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아버지는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아주 보수적인 아버지였습니다. 학창시절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아버지가 들어오는 헛기침소리만 나면, 저희 6남매는 아무일없다는 듯이 재빨리 책을 편다던가 쪽문으로 해서 자기방으로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그정도로 아버지는 저희에게 늘 무서운 호랑이 같은 분이셨습니다. 제 가까운 친구 한명이 있었는데, 늘 아버지가 자전거에 학교길을 바려다 주는 것 이였습니다. 그때당시 제소원은 나도 한번 아버지 허리춤을 꼭 잡고 아버지가 끄는 자전거 뒤에 타서 신나게 콧노래도 불러보는 것 이였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저는 그 소원을 이뤄보질 못했답니다. 아버지의 성격을 조금 언급하자면 남들에게는 정말 나쁜소리 한번 들어보지 않고 사셨고, 부모님께는 너무 잘해드려 동네에서 효도상까지 받으신 분이랍니다. 그렇지만 엄마와 저희에게는 정말 늘 무섭고, 가까이 할 수 없는 분이셨습니다. 학창시절 생각해보면 아버지와 엄마는 늘 싸우셨고, 엄마의 우는 모습만 눈에 그려집니다. 저는 그런 아버지가 너무 미웠고, 결혼상대자는 무조건 성격만 보기로 생각했었습니다. 가족에겐 늘 엄하고 무서웠고 말이 없고 묵직한 아버지.. 올해로 아버지의 연세 69세. 내년이면 벌써 칠순을 바라보십니다. 항상 엄마에게 모질게 굴었고, 자식들에게 말 한번 따뜻하게 말해본적이 아버지. 명절날이나 집안 대소사 때 아버지가 그 자리에 계시면 분위기는 가라앉았고, 아버지가 자리에 없을땐 저희식구들은 마음이 편했습니다. 그렇게 되니 자연이 아버지는 우리와 사이가 더 멀어지게 되었고, 늘 아버지를 배외시켰고, 아버지가 하는 일은 뭐든 못마땅했었습니다. 이제 자식들 모두 장성해서 시집장가를 갔지만 엄마와 아버지의 사이는 늘 냉전이 흐르고 있었고, 그럴때마다 저는 아버지를 미워하는 증오감만 키웠습니다. 두달전 얘기입니다. 아버지의 생신날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자식들 누구하나 시골집에 내려갈 생각이 없었고, 업친데 덥친격으로 아버지와 엄마는 생신 얼마전에 싸우신후로 각방을 쓰고 계셨고, 그 분위기란 말하지 않아도 알만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정말 미웠고, 생신상 같은건 차려주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아니 시골집에 내려가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올해 쌍춘년이 있다하여 아버지는 동네 어르신들과 동네분들에게 대접을 하고 싶어한다고 엄마에게 들었습니다. 기가 막혔습니다. 식구들에겐 손톱만큼의 아량도 베풀지도 않으면서 왠 동내잔치? 저는 콧방귀를 끼었습니다. 아버지는 기어이 약속을 지키셨고, 관광차 한대를 불러 시내로 나가 뷔페에서 생신겸 동네분들과 맛있는 점심을 드셨다 합니다. 그것도 모르고 엄마는 이웃집 일을 하러가셨다 하더라구요. 그말을 듣고 정말 분노가 차올랐고, 아버지는 다시는 보지 않기로 생각했습니다. 늘 자기맘대로 고집하던 아버지. 자기뜻은 전혀 굽히지 않았고 식구들 생각은 추호도 하지않으신 아버지. 그런데 그날 밤이였습니다.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였습니다. “여보세요?” 이제 막 아이들을 재우고 잠자리에 누울려던 찰라 전화벨이 울렸던 거죠. 뜻밖에 전화밖 저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쩌렁쩌렁한 호랑이 같은 아버지였습니다. 대뜸 “나다. 어떻게 느그들이 하나도 안 와볼수가 있느냐! 동네사람들이 왜 자식들은 안왔냐고 물어보는디 챙피스러와서 죽는줄 알았다! 내가 느그들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냐!” 술을 많이 드신듯한 아버지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래서 저도 여태것 가슴에 묻어두었던 말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발좀 엄마와 좋게 사시라고. 다른 아버지들처럼 좀 따뜻하게 대해줄수 없냐고. “막내야. 내가 느그들을 안좋아해서가 아니다. 어떻게 아버지가 자식들을 미워할 수가 있느냐. 