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고맙다라는 말은 비아냥이 아닌 진심임을 밝힌다.
어제(4/27)
오늘 김영희대기자가 ‘일본 외교 3인방의 혈통이 말한다’라는 컬럼을 올렸고 이에 고마움을 느낀다.
역사적 사실관계로 현상황을 판단하고 진실을 알리는 것이 기자의 기본책무임을 김영희대기자가 제대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의 글에서 몇 일전의 풀리지 않던 의문의 단초를 제공해줌에 더욱 고마웠다.
다름아닌 아베의 외할아버지 이야기이다.
고이즈미 후계자로 일컫는 그의 외조부는 기시 노부스케였음을 상기시켜주었다. 기시는 잘 알려진 것처럼 만주국 총무처 장관이었다. 만주국은 우리 현대사에서 친일파의 본거지였다. 친일파에는 이른바 만주국 관료출신들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건국초기, 반공의 기치아래 만주군관 출신인
아래 글은 만주인맥이 우리 현대사에 미친 영향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일본쪽에서 1965년의 국교정상화를 적극 추진한 인물이 기시 전 총리였고,
또 당시 외상으로서 이 조약에 서명한 인물이 바로 시이나였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는 한국과 일본에 포진한 만주인맥의 협력과 상호 신뢰에 기반해서 추진된 것이다.
1961년 11월 최고회의의장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하였을 때
그는
만주군관학교 생도 시절의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로 돌아간
일본의 만주인맥에게 보내는 무언의 메시지이자, 이남에 만주국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게 됨을 고하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출처;
위에서 말한 기시 전총리가 오늘 (4/28) 중앙일보 김영희대기자가 말한 기시 노부스케이다.
이
아베는
그리고 일본의 독도영해 침범에 대한 범국가적 대책을 위한 청와대 모임에서
만일,
한나라당의 공식 입장은 독도문제에 대해 단호한 참여정부의 입장과 비슷하게 일본측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입만 열면 민생을 이야기해도 실질적으로는 국정을 마비시키는 행위를 해온 경험들에 비추어 보면 색다르지 않다.
그들은 오늘도 사학법 하나를 이유로 2천개가 넘는 민생법안을 패대기치고 있지 않은가.
국정을 마비시키는 행위나 반민족 친일행위나 일맥상통함은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끝으로, 사적인 경험을 통해 향후 한일관계에서 한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필자가 10년도 넘은 일이지만 일본에 살 때이다.
연말에 둘째아이가 다니던 유치원에서 연락장을 보내왔다. 연말 파티에 합창시간이 있는데 한국노래 하나를 소개해주면 불러 보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반달이란 노래를 한국발음과 뜻을 함께 적어 보냈다.
연말 유치원 모임에는 가지 못했고, 한참 지난 어느 날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유치원 원장이 차한잔 같이 하자고 해서 사무실에 앉았다.
원장을 비롯한 선생들과 함께 차를 마셨는데 원장은 연말에 불렀던 한국 노래가 멜로디도 가사도 너무 아름답고 좋아, 일본 학부형도 배워보고 싶어한다고 하면서 무슨 노래냐고 물어보았다.
그래서 필자는 ‘당신들 일본이 한국을 점령했을 때 금지시켰던 노래입니다’ 라고 답해주었다. 그랬더니 그들은 얼굴이 샛노랗지더니 모두 일어나 나에게 절을 하면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를 반복했다.
난 그들이 진심으로 반성하여 나에게 절을 했으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그들의 소위 혼마네 (속마음)에는 여전히 한국인에 대한 멸시감이 잔존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 참여정부가 범정부적인 차원에서 한일관계를 정면으로 대응하고 이를 위해 태스크포스 팀도 구성하는 등 외교활동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하였다.
필자는 모든 외교모임이나 공식행사에 반달, 혹은 울밑에선 봉선화 등 일제시대 불렸던 반달과 같은 노래를 적극 활용하기를 권한다. 수십번의 외교문서 보다 단 한 곡의 노래가 즉, 문화의 힘이 더 효과적일 때가 많음을 상기하고 여러 방법으로 연구하여 외교현장에서 적용하길 바란다.
감사합니다.
* 반달..가사 모르는 분 계세요?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나무 토끼 한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샃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