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게 가당치 않는 일일랑 시간 낭비, 돈 낭비 말고 일찌감치 마음을 접고 돌아서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2007년 새해를 열면서 오래전부터 내려온 이 말을 과감히 파(破)하려고 합니다. 오르지 못할 나무가 있습니까?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십시오. 그림의 떡 같은 일이 있습니까? 그림의 떡이라도 봐야 떡 사러 갈 마음이 생기게 되니 그림의 떡을 쳐다보십시오.
저는 올해 우리 교단의 성도들이 지향해야 할 목표를 이렇게 정했습니다.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한 해가 되자.” 사람들은 스스로 한계를 긋습니다. “이건 되고, 저건 안 돼.”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묘한 것이 사람은 그 한계이상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겁니다. 왜 그런 줄 압니까? 생각이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사실 인정하건데 사람에게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에게는 한계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눅18:27). 사람 편에서 보니까 불가능한 것입니다. 사람 쪽에서 ‘기적’인 것이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리시는 하나님 쪽에서 보면 단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입증하는 ‘표적’에 불과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 역시 늙어 경수가 끊어졌을 때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의사에게 물어보세요.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 아마 의사가 웃을 것입니다. 사라도 웃었습니다. 그랬더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왜 웃느냐? 여호와께 능치 못할 일이 있겠느냐”(창18:14). 그러나 아브라함은 많은 민족의 아비가 됨을 믿었습니다. 이삭을 얻은 것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다 본 아브라함의 믿음의 결과입니다.
이처럼 믿음은 상식과 이성에 귀 기울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만을 듣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꼭 딴죽 거는 자가 있습니다. 그것도 멀리 있는 자가 아니라 가장 가까운 자가 결사적으로 딴죽을 겁니다. “임마, 생각을 해봐. 너 바보냐? 그게 되면 내 손가락에 장을 지진다.” 그래서 포기하고 돌아서게 합니다. 이것은 마치 망망대해를 향해 가는 배에 작은 구멍을 뚫는 것과 같습니다. 큰 배에 작은 구멍 하나 정도야 대수롭잖게 여겨지겠지만, 여기로 물이 새어 들어오기 시작하면 시간문제지 배는 가라앉게 되는 것처럼, 부정적인 자의 말 한마디가 인생이라는 배를 침몰시키기에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한 해가 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부정적인 자와 함께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가장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논리적으로 근거를 대면서 우리의 불합리를 공박할 것입니다. 그 때 그들의 말에 주저앉으면 불가능을 정복할 수 없게 됩니다. 모세가 출애굽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애굽 군대가 추격해 왔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스라엘 민족 앞에는 홍해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습니다. 필경 애굽 군대의 칼에 죽든지, 포로가 되어 다시 애굽으로 들어가든지 아니면 홍해로 뛰어들어 스스로 수장해야 할 지경이었습니다.
살아난다는 것은 바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담대히 그들에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어다.”(출14:14). 이 말을 들으시고 하나님이 모세에게 방안을 제시하셨습니다. “지팡이를 들어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정말 모세의 말대로 가만히 있어도 바다가 갈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바다를 육지 건너듯 했고, 그들이 다 건넌 후에 애굽 군대가 홍해에 들어서자 갈라졌던 물이 다시 채워져 그들은 수장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우리가 말한 대로 그대로 행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말은 곧 그 사람의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14:28).
우리의 생각대로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제가 “상상력을 제한하지 말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당신이 종지만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이 아무리 많이 부으셔도 종지 이상은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태평양 같은 생각을 품었다면 하나님은 무제한으로 당신에게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저는 22년 전에 철산리 지하에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가족 외에 딱 한 명의 성도를 놓고 목회를 시작하면서도 제 생각은 어땠는지 압니까? “세계는 내 교구”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다들 웃었습니다. 누구는 부디 철산리에서만이라도 이름을 날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태클에도 저는 넘어지지 않고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22년이 된 지금 제가 품은 생각대로 세계를 교구화한 것입니다. 이제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시2:8)의 말씀이 제가 바라고 이루고픈 목표입니다. 저는 이것이 오르지 못할 나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반드시 기도하고 노력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사 이루리라고 믿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니콜라이라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왔을 때 제가 탄 리무진을 보고 그렇게 부러웠답니다. 그래서 기도했대요. 제 차와 똑같은 차를 타고 싶다고요. 사실 우크라이나 실정이나 니콜라이 형편으로는 그것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다 그랬답니다. “바랄 걸 바래야지.” 그러나 그는 갈망하는 마음으로 늘 기도했더니 생각지도 않게 독일에서 온 친구가 정말 제 것과 똑같은 차를 사서 가져왔더랍니다. 도토리 하나를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도토리 하나에 불과하고 결국은 썩습니다. 그러나 도토리 하나를 심으면 어떻게 됩니까? 거기서 참나무가 나고 도토리 수백 가마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생각의 힘이 이와 같습니다. 생각보다 무서운 파괴력은 없고, 생각보다 빠른 속도는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새해에는 생각을 바꾸세요. 안 된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는 말씀을 붙잡으세요. 생각만 바꾸면 미래가 보이고, 불가능이 사라집니다. 아무리 하늘에서 비가 쏟아져도 장독 뚜껑을 닫아놓으면 장독에 물을 받을 수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고 싶어도 당신 마음에 부정이라는 뚜껑을 덮고 있으면 하나님도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처녀 마리아에게 천사가 찾아왔습니다.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으로 말미암는 것이라.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능치 못할 일이 없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마리아가 부정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부정을 배제할 때 처녀 마리아는 하나님의 아들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하게 된 것입니다(눅1:26~38).
하나님은 창조주요,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분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능력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을 제한하지만 않으면 말입니다. 당신이 부정적인 자의 말에 춤추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각을 벗어버리고 크게 입을 벌리십시오. “나는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81:10).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크시니까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반드시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2007년이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믿음의 해요, 은혜의 해가 되도록 합시다. 할렐루야.
생각보다 무서운 파괴력은 없고 생각보다 빠른 속도는 없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사다리 놓고 올라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