난 그런 아버지가 아니다. 아니여..” 그뒤 수화기 너머러 아버지의 약간 흐느끼는듯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호랑이 같은 아버지가 눈물을 흘렸던 겁니다. 우리를 그렇게 엄하게 대했던 건 남들보다 뒤쳐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왔으면 사진한장 찍을 생각이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왜 엄마에게 상의도 없이 혼자 가버렸냐고 묻자 엄마의 시큰둥한 반응이였고, 그날아침 엄마는 일하러 나가신 거였답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제 볼에 무언가가 소리없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래 자식을 미워할 부모가 어디있어. 그런데 나는 늘 아버지만 적대시 하고 아버지를 원망만 하고 살아왔다. 아버지의 말은 자식들 누구하나 들어줄려고도 하지않았고 아버지만 철저히 배외시킨 자식들. 어쩜 우리들에게 책임이 더 컸습니다... 우릴 미워했으면 비싼 등록금 대주며 대학에 보내주지도 않았을테고, 밥도 안주고 내 쫒았을텐데 말이다. 하긴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자식들이 오면 좋아하는거 같았어요. 사위들오면 먼저 앞장서 식당에 가자고 이끄셨고 먼저 계산을 하고 나가시는 아버지였습니다. 자식들 뭐뭐 좋아하는지 엄마에게 물어보고 늘 시장보는건 아버지 몫이였으니까요. 그날 아버지는 여섯남매 모두에게 전화를 했고, 마지막으로 저에게 전화했던 모양입니다. 언니 오빠 모두에게 아버지는 정말 서운한 감정을 내보였다고 하네요. 저는 아버지가 그렇게 서운했을지 미쳐 몰랐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자식들이 오던지 말던지 언제나 관심 밖 이라고만 생각했으니까요. 생각해보니 자식들도 하나 없이 안온 생일잔치 날 그야말로 눈물의 잔치가 되었을 생각하니 너무나도 아버지께 죄송하고 미안한 맘 뿐 이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어차피 쌍춘년이 끼어 한번 더 생신이 있어 그날 아버지 생신을 하자고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됐다고 그까짓 생일 안해도 된다고 단호히 거절했지만, 그후 저희들은 정식으로(?) 아버지와 엄마를 모시고 생신잔치를 해드렸습니다. 그제서야 아버지의 입가에 웃음이 떠나질 않았고, 그날 술을 좀 많이 드신 아버지께서는 자식들의 성화에 못 입어 엄마를 등에 업고 호탕웃음을 지으셨습니다. 이게 바로 저희가 바라는 거였습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고 가까이 있는 거 같아요. 그리고 다음날 태어나 처음으로 미리 예약했던 사진관에서 가족사진을 찍게 되었답니다. 아버지의 소원대로 가족사진을 말입니다. 저 막내딸은 슬쩍 아버지의 팔짱을 끼어봤습니다. 늘 단단하고 바늘로 찌르면 피한방울 나오지 않을 거 같은 내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팔이 유난히 살이 없고 뼈만 앙상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혈기왕성하고 누구앞에서도 꺽이지 않을거 같은 철인같은 아버지도 세월을 거슬를 순 없나봅니다. 그런 아버지를 물끄러미 보고있자니 괜히 마음속이 저려 왔습니다. 사진관에서 처음으로 저희 가족만 찍어보는 가족사진 이였습니다. 며칠 전 찾게 된 가족사진. 엄마 아버지 그리고 저희 6남매가 사진속에서 환히 웃고 있었습니다. 정말 행복함이 묻어나는 사진 이였습니다. 아마도 결혼할 때 말고 아버지와 처음으로 찍어보는 사진 이였습니다. 아버지 정말 죄송했어요. 그동안 아버지 미워하고 증오했던 거 다 용서해 주세요. 이제 저 사진속처럼 항상 웃고만 살아요~ 그러고보니 아버지도 저를 사랑하셨던거 같아요. 제가 유치원다녔을 무렵 아버지가 늘 무등을 태워주셨고, 까칠까칠한 텃수염을 제 뺨에 막 부볐던 기억이 나네요.^ ^ 아버지 제가 철이 없었나봐요. 아버지도 저희를 사랑하셨던거죠? 단지 표현만 하지 않으셨던거죠? 이제 아버지의 사랑스런 막내딸이 되겠습니다. 아버지 오래오래도록 엄마와 행복하게만 사세요. 아프지 말구요~ 그리고 한번도 불러보지 못한말. 아버지 사랑합니다~ 오늘도 저는 그날 찍은 가족사진을 바라봅니다. 사진을 바라보고 있으면 저는 너무나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