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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 그는 중심인이 아니라 주변인이었다


BY 데일리 2007-06-30

연못에 돌을 하나 던지면 중심을 시작으로 동심원은 주변으로 점점 크게 원을 그리면서 번져나간다. 이사회가 어디를 가든지 중심이 있으면 주변이 있기 마련이다. 누구든지 미국을 가게 되면 공항부터 철두철미하게 조사를 당하여 불이익과 차별을 당하는 주변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미국은 중심이고 한인은 주변이다. 요사이는 지문검색까지 해야 하는 인권차별까지 당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브라질은 맞불작전으로 공항에서 미국인만 지문검색을 하도록 정책을 펴고 있다. 우리나라는 토플비용, 비자신청비용, 영어연수 등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매일 미국에 갖다 주면서도 자존심 다 버려가며 사대주의적 근성으로 인해 굽신거리며 살아가고 있다.

필자는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내 자신이 주변인이라는 의식을 처음 깨닫게 되었다. 태어나면서 줄 곧 한국에서 계속 살았기 때문에 내 자신의 위치는 항시 중심인이었다. 더 솔직하게 표현하면 중심인이라는 의식도 없었다. 7년 만에 외국에서 한국에 들어와 보니 외국 노동자들을 눈에 띄게 볼 수 있었다. 그들을 보았을 때 내 자신이 중심인이라는 의식을 갖게 되었다. 외국에 있으면 학벌이나 지역, 신분, 자본의 유무에 상관없이 단지 아시아인이라는 인종적인 면 때문에 한인들은 주변인으로 자동 전락하게 된다.

L.A 폭동사고와 최근 세탁소 법정분쟁은 중심과 주변인의 시각에서 보면 답이 나온다. 중심인들은 흑인이나 아시아인들과 같은 주변인들끼리의 싸움을 부채질하거나 조장하기도 하며 처절하게 무시한다. 미국인들은 기본적인 것들을 양보하지만 이익과 관련한 것들은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그래야만 주변인들이 중심부에 들어오지 못하고 중심인들을 넘볼 수 없기 때문이다. 주변인들은 중심인들에게 늘 이용당하면서도 연합하여 중심에 대항할 생각이나 꿈은 전혀 꾸지도 않고 주변인들끼리 갈등하며 분쟁한다. 최근에 들어서야 한인들과 흑인들의 관계가 좋아졌다.

미국이나 캐나다에 가보면 알겠지만 한인사회가 건강한 곳이 거의 없다. 한국사회가 그렇듯이 한인사회도 어디를 가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삿바싸움 투성이이다. 캐나다에 있을 때는 캐나다 주정부가 한인회관을 건립하라고 100만불까지 후원했지만 한인회가 양측으로 분열되어 천문학적인 변호사비용을 써가면서까지 캐나다 법정에 서는 일도 있었다. 특히 한인교회는 많이 생기기도 하지만 분열도 많이 된다. 특히 분열의 일번지는 한인교회이다. 미국에서도 지역따진다. 호남향우회가 있다. 망국적 지역병은 전세계어디를 가나 한인에게 따라다닌다.

주변인으로서 서로 힘을 합쳐 대통합을 해도 중심에 들어갈까 말까하는데 민족이 서로 분열하여 기득권싸움에 몰두하고 있다. 이민자들이나 지금의 정당정치나 마찬가지이다. 주변인들은 중심부에 들어가 중심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중심사회에서 뿌리를 내려야 하는데 유대인이외에 다른 소수민족들은 중심속에 들어서지를 못한다. 주변인으로서 미국에 뿌리를 내려 가장 중심에 깊이 파고든 민족이 유대인이다. 미국유대인이 있기에 이스라엘이 중동에 저항하는 것이다. 중국사회도 미국에 점점 강력한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한인사회는 아직은 주변부에 머물고 있다.

한국에 와보니, 이제는 나 자신이 인종적 중심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돈도 대출받을 수 있고, 의료보험 혜택도 받을 수 있고, 비자카드도 어느 정도 신용만 쌓이면 쉽게 받을 수 있고, 어디를 가나 차별 대접이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소수민족들을 보면 불쌍하기 그지없다. 그들은 한인들이 북미에 있으면 늘 고민하는 것 처럼 비자 연기, 불법체류, 직장 등으로 고민을 한다.

이 땅에 사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북미에서 한인들이 경험한 것을 그대로 경험하고 있다. 그들은 한국의 농촌 남자에게라도 결혼을 해서 한국에 정착하려고 하고 있다. 이러는 면에서 한인들은 인종적으로 중심인이다. 한국사회는 인종과 지역, 학벌, 신분, 부, 계보 등으로 중심과 주변인으로 나뉜다.

인종적 주변

먼저 인종적 주변인을 보자. 이 땅에 외국인 노동자가 사라지지 않는 한, 한인들은 영원히 인종적 중심에 서게 된다. 시대가 바뀌고 세월이 흘러가도 웬만해서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한인들은 어디를 가나 자신의 권리와 기본권 보장을 외치고 활보하고 당당하게 다닐 수 있다. 조금이라도 권리침해가 있다면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선다. 중심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주 노동자들이나 소수민족들은 권리침해를 당해도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한인들처럼 조직적으로 거리로 나서기 어렵다. 이주노동자들은 주변인이라는 이유로 매를 맞고, 구치소에서도 불에 타죽는다. 현정권에서는 이들의 인권을 위하여 최대한 법적 조치를 강구했거나 강구중에 있다. 주변인들에 대한 포용정책이다.

