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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은혼식을 지낸 아내에게 바칩니다


BY hks007 2006-12-05

어떤 우후견토(雨後堅土) 조강지처 이상으로 좋은 '친구'는 없다. 지난 10월, 결혼 25주년인 '은혼식'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25년이란 적지 않은 세월을 살다보니 우리 부부라고 해서 어쩌면 부부생활의 '기본옵션'이기도 한 부부싸움이란 걸 안 해본 건 아니다. 평소 깔끔하고 조신한 성격의 아내완 달리 나는 성정이 부사리와도 같고 또한 급하기 그지없다. 누군가는 부부싸움이란 걸 안 하고 사랑만 하면서 살아도 짧은 게 인생이랬다. 하지만 우리처럼 늘상 아등바등 사는 서민에게 있어선 부부싸움도 때론 격한 때가 있기 마련이다. '가난이 앞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은 옆문으로 빠진다'는 말이 있다. 이는 가난이 싫어서 어떤 때는 배우자와도 헤어질까 하는 생각까지 드는 경우를 빙자한 경구가 아닐까 싶다. 5년 전, 빈곤의 파고가 격랑으로 바뀌던 즈음부터 촉발된 우리 부부의 갈등은 점차 파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도 말 한 마디 않는 아내에 맞서 반동으로써 나도 점차 마음의 문을 꽁꽁 닫아걸었다. 부부간에 그처럼 소가 닭 보듯 한랭전선이 점차로 견고해지자 아내는 결국 이혼까지 요구했다. 격분한 나는 집을 나가 여관에서 잠을 자고 식당에서 밥을 사 먹으며 출근하길 며칠 했다. 하지만 그러한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은 차라리 지옥과도 같았다. 며칠 후 어기적어기적 집에 다시 들어선 나는 미리의 작심으로 아내와 담판을 벌였다. "내가 외도를 한 것도 아니고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한 것도 아닌데 감히 이혼을 요구해?" 하지만 아내의 이혼 요구는 여전히 거센 풍랑이었다. 결국 당시 고 3 수험생이었던 아들의 대입수능이 끝나면 이혼을 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아들과 딸은 그처럼 못난 제 엄마 아빠의 묵계를 눈치채곤 무언(無言)이긴 하되 반항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공부 할 맛이 안 난다."는 예고 수준이었고 심지어는 "집을 나가고 싶다."는 위협도 없지 않았다. 하기야 살벌한 집안 분위기로 인해 뉘라서 공부할 기분이 났겠는가. 아무튼 어찌어찌 아들의 대입수능은 끝났고 이제 남은 일은 우리부부의 결혼생활 청산 여부였다. 하지만 이혼을 할 때 하더라도 마지막으로 여행이나 가자고 꼬득였다. 코웃음을 치며 한사코 거부하는 아내를 끌다시피 차에 태웠다. 그리곤 우리 부부의 이혼 저지 '구원군'으로 점찍은, 전북 정읍에서 장사를 하고 있던 동서를 의식하여 그리로 차를 몰았다. 그러나 정읍이 가까워올 수록 마음이 바뀌었다. 좋은 일도 아닌 걸로 마음의 빚을 주기가 면구스러워 전북 고창의 선운산으로 갔다. 거기서 장어구이에 술을 진탕 마시곤 여관에 들어갔다. 만취한 나는 술김을 빌어 말했다. "당신은 나랑 살면서 지금껏 고생만 했는데 그게 억울하지도 않아? 앞으로 내가 더 돈을 악착같이 벌 것이며 더불어 마음을 너그럽게 지니고 당신의 모든 부분을 이해할 테니 우리 이혼 얘긴 없었던 걸로 하자!" 하지만 여전히 요지부동인 아내에게 나는 더욱 견고한 쐐기를 박았다. "아들에 이어 딸도 대학을 보내야할 터인데 만약에 당신과 내가 이혼을 한다손 치면 우리 아이들은 대체 어디에 맘을 붙이고 면학에 정진하겠어?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이 우리 때문에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 한다는 건 도저히 묵과할 수 없으니 그리 알아!" 그러한 아이들을 뒤에 업은 엄포에 비로소 아내는 비로소 이혼 의지를 접었다. 하지만 그러한 과거의 아픔은 이젠 '비가 온 뒤에 더 굳어진 땅'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를 일컬어 어쩌면 '우후견토'(雨後堅堅强土)라 불러도 무방한 건 아닐지 싶다. 오늘도 아내의 머리 염색을 도와주었다. 그러자니 이제 우리는 부부가 아니라 차라리 살가운 친구와도 같다는 느낌이다. 요즘엔 서로 농(弄)도 잘 한다. 이제 낼모래면 나란히 오십줄에 들어서는 인생의 동반자이고 보니 앞으론 과거와 같은 살벌한 부부싸움도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인생이라는 차를 운전하다 보면 진짜의 차량운전과 마찬가지로 비도 내리고 눈도 오며 때론 길이 끊어져 고심에 빠지는 경우도 없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차를 버리고, 아울러 조수석의 마누라마저 치지도외한 채 내 한 몸뚱이만 달랑 빠져나와 가던 길을 가는 운전자는 없으리라. 근데 부부간도 마찬가지 범주인 것 같다. 제 아무리 빈곤과 이런저런 사유가 닥쳐 신산할지언정 부부간에 사랑과 신뢰만 견고하다면야 그깟 것쯤은 너끈히 헤쳐나갈 수 있다고 믿는 때문이다. 지금도 우리 부부의 삶은 여전한 빈곤의 에스컬레이터이다. 그러나 모든 건 그 끝이 있기 마련임을 잘 알고 있다. 이제 2년만 더 바라지에 수고하면 아이들을 모두 대학 졸업까지 마칠 수 있다.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아내와 함께 그간 못 간 여행부터 두루 다니고 싶다. 전국 방방곡곡으로. 끝으로 사족인데 아무리 어려울지언정 역시나 조강지처 이상으로 좋은 '친구'는 없다. 그 친구는 언제나 나를 위로하고 감싸주며 내 슬픔까지도 막아주는 우산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