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라이즈에서는 저에게 방을 내어주셨습니다. 기라성 같은 고수논객들이 넘쳐나는 이곳에서 내공제로인 제게 방을 내어주신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제 직업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튼 방을 얻어 살고 있으니 방세를 내야 합니다. 절대로 방에서 나가기는 싫으니까요.
( 그래요. 맘 바뀌었습니다. 그냥 계속 짤릴 때까정 게기는 쪽으로......)
제가 내는 방세는 결국 제가 먹고사는 일에 대한 이야기가 되어야 하겠지요.
방세 납부의 차원에서 오늘은 '골치 아픔' 즉, 두통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2. 두통과 관련된 간단한 Q & A
▷ 살아가면서 두통을 겪을 수 있는 확률 : 90% 이상 (사실상 100%)
▷ 최근 1년간 대한민국에서 두통을 경험한 사람의 비율 : 남자 63% 여자 73%
▷ 그중에서 '나는 두통과 비교적 친근하다.'라고 답한 사람의 비율 : 남자 13% 여자 25%
▷ 미국 직장인의 실직 사유 제 1위 : 편두통
▷ 두통이 지속되면 꼭 떠오르는 걱정거리 : 혹시 뇌졸중(중풍, 뇌출혈)이나 뇌암(뇌종양)이 아닐까?
▷ 두통 환자에게서 영상의학 검사(CT나 MRI) 시행 시 이상 소견을 보이는 비율 : 약 1-3%
따라서 두통만 가지고 말하자면 제가 밥을 벌어먹고 사는 일거리는 두통 환자 백 명 중 반드시 머릿속 사진을 찍어야 할 두세 사람을 골라내는 일입니다.
오늘 이야기를 올리는 저의 첫째 바람은 글을 읽으신 여러분께 두통이 찾아왔을 때 이것이 그저 귀찮고 짜증 나는 두통인지, 심각하고, 무섭고, 위험한 두통인지 여러분께서 최소한의 감을 잡으시는 것입니다. 저의 둘째 바람은 법은 멀고 주먹이 가까이 있는 현실처럼 의사는 멀고 소염진통제는 가까이 있지만 골치 아프다고 그저 두통약으로 땜빵만 하시다가 '약물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비극이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3. 두통과 "짝퉁 두통".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창문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환자들이 호소하는 증상의 표현 역시 지극히 주관적입니다. 그래서 환자와 의사의 주파수 동조가 이루어지지 않아 서로 엉뚱하게 헤매는 경우가 드물지 않지요. 예를 들어서 말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들의 '배가 아프다.'라는 표현은 사실은 복통일 수도, 어지럼증일 수도, 두통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다섯 살짜리 꼬마가 '배가 아프다'라며 병원을 찾아왔는데 배만 진찰하고서 '괜찮아요.' 하고 돌려보내면 큰일 납니다.
두통도 마찬가지입니다. 두통의 계보에 들어가는 병명 말고 환자가 '머리가 아파요.'라는 증상을 흔하게 호소하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저는 편의상 '짝퉁 두통'이라고 표현하고자 합니다. (그냥 이해를 돕고자 하는 표현일 뿐이니 널리 사용하시지는 마세요.)
'짝퉁 두통'의 1번 타자는 '신경통'입니다. 말 그대로 신경자체에 문제가 생겨서 통증이 생기는 경우지요. 신경은 우리 몸에서 전깃줄의 역할을 합니다. 전깃줄을 보면 안쪽에 구리선이 지나가고 바깥쪽을 비닐피복이 감싸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신경도 그런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깃줄이 끊어지면 아예 전기기구가 작동을 안 하겠지요? 마찬가지로 신경이 완전히 절단되거나 손상을 입으면 증상은 그 신경이 담당하는 구역의 운동마비나 감각마비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전깃줄의 비닐피복이 낡아서 너덜너덜해진 경우를 상상해 봅시다. 접촉불량이 일어나서 기계가 깜박깜박하고, 누전 현상으로 스파크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신경통은 신경이 어떤 원인으로든 부분적인 손상을 받아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손상의 원인은 바이러스 감염, 혈액순환 장애(예 : 잠자는 자세가 불량하여 신경으로 가는 혈류 차단이 일어나는 경우), 노화 등에 의한 퇴행성 변화 등 다양한 양상을 포함합니다.
