들어온다. 씩씩하게...

 

참고로 딸은 아주 체력이 좋다.

 그리고 중학교때까지 잘 먹고 잘 자고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생활해서

내 개인적으로도 한 3년 공부에 몰두해도 후회없다는 생각이었고

 딸이 강력히 원하여 처음으로 학원에 등록을 했다.

 

 중 3년동안은 3학년때 선배언니에게 1년 수학 과외한 것이 전부고

내가 인터넷방송을 듣게 하고 , 그리고 책을 읽고 교과서 공부등 약간의 조언과 함께

지도하여 그리 잘하진 않고 중 상 정도였다

 

그 대신 요가배우고 멋 내고 책읽고 운동을  많이 한 아이다.

그런데 얼마전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울긋불긋한 옷을  다 정리하고

 좀 세게 시킨다는 모학원을 요구해서 몇 번이나 의사를 타진한 다음

2월 15일에 등록하여 실제 다닌지는 한달도 안된다.

 

입학하고 야자 마친다음  정식 공부는 이제 며칠째다.

그런데 남편은 미치기 일보직전이다.

아이가 1시에 오는 것을 절대 용납 못한다면서 당장 그만두라고 성화다

 

그런데 어제 밤 딸 아이는 단호하다.

 

자신 말고 수만명의 아이들이 이 시간에 온다면서

자신은 야자도 철저히 할 것이고 학원 강의도 듣다가 중간고사 마치고 나서

 점검한 다음 시간을 조절할 거니 그 때까지는 알아서 한다고 한다.

  그리고 밤에 오니 뿌듯하단다.

 

 

남편은 딸에게는 별 말 못하더니 나에게만 씩씩거린다.

 

참 기가 막힌다.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은 서로 다른 것을

원하는 것을 한번 하게 해주는 것도,

 그리고 때로는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도 사랑의 한 방법인것을

 

우리도 그런 경험이 있지 않는가?

 

잘 지도해주는 어머니도 좋지만

 적당히 내버려둘 줄 아는 어머니 밑의 그 자유로움..

그리고 그 곳에서 혼자 해내는 독립심...

 

나는 그런 것들이 청소년기에는 정말 필요하다고 본다.

 

부모가 너무 다 알아주고 해결해 주는 것 보다

때로는 돌아가는 것 같아도 내가 스스로 해낼 때

진짜 가치가 있고 세상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는 것을

 

나 역시 그렇게 커왔고 어릴때부터 동생들 돌보면서 잘하진 못해도 스스로 했고

한계를 느끼면서 더 노력했던 나날들...

그리고 그 속에서 키워진 책임감과  내 자신의 자리를 바르게 볼 수 있었던 눈들..

 

어제밤 내내 아이들이 움직이는 소리에 남편은 잠을 이루지 못했고

오늘 출근길에 같이 가면서 서로 하품하면서도 내 얼굴을 안 보는

 밴댕이 소갈머리인 남편

 

아마 남편은 퇴근하면 언제나 과자를 물고 있거나 웃는 얼굴로

 태평으로 아빠에게 응석부리던 딸이 어느 순간 떠나버리는 것에 대한

 심한 고독감과 상실감이 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은 늙어가고 아이들이 떠나가는 빈자리를 보면서

슬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유달리 아이들과 있는 시간을 좋아하던 남편...

 

딸 아이 사진을 회사 책상 유리에 넣어뒀다가 퇴근할 때 불을 꺼다가

 딸이 혼자 있는 것 같아 그 큰 유리를 들고 다시 딸 사진을 넣어 오던 남편이 아니던가?

 

남편 마음이 이해가 되고 아 아버지는 그렇구나하고 생각은 한다.

 

이상하게 날이 갈수록 여성스러워져 가고

옛날의 그 멋지고 선이 굵은 모습은 추억속에서만 남는다.

 

 참 좋은 남편이고 사랑하지만 순간 순간 귀찮아지고

하나 하나설명해야만 하는 일들이 너무 많다.

 

어쩌랴 ?

나는 행복한 사람이고 이것쯤이야하고 참는 것이

내 정신 건강에 좋은 것을

 

남편 흉을 보자면 너무도 지면이 모자라고 미운 것도 너무 많지만

 그래도

내 행복의 원천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