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의 <일리아스> 2권에 보면 아가멤논을 비난하는 수다장이 테르시테스의 외모를 두고 “그는...... 못생긴 자로 안짱다리에다 한 쪽 발을 절었고, 두 어깨는 굽어 가슴 쪽으로 오그라져 있었다. 어깨 위에는 원뿔 모양의 머리가 얹혀 있었고, 거기에 가는 머리털이 드문드문 나 있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그리스인의 기준에 보면 영웅들은 강건하고 아름답고, 도덕적으로 뛰어나고, 올바른 일을 추구하고 무엇보다도 가장 남성다워야 한다. 그에 반하여 그에 못 미치는 치졸한 보통의 인간들은 위에 묘사되듯이 늘 이와 대조적으로 추해야만 한다.
게다가 신들 중에도 외모는 말 할 것도 없고, 꼽추인 신까지도 있다. 그러니 그 신적 역할 마저 미미할 수밖에 없다. 인간만도 못한 신들도 있다는 것이다. <추하다는 것>은 상징적으로 으레 모든 점에서 부족하고 열등한 종(種)을 나타낼 뿐이다.
우수한 종과 열등한 종으로 구분되는 이런 일이 인류에게 실제로 일어날 수 있을까?
10 만년 뒤 인류는 <잘난 인종 대 못난 인종> 두 가지 종으로 나누어질 것이라고 인터넷 판 BBC가 전하고 있다(10월 17일). 영국 케이블 채널 <브라보>의 의뢰로 지난 2개월 간 1000년, 1만년, 10만년 뒤 인류가 어떻게 진화할지 연구한 런던 정경대 다윈연구센터의 올리버 커리 박사(Evolutionary theorist Oliver Curry of the London School of Economics)의 연구 결과라는 것이다.
유전적으로 우수한 집단과 열등한 집단으로 나뉜다는 것이 그의 연구의 결론인 모양이다.
1000년 안에 남자는 좀 더 키가 커지고, 수명은 120년까지 연장될 것이라는 것이고, 건강 지표상으로는 더 젊어지고, 생식력도 더 세지고, 마치 운동선수처럼 보이고, 각진 턱과 낮고 굵은 목소리를 갖고, 더 큰 생식기(페니스)를 갖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여성은 더 늘씬해지고, 털 없는 피부와 큰 눈, 더 봉긋한 젖가슴, 빛나는 머리 결을 가지게 되고, 인종이 뒤섞임으로 커피색깔을 지닌 인간으로 변모될 것이라고 한다.
10,000년경에는 일상적 삶의 필요에 대처하기 위해 고안된 기계장치에 의존하게 됨으로써 인류는 가축과 닮아 있게 될 것이라고 한다. 타인과의 의사소통을 점점 잃어버리게 되고, 사랑, 공감, 신뢰, 존경과 같은 감정들 역시 소멸될 것이라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진화의 과정을 거쳐 결국 인류는 상류층, 고학력층, 영양상태가 좋은 사람들을 배우자로 선호함으로써 유전적 불평등이 점차 커지기 때문에 유전적으로 뚜렷하게 차이를 지닌 2개의 인종이 출현할 것이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이 결과가 인류의 장래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게 되고 인류에게는 아름답지 않은 추한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고 그는 경고하고 있다.
우리사회에서도 바야흐로 우수와 열등이라는 두 인종이 탄생하고 있는가?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 인간의 소질과 외모까지도 지배하는 시대에 우리는 이미 살아가고 있다. 부모의 성분이 좋은 강남 출신들이 서울대학에 들어가는 확률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다시 자신들과 동등한 집단을 만들어내면서 우수한 형질을 보존한 종자들을 계속적으로 생산해 내고 있다. 강남을 지배하는 자들이 우리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자들로 등장해 새로운 계층을 형성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여러 사회적 지표가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가난한 자들이 강남에 살고, 서울대학에 입학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난한 자가 강남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렵게 된 것이 부정하기 힘든 현실이 되었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옛말은 그저 옛말에 지나지 않는 시대이다. 가진 자는 가진 자와 결합하고, 아름다운 자는 아름다운 자와 결합하기 마련이다. 외모와 재산이 그의 운명을 결정하는 세대이니 말이다.
유전적 진화론이 맞다면 앞으로 우리나라는 잘 생긴 자와 못 난 자라는 유전적 두 형질의 인간으로 나누어지는 시대에 살게 될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자는 추한 자와 결합하지 않을 것이고, 부자는 가난한 자와 결합하지 않을 것이고, 키 큰 자는 키 작은 자와 결합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이건 사회 계층의 양극화를 넘어 유전자의 양극화라는 현상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이건 우리의 비극이고, 종국에는 인간의 비극을 초래할른지도 모른다.
경제력이 있는 자들은 성형을 통해서 좀더 아름다워지고, 생활의 핍박으로 벗어난 자들은 남는 여유 시간을 육체적 운동을 통하여 보다 강건한 자들로 바뀌게 될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 벗어나고 탈락한 자들은 가난의 구렁텅이에 빠져 열등한 인간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계층들은 교육, 경제, 체력과 같은 여유분을 통해 획득된 우수한 <사회적 형질>을 보존하게 됨으로써, 계속 지배적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설령 획득 형질이 유전되지 않는다고 해도 사회적 권력과 여유 있는 경제력이 뒷받침되어 발전된 의학의 혜택 덕분으로 <새로운 인간종>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정녕 이런 시대가 우리에게도 도래하고 있는 것인가? 사회적 계층의 양극화의 첨예화와 우수한 종자와 열등한 종자간의 불평등을 심화하고도 우리의 미래는 안전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의 어두운 구석과 소외된 계층을 바라보면서, 이 구조적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책이 무엇일 수 있는지 되짚어 보는 반성의 시간이 우리에게 남아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