아무튼 신경통으로 인한 통증의 특징은 '스치면 으악!'입니다 문제가 되는 신경이 담당하는 부위를 건드리기만 해도 무지무지 심한 통증을 호소합니다. 의학적 표현으로 '스치면 으악!'을 유발하는 부위를 "방아쇠 영역(trigger point)"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꼭 바늘로 찌를 때 아픈 듯한, 전기에 감전된 듯한 그런 통증이 오지요.
짝퉁 두통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신경통은 "삼차 신경통"입니다. 얼굴부위를 담당하는 감각신경이 삼차신경인데(가지가 세 갈래, 그래서 삼차) 삼차신경이 너덜너덜 해지는 거지요. 이마나 눈 바로 위, 광대뼈 이런 동네의 통증인데 두통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나이든 사람에게서 호발하며, 주로 신경으로 가는 미세 혈류 장애가 원인이 됩니다. 젊은 사람(40대 이하)에서 이런 문제가 생기면 뭔가 다른 원인이 숨어 있을 수 있으므로(다발성 경화증 등의 신경변성 질환, 종양 등으로 인한 압박) 정밀검사 대상이 됩니다.
짝퉁 두통의 2번 타자는 '근육통'입니다. 근육이 뭉치는 거지요. 주로 뒷목과 뒷머리의 통증을 호소하는데 움직이거나 아픈 부위를 누르면(마사지 효과) 통증이 호전됩니다. 책상 작업을 장기간 지속하면 생길 수 있습니다. 흔한 예를 들자면 PC방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밤낮없이 눈물겹게 생업에 정진하는 차떼기당 알바 여러분에게 주로 나타나는 직업병입니다. (차떼기당에서 산재보험 가입했다면 산재처리를 할 수도 있는 병이지요.)
짝퉁 두통의 3번 타자는 '안구통'입니다. 2번 타자와 같은 이유로 올 수도 있고 난시나 근시 등이 진행하면서 눈의 초점을 유지하고자 하는 과도한 안구운동이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안구 자체의 문제로 본다면 녹내장도 원인 중 하나로 포함될 수 있습니다. 안구통은 시력저하와 동반하여 눈두덩 주위 통증이 유난히 심하다면 의심할 수 있습니다.
짝퉁 두통은 귀찮고 짜증 나는 쪽에 속합니다. 머리의 문제가 아니므로 당연히 비싼 MRI, CT 검사는 필요 없습니다. 증상 완화를 위한 대증 치료를 하거나 안구통의 경우 안과진찰을 한번 받는 것이 좋습니다. 단, 젊은 연령층의 삼차 신경통은 예외입니다. 정밀검사가 필요하지요.
4. 심각하고, 위험하고, 무서운 질병에 해당되는 두통의 양상
ASH님의 명품연작 시리즈를 읽으신 분들은 감을 잡고 계시겠지만 의학에서 질병을 분류할 때 '일차성'과 '이차성'의 표현을 자주 씁니다. 일차성은 정말로 지멋대로 그냥 생겨서 원인을 잘 모르는 경우. 이차성은 뭔가 다른 원인으로 문제를 야기하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심각하고, 위험하고, 무서운 두통은 이차성 두통이 해당됩니다. 모두 머리가 아프면 걱정하는 그런 병들이지요. 악성고혈압, 뇌출혈(지주막하 출혈, 뇌실질내 출혈, 외상성 두개강내 출혈), 뇌수막염, 뇌염, 뇌종양, 흑색종, 측두동맥염 등의 낯선 듯하면서도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한, 또 그러면서도 이름만으로도 의사나 환자들에게 중압감을 주는 진단명들이 이차성 두통에서 등장합니다.
"뇌"라는 장기는 '웃기는 짜장면'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몸을 지배하는 절대군주이지만 인내력은 전혀 없어서 잠시만 혈류 공급이 중단되면 바로 기능장애를 일으킵니다. 매우 이기적이어서 다른 장기를 다 희생시키면서 자기만 살려고 하는 경향도 강하지요. 또 한 가지 특징은 아픔을 전혀 못 느낀다는 것입니다. 뇌 자체에는 통증을 감지하는 구조가 전혀 없습니다. 즉 신체에 중대한 문제가 생겨서 다른 장기들이 아프다고 아우성이어도 뇌는 "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황제께서 침묵을 지키시면 그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환관들이 황제의 옥음을 빙자하여 온갖 협잡을 다 부립니다. 같은 이치로 우리가 두통이라고 느끼는 감각은 뇌자체의 감각이 아니라 뇌를 둘러쌓고 있는 주변 구조에서 느끼는 통증이지요. 두통을 야기하는 해부학적 구조물들은 뇌를 감싸고 있는 뇌막(경막, 거미막, 연막의 3중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과 뇌에 혈관을 공급하는 뇌혈관이지요.
