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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지 신문 우리 자신을 향한 비수


BY 뻔하지요 2007-05-03

석간무료신문이 창간된다고 한다. 불길하다. 소비자후생이 또 커질 것 같다. 한미FTA로 물가가 싸져서 후생이 커진다던데, 이 경우엔 아예 무료란다. 후생이 우박처럼 쏟아질 지경이다. 이건 위험하다. 소비자 후생이 커지면 조국의 앞날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소비자가 웃을 때 국가는 흔들린다.

소비자는 판단력이 없다. 왜냐하면 시장에서 소비자는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합리적이라 함은 이기적이란 뜻이다. 소비자는 돈 몇 푼에 움직이는 존재다. 소비자는 싼 물건을 선택한다. 그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니까. 이익은 욕망이다. 욕망은 통찰력을 거세한다. 그러므로 소비자는 판단력이 없다.

무료라는 건 돈 몇 푼의 차원이 아니다. 아예 공짜라는 소리다. 소비자가 공짜 신문을 놔두고 유료신문을 살 리가 없다. 당연히 공짜를 선택하게 된다. 그것이 소비자의 합리성이다. 그런데 신문이 하늘에서 거저 떨어지나? 당연히 아니다. 신문을 만드는 데는 돈이 든다. 돈 들여 만들어서 공짜로 주기 위해선 둘 중의 하나가 필요하다. 돈이 많거나, 누가 돈을 대 주거나. 결국 돈이다. 돈이 만든 신문을 소비자는 선택하게 된다.

내가 만약 부자 재벌이라면 첫째, 조선일보보다 더 많은 물량을 투입한 무가지를 만들어 배포할 것이다. 그것이 규제 때문에 불가능하다면 둘째, 무가지들에게 광고를 살포해 편집권을 장악할 것이다. 신문사가 전적으로 광고에만 의존할 경우 부자가 편집권을 장악하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운 일이다.

이번에 창간한다는 무료석간신문처럼 기자 수십 명을 두고 제대로 만들어내는 무가지일수록 경영압박은 커진다.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같은 공짜라면 돈이 많이 투입된, 품질 좋은 신문을 선택할 것이다. 돈이 많이 투입된 신문일수록 부자가 만든 것이거나, 부자의 광고에 의존한 신문일 것이다. 언론에 상품 광고하는 부자들에게 소비자는 이윤의 원천일 뿐이다. 소비자는 결국 신문값 몇 푼을 아끼려다, 자신을 이윤의 원천으로 여기는 부자들의 세심한 이데올로기 전략에 스스로 포획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비싼 신문의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물론 가장 좋은 건 국가가 소비자로부터 세금을 ‘갈취’한 다음 공공적인 신문을 무료로 배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꿈속에서나 가능할 뿐 현실에선 불가능하다. 일단 그 정도로 세금을 걷을 수도 없거니와, 결정적으로 국가 자체를 믿을 수가 없다. 국가는 언제든지 언론을 어용화하려 들 테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차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그건,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신문제작비를 국민이 십시일반으로 부담해서, 스스로 신문 편집권을 장악하는 방법이다. 국민 일반을 위한 신문을 만들게끔 압력을 구조화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신문값이 비싸져야 한다.

공짜 신문은 결국 ‘물주’신문이 될 수밖에 없다. 꼬박꼬박 구독료를 받는 신문이나 잡지도 광고주를 감히 거스르지 못한다. 아예 존립의 모든 물적 토대를 광고주에게 맡긴 신문이 광고주의 이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내가 만약 부자라면 무가지의 범람에 손뼉을 치며 좋아라 하겠지만, 가난한 사람은 무가지를 자신을 향한 비수라고 여겨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선 그렇지 못하다. 그것이 소비자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싸거나, 공짜라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존재니까. 나도 돈 몇 푼 아끼자고 국산 모니터가 아닌 대만산 모니터를 샀다. 소비자는 흔들리는 갈대다.

무료인데도 인터넷신문 3인방의 논조가 종이신문 3인방보다 제정신이라고 여겨지는 건, 적어도 아직까지는 인터넷신문을 보는 독자층의 정신상태가 국민일반의 정신상태에 비해 특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인터넷신문이 공짜로 평준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인터넷언론도 유료 정론사와 무료 재벌대행 ‘찌라시’사로 나뉠 경우 지금의 구도가 유지될 수 있을지 극히 불투명하다. 정론사는 비싸기도 하겠지만, 틀림없이 ‘찌라시’사가 무료임에도 불구하고 재미도 더 있을 것이다.

▲ 하재근 칼럼니스트 
종이신문의 세계는 황량하다. 인터넷신문 독자층과 달리 종이의 세계에선 사람들이 자기 돈을 주고 ‘재벌대행지’를 사서 보는 형편이다. 여기에 자체 기자들을 보유한 무료신문이 제공되면, 논조 보고 선택을 주저하는 국민은 극히 소수일 것이다. 물론 논조라봐야 기존의 유료 거대 종이신문과 별로 다르지도 않겠지만.

언론을 돈이 장악하게 되면 민주주의고 뭐고 다 사라진다.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에 더해 제4의 권부라는 언론까지 돈에게 내주면 이 나라가 ‘대한돈국’이 될 판이다. 국가가 규제해야 한다.

무료 신문의 범람은 위험하다. 무료의 유혹은 너무나 달콤하기 때문이다. 나도 나를 못 믿겠다. 소비자는 그것이 독인지도 모르고 마실 것이다. 내가 국가에게 원하는 것은 제발 나의 선택권을 몰수해달라는 것이다. 국가여, 소비자 후생을 짓밟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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