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로저로인해 맺어진 인연이지만 시어머니와 며느리라기보다는 엄마와 딸처럼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맘이 너무 고마워서 무언가 해주고 싶은 마음에 응모합니다) 저희 어머니는 말 그대로 다정다감한 어머니 모습 그대로 이십니다.늘 사회활동을 하시던 장모님께 자란 저희 와이프가 너무도 간절하게 원하던 그런 엄마의 모습이지요. 그 영향으로 인해 활동적인 장모님 밑에서 자란 와이프는 자신을 꾸미고 가꾸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가정에서도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 하는 그런 여자입니다. 늘 가정적인 엄마를 원해서 이었는지 와이프는 저희 어머니를 너무도 좋아하면서 잘 따라서 결혼 전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녀지간이라고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워낙 둘의 모습이 닮기도 했고요.> 그렇게 시어머님과 며느리 사이가 좋으니 당연히 사돈지간에도 편안한 사이일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축복받으며 결혼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게 행복하고 너무 좋은 나날 이였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기쁜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신혼생활 9개월 만에 와이프가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고 어머니가 함께 병원으로 가서 확인을 해보니 테스트한 결과와 같이 병원에서도 임신이 맞는다고 하더군요. 가족 모두 너무 기뻐서 어지러울 정도였답니다. 행복한 시간1달을 보내고 다시 조심조심 병원을 찾아서 7주가 다 되어가는 아가를 만나보려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 선생님이 난감해 하며 말씀 하시더군요. 와이프가 유산기가 있다고요. 헌데 상태가 많이 안 좋아서 병원에 입원을 할 상황이였답니다. 개인병원에 입원하기엔 걱정이 많이 되어서 종합병원을 찾았고 아내는 2주간 입원을 했다가 퇴원을 했습니다. 퇴원 후에도 몸조심하라는 병원 측의 당부로 인해 어머니의 보호를 받으며 집에서 조심히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저희 어머니를 워낙에 편하게 생각해서 와이프는 부모님 집에서 머물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활절 이였는데 성당을 오가기엔 몸이 걱정되는 와이프가 부활달걀을 사다달라고 하기에 전 급히 성당을 다녀오던 길이였습니다. 와이프와 함께 다니기 시작한 성당이여서 혼자 미사를 보는 게 낯설기는 했지만 기도도 하고 싶었고 해서 혼자 미사를 보고 기도도하고 촛불도 켜고…….제일 예쁜 부활 달걀도 골라서 기뻐할 와이프를 생각하며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서 보니 하얗게 질린 상태로 저희 어머니는 울먹이며 와이프의 양말을 신기고 있었고 와이프는 한손에 피 덩어리가 흥건하게 묻은 티슈를 쥐고 있었습니다. 불안한 생각이 머리를 가득 메웠지만 괜찮을꺼라고 모두를 안심시키며 병원으로 출발 했습니다. 심한 복통과 출혈로 고통스러워하는 와이프를 응급실로 데려 갔습니다. 병원 가는 동안 10 여분이 어찌나 길던지 지금 생각해도 아득하네요. 뒷좌석에서 반쯤 몸을 누이고 신음하는 소리가 어찌나 크게 느껴지던지 저는 신호고 차선이고 아무것도 눈에 안 들어 왔습니다. 지금껏 와이프가 가끔 부딪히고 넘어져서 칭얼거리는 모습만 봤지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처음 이였으니 어쩌면 당연할 테지요. 