뇌종양이 두통을 유발할 때는 뇌종양이 크기가 커지면서 뇌를 밀어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입니다. 뇌가 밀리면 혈액을 공급하는 뇌혈관과 뇌를 감싸는 뇌막도 같이 밀려나면서 압력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두통이 느껴집니다. 따라서 뇌종양으로 두통이 발생하려면 크기가 뇌를 밀어낼 정도가 되거나 혈관벽, 뇌막, 뇌신경 등에 생겨야 합니다. 작은 종양이 생겨서 뇌 일부분만을 파먹는 수준이라면 두통으로 증상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때는 두통보다는 감각이나 운동이상, 혹은 간질 증상이 먼저 올 수 있습니다. 뇌출혈도 암덩어리 자리에 핏덩어리를 넣고 이해하시면 마찬가지입니다.
이차성 두통이 의심되면 당연히 CT나 MRI 촬영을 해야 합니다. 비싼 검사를 꼭 받아야 하는 경우에 대해서 신경과 선생님들께서 규칙을 정해놓은 것이 있어서 적어 봅니다.
① 갑자기 발생하는, 생애 처음으로 경험하는 극심한 두통
("thunderclap headache"라는 표현을 씁니다. 천둥을 얻어맞은 듯한 그런 두통...뇌출혈, 특히 지주막하 출혈을 의미합니다.)
② 두통의 빈도나 심한 정도가 수시로 변하는 경우
③ 신경학적 검사상 이상소견을 보이는 경우
- 신경학적 검사는 신경기능을 보는 진찰과정입니다. 예를 들면 망치로 무릎 쳐보는 그런 진찰.
- 여기서 이상을 보인다면 뇌졸중이나 뇌종양이 있다는 의미이지요.
④ 시시각각, 매일매일 악화일로를 보이는 두통
- 암덩어리나 핏덩어리가 계속 크기를 키워가는 경우입니다.
⑤ 간질이 동반되는 두통
- 아기들이 열경기 하는 것은 별문제 없지만 30대 이후에 처음 간질발작이 생겼다면 반드시 정밀검사를 해야 합니다.
⑥ 혈관 기형을 시사하는 눈 주위의 이상음
- "bruit"라고 하는데 청진기로 들어보면 '슉슉'거리는 소리가 납니다. 혈관기형은 금방이라도 파열하여 뇌출혈을 야기할 수 있으므로 수술해서 제거하는 것이 후환을 없애는 지름길이지요.
⑦ 환자가 간절히 원하는 경우
- 비용은 상관없이 왜 머리가 아픈지 꼭 머릿속을 찍어봐야 직성이 풀린다고 말하는 환자들에게는 찍어주는 것이 의사나 환자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라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대부분의 두통은 짝퉁 두통이거나 다음 편에서 소개해 드릴 짜증나고 귀찮고 성가신 일차성 두통에 해당합니다. 무시무시한 이차성 두통은 전체 두통 환자의 3%이하라고 처음에 말씀드렸지요? 무서운 질환에 의한 두통들은 일단 두통의 강도가 상상을 초월하며, 점점 심해지는 양상을 보이며, 순수한 두통보다는 다른 증상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에 열거한 기준 외에 고열과 구토를 동반하거나, 기침이나 배변, 배뇨시 두통이 악화되는 경우, 기억력 감퇴, 행동이상, 보행장애, 복시(물건이 겹쳐 보이는 것), 고정적으로 한곳만 계속 아픈 편두통 등이 있다면 만만한 두통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정밀검사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일차성 두통의 양상과 대처방법에 관해서 이야기하려 합니다.
골치 아프다고 사*돈, 펜*, 게*린, 팜*린 등의 약들과 함부로 교감을 나누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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