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에 최고의 모델이신 존경하는 아버지 아버지 그동안 서른 해가 되도록 낳아주시고 길러주셨건만 그런 아버지께 변변히 편지 한번 띄운 일 없는 것이 새삼 후회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이제 이해의 마지막 날 12월 31일이면 25년간의 기나긴 공직 생활을 정년퇴임하시는 아버지께 어떻게 위로와 감사를 드릴까 고민하다가 이렇게 편지를 띄웁니다. 아버지 어린시절 어리광을 부릴 때에는 잘 몰랐었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오히려 아버지의 그 속 깊고 반듯하신 성품과 인생을 경영하시고 바라보시는 훌륭하신 자세에 표현할 길 없는 경이로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수많은 위대한 인물들이 있지만 저는 그런 아버지를 존경하며 아버지의 아들이 되게 해주셔서 제 삶을 축복해주시는 하느님을 찬양 드린답니다. 출생 직후 6.25동란으로 부친을 잃으시고 편모슬하에서 성장하시다가 재혼하신 할머니로 인해 어머니의 사랑 한번 넉넉히 받으신 일 없는 아버지그럼에도 불구하시고 어떠한 환경에도 흔들림 없이 고교 졸업 후 악기조율사로 그리고 늦은 30대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 공직 생활을 시작하셨었지요. 아버지 80년 초 공무원의 근로조건은 잦은 출장과 저임금으로 그야 말로 힘든 세월의 연속이었죠. 집을 마련하기 까지 지하셋방살이를 비롯해서 어린시절 밥 먹듯 이사 다니던 일이 생각나네요. 하지만 아버지의 그 성실한 수고와 땀 그리고 그렇듯 힘든 과정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 가정이 있고 저희들이 건강한 사회일원으로 또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게 아니겠는지요. 지금은 고인이 되신 외할아버지께서 8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위암으로 투병생활을 하실 때 아들 이상의 극진한 간호로 할아버지의 수족이 되신 아버지 목욕은 물론 대소변까지 얼굴 한번 찌푸리지 않으시고 섬기시는 모습은 아들인 저도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을 만치 사랑 그 자체였습니다. 얼마 전에는 팔순 되신 외할머니의 생신 축하와 아버지 정년퇴직 기념으로 이모들도 함께 모시고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셨었지요. 제주에서도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를 늘 등에 업으시고 보행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에는 저도 모르게 머리가 저절로 숙여졌었답니다. 아버지 너무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서른 살의 나이가되도록 변변한 직업도 없이 공부만 한답시고 학비 부담까지 드리는 못난 이아들을 그래도 언제나 실망치 않으시고 오래 기다려주시는 저에 대한 아버지의 믿음에 결코 실망시켜드리지 않도록 더욱 많이 노력하겠습니다. 퇴임을 앞두고 계셔서인지 요즘엔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띄게 연로해 보이기도 합니다. 역시 세월은 지나칠 수 없는 건가요. 마음이 아파 눈물이 납니다. 아버지 힘내세요. 저희들과 주변가족들을 돌보시느라 한번도 두 분만의 시간을 가져보시지 못한 어머님 아버님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그리고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