힘들게 도착한 응급실은 너무도 번잡하고 소란스럽기만 했고 검사를 하나하나 하는 과정에서 실신안하고 버티는 게 놀라울 정도였답니다. 소식을 전하지 못해 도착을 하지 못한 장인 장모님께 저는 급하게 연락을 드렸고 와이프는 아픈 배 때문에 다리를 펴지도 못한 채로 저희 어머니의 손을 잡고 울고 있었습니다. 의사 선생님 말씀이 이미 유산이 되었기에 수술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아내는 사색이 되어서 제 손도 어머니 손도 놓아버리더군요. 병원에서도 너무도 간절해 하며 노력한걸 알고 있었기에 저흰 아무 위로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수술이 결정이 도습니다. 헌데 수술을 하려면 항생제를 투여해야 했는데 제 와이프는 친 할머님의 유전으로 항생제 부작용이 심했기에 아픈 와중에 반응검사까지 했습니다. 또! 저녁을 먹는지 3시간 밖에 안 지나서 바로 수술도 못하고 마취 가능 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견딜 수 없는걸 보고 의사들은 다급하게 수술을 결정했고 결국 공복4시간을 조금 넘긴 채 수술대에 올랐습니다. 수술을 하고 나와서 정신을 차리곤 와이프는 어머니 뵙기를 가장 어려워하더군요. 아마도 너무도 죄송한 맘 때문이 아니었나 싶더구요. 제가 부모님께 알아서 잘 말씀드리기를 원했기에 저는 기회를 보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병원은 서초동에 있는 거였고 저희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곳을 서대문구였기에 장모님이 간병을 하시면 되는 거라 조금 말씀 드리기가 쉬웠죠. 그런데 저희 어머니 와이프의 맘을 읽으셨는지 어머니는 저와 함께 병원까지 같이 가셔서 먼발치에서 와이프만 보고 돌아가시곤 했어요. 그냥 돌아가신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서 들어가서 얼굴이라도 보고 가시라고 제가 말씀 드렸더니 이렇게 말씀 하시더군요. "마음도 많이 안 좋을 테고 나랑 아빠보기가 얼마나 어렵겠니 혹시라도 연우<저희조카>이름은 꺼내지도 말아라.그리고 너희 누나도 문병 오지 말라고 하고"... 저는 더 이상 아무 말씀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와이프는 병원에서 몸을 추슬렀고 유산도 출산과 같은 거여서 조리를 하느라 친정에서 2주 이상 머물렀답니다. 그 후로 1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가끔 안부전화 정도는 했지만 역시나 와이프가 저희 부모님 뵙기를 너무 죄송해 해서 저도 시간을 두고 기다렸습니다. 시집간 저희 누나보다 늘 살갑게 굴었던 와이프가 자주 찾아오지 않으니 그 빈자리가 무지 크게 느껴졌을 텐데도 와이프에게 먼저 말 꺼내지 말라고 말씀하시곤 어머니께선 묵묵히 기다려 주시더군요.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조카의 돌잔치 소식이 전해지더군요.아버지와 어머니는 조카를 보면 마음이 더 안 좋을 테고 사람들이 한마디씩 건네는 말이 속상할지도 모르니 저만 살짝 들르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그날 친구들이랑 약속이 있다고만 얼버무렸는데...경조사를 잊을 리 없는 저희 와이프 당연히 알고 있더군요. 많은 친인척들을 만나서 인사도 하고 안부도 묻고 대답해야 하는 자리라 어머니는 안 왔으면 하셨지만 저희 와이프 너무도 예쁘게 단장을 하고 돌잔치에 갔고 아직은 힘든 몸 일 테지만 될수있는데로 거들면서 사람들의 안부인사에도 잘 대처했습니다. 그날 저녁 저희는 신혼집으로 가지 않고 퇴원 후 처음으로 부모님 집으로 갔습니다. 아버지가 맛있는 것 사주시겠다고 하시면서 분위기를 이끄시더라구요. 오래간만에 만난 것이 반갑기도 했고요. 다 같이 부모님 집에 도착했습니다. 