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경아, 기억나니? 20살에 아무것도 없이 무작정 상경했던 우린, 짐이라곤 달랑 옷걸이 하나였던 반지하방에서 서울생활을 시작하면서 참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었지. 처음 서울에 올라온 여름. 큰 비가 내린 적이 있었어. 그때 한참 자고 있는데 바닥이 왠지 물렁물렁해 놀라 일어나보니 욕실에서 물이 넘쳐나고 있었지. 물이 하수관을 타고 역류해 올라왔던 거야. 덜깬 얼굴로 주전자를 가지고 열심히 물을 퍼낸 기억이 난다. 그때는 참 황당하면서도 어이가 없어 정신이 없었지만, 지나고 나니 힘든 일을 함께 보낸 것이 더욱 우리를 끈끈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 당시 우리는 방송에서 모금한 수재민돕기 성금과 동사무소에서 지급하는 담요와 라면, 버너를 받기도 했었는데..그 때 우린 "언니, 우리가 그 말로만 듣던 수재민이 되버렸네."하며 웃기도 했었는데 말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시작한 아르바이트. 밤늦게 끝나는 날 기다리며 밖에서 추위에 덜덜 떨며 기다려주던 너. 손은 추위로 꽁꽁 얼어있었고, 두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돌아오던 그 어둡던 골목길. 우리 인생에도 좋은 날이 올꺼라고 서로를 다독거렸었지. 내 생일날, 생활비가 다 떨어져가던 그때 그래도 생일축하는 해야한다며 여동생이 아르바이트 하던 곳에서 얻어왔던 케잌과 맥주. 비록 초라했지만 가장 따뜻했던 생일축하파티로 내 기억에 남아 있어. 나보다 먼저 시집가게 된 너. 난 마치 나이많은 딸을 보내는 엄마의 마음처럼 왠지 마음이 가벼웠고 기쁘게 보내줄 수가 있었는데, 넌 아니었나봐. 결혼식 하루 전 미리 신혼집에 들어가 살았던 너한테서 전날밤에 전화가 왔었지. 그냥 평상시처럼 대화하고 끊었는데 나중에 제부에게 들은 말은 내 마음을 짠하게 만들었지. '처형, 도대체 무슨 얘기했어요? 애가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을 아무말도 없이 하염없이 울더라구요.' 먼저 가는 미안함일까, 아니면 혼자 남게 되는 언니에 대한 걱정일까... 처음엔 시집가서 시집살이에 잘 풀리지 않는 남편 사업 걱정에, 맞벌이까지. 매일 밤 전화해 수다로 스트레스를 풀었었고, 이 언니는 힘들어 하는 네 모습에 참 많이 마음이 아팠어. 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 적응도 하고, 예쁜 딸을 낳아 알콩달콩 잘 살고 있는 모습에 마음이 놓여. 현경아, 우리 지금까지 힘들 때 서로 의지하며 잘 버텨왔잖아. 우리 둘, 서로가 있음으로 힘든 세상 든든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해. 네가 얼마전에 내 미니홈피에 남긴 글로 이 편지를 접으려 해. "언니가 없었다면 이 험한 세상 어떻게 버텼을까? 친구이자, 엄마이자, 영원한 울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