외식 메뉴를 정하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슬며시 와이프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안방으로 가더구요. 한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는 것 같더니 눈시울은 조금 붉었지만 두 사람의 표정이 밝아져서 나오더군요...그래서 저는 그렇게 서로를 위로 한거라 생각했습니다. 헌데 나중에 대화 내용을 건네 들었는데...내용은 이러했습니다. 병원에 입원해있는동안 제가 퇴근이 늦어서 와이프에게 가볼수 없었던 날에 어머니 혼자서 점심시간쯤에 병원을 찾으셨답니다. 문병 가신다는 말씀이 없으셔서 전 전혀 모르고 있었답니다. 헌데 역시나 저희 어머니가 와이프를 먼발치에서 보시곤 그냥 오셨더라구요. 하지만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멀리서 보시곤 돌아서서 가시는 시어머님을 봤다고 이야기 하더랍니다. 자기가 미안해 할까봐 병실에도 안 들어오시고 돌아가신 것 같다고... 분명히 어머님 이였다고. 병실에 왜 안 들르셨냐고 울먹이며 이야기 하더랍니다.그리고 죄송하고 감사하다며 앞으로 밝게 잘 지내겠다고...솔직히 두 사람의 맘을 아는 전 그 이야기를 듣고는 가슴이 메어지는 것 같았답니다. 그렇게 반년쯤 시간이 흘렀고 조카의 돌잔치 이후로는 예전보다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꾸미고 꾸며주는걸 좋아하는 오이프는 예전처럼 어머니 눈썹도 다듬어 드리고 마사지나 팩 해드리고 약속 있으신 날에는 머리도 만져드리고 화장도 해드리면서요.<와이프가 얼마나 살가운지 아시겠죠? ^^>때로는 지나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귀찮게 했지만 그런 며느리가 마냥 좋으신지 한증막에 헬스장에 둘이 데이트하기 바빴답니다. 그렇게 몸과 맘의 상처가 아물어 갈 즈음에 다시 와이프는 엄마가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안전한 임신인걸 확인하기 전까진 말씀 드리지 말자고 해서 단둘이 병원을 찾았고 건강한 저희 아가의 심장소리를 듣고는 가족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가장 기뻐하신 건 저희 어머니셨고 그 다음이 저인것 같네요.^^ 그렇게 한두 달? 안 그래도 사랑받던 와이프이었지만 모든 사랑을 독차지해서 더 예뻐진 와이프가 정말 예쁜 결정을 했답니다. 신혼생활을 3년 정도하고 합치기로 했었는데 저랑 부모님만 좋다면 지금부터 함께 살면 좋겠다고 이야기 하더군요.결혼당시에 3년후에 함께 살자고 약속은 했지만 솔직히 사람 마음은 어찌될지 모르는 거라 기약할 수 없지 않나...싶었는데 너무 기쁘더라고요. 안 그래도 마음먹었던 집이 있었기에 부모님과 상의를 해서 두 가족이 한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함께 살기를 결정하면서 와이프 속마음은 이러했다고 하더군요. 어머님의 묵묵한 기다림이 한편 죄송하면서도 가장 감사했다구요. 지금은 크게 해드릴수 있는것도 없고 아직은 힘이 되어드리기 보단 도움을 받는 쪽이지만 우리 이렇게 이뻐해주시는데 함께 살면 더없이 좋아하시지 않겠냐고 지금은 이걸로 맘을 대신하고 나중에 어머니가 나이가 많이 드셨을 때 가장 큰 힘이 되어 드려야 겠다구요.그래서 지금은 모두가 한집에서 아침을 맞이한답니다. 최근에 암수술을 하시고 동위원소 치료를 끝내고 경과를 기다리시는 저희 어머니 손잡고 운동 하셔야 한다면서 매일같이 손잡고 산책을 나선 와이프의 맘도...문병가면서 와이프가 눈치볼까봐 좋아하는 반찬을 해놓으시고도 하나도 싸주지 못하고 좋아하는 간식꺼리만 사서 제게 들려 보내던 저의 어머니 맘도 모두 변치 않고 항상 지금처럼 사랑하면서 살 수 있길 바라면서 제 어머니와 와이프의 사랑이야기를 전합니다. 꼭 당첨되서 기쁜소식 전해줄수있께 부탁드립니다. -수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