지역적 주변

이 땅에서 호남과 연변, 북한출신은 항시 지역적 주변이다. 호남은 늘 불이익을 당하고 때로는 핍박도 받았다. 필자는 전두환 정권 당시 군생활을 청와대(대통령경호실 55경비대대)에서 한 적이 있는데 호남사람들은 당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가물에 콩나듯 있었지만 거의 없었다. 지역적 소외이다. 교계나 사회 각기각층에서 호남출신들은 대체적으로 소외되어 있다. 그나마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있었기에 차별도가 많이 약해진 것이다. 경상도에 비해 호남지역은 모든 면들이 뒤떨어져있다. 공장하나 찾아보기 어려웠다. 김대중 정권 이후에서나 서해안 고속도로 등을 비롯하여 호남지역이 조금씩 개발이 되어 나간 것이다.

호남뿐만 아니라 모든 지역이 주변이다. 서울이 사라지지 않는 한, 모든 지역은 지역적 주변으로서 머물게 되어있다. 그래서 참여정부가 지역적 편차를 줄이기 위해 수도를 천도하려고 했던 것이다. 즉 중심은 주변으로, 주변은 중심으로 향하기 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힘없는 주변 대통령은 중심세력들에 의하여 관습법을 이유로 거절당했다. 참여정부는 행정수도를 천도시키는데 만족해야 했다. 지역을 갖고 중심, 주변으로 나뉘는 것은 국가를 말아먹는 망국적 병이다. 그러므로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적 장벽을 허물고자 나름대로 몸부림 쳤던 것이다.

그러면 서울이 지역적 중심이며 서울에는 주변이 없는가? 서울도 강남이외에 모든 지역은 지역적 주변이다. 강남과 격차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강남구와 중량구는 세수만 해도 수십배의 차이가 난다. 중량구는 서울이지만 지역적 주변이다. 그래서 현정권은 지역적 차이를 줄이기 위하여 종합부동산세를 국세로 하여 걷고 있다. 이는 세수가 약한 지역에 골고루 나눠줘 지역적 균형을 꾀하려 하기 때문이다. 부동산이 6억 이상이면 걷는 것은 강남사람 모두 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강남에서 6억 이하의 아파트는 없기 때문이다. 중심을 주변으로 주변을 중심으로 향하게 하려는 의도이다.

학벌적 주변

이 땅에서 대통령을 비롯하여 국민들의 대부분은 학벌 면에서 주변인이다. 연세대, 고려대 출신인들도 학벌면에서는 주변인이다. 서울대가 사라지지 않는 한 비서울대인들은 학벌적 주변인이다. 그래서 한인들은 학벌적 콤플렉스가 평생 있는 것이다. 어디를 가나 학벌차별이며, 학벌로 인해 사람을 평가하고, 기술여하에 상관없이 학벌을 갖고 사람을 고용한다. 서울대 교수라면 무조건 믿고 거대한 자금을 지원하고 희대의 사기극을 펼쳐도 구속시키지 않고 끝까지 포용한다.

그러므로 이 땅의 치마부대들은 자신의 자녀들을 능력 여하에 상관없이 모두 서울대에 보내려는 욕구와 야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지방대학 출신과 비서울대인들은 평생 컴플렉스를 당하기 때문이다. 가짜박사가 그토록 성직자 사회까지 난무한 것도, 학벌컴플렉스는 그리스도의 은총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영원한 욕구이기 때문이다. 이 땅에 서울대가 사라지지 않는 한 비서울대인들은 학벌 콤플렉스가 사라지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하버드나 동경대, 북경대, 케임브리지 출신보다도 서울대 출신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특히 법조인들은 서울대 반열에 서 있지 않으면 지방법원에서 일하기 일쑤이다. 단지 사법고시 합격한 것만으로 만족해야 한다. 학벌로 인해 중심과 주변이 나뉘는 것은 망국적인 병이다. 그래서 서울대를 없애야 하겠다는 말이 나온 것도 국민들의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일 것이다. 현재 현정권이 끝까지 본고사를 거부하고 평준화를 고집하는 것도 가능하면 학벌적 편차를 막기 위한 몸부림이다. 학벌적 양극화를 막고자 함이다. 현 정부는 며칠전에 세계 200위안에 드는 대학을 전국지역에 여러 개 만들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지방대를 서울대처럼 만들겠다는 속셈이다. 서울대에 버금가는 대학을 만들어 학벌적 편차를 줄여 대학의 평준화를 이루어 보겠다는 속셈이다. 중심은 주변으로, 주변은 중심으로의 전략이다.

자본적 주변

우리사회는 점점 양극화 되어가고 있다. 부익부 빈인빈이다. 이는 우리사회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가 침투한 곳이라면 세계 어딜 가나 겪는 병이다. 미국도 상위 5%가 미국 전재산을 갖고 있다고 한다. 북유럽의 사회복지국가처럼 개인의 정직과 양심이 발전하지 않는 이상 양극화의 문제는 영원한 숙제이다. 아무리 정부의 정책이 숨통을 조이고 법률로서 규정한다한들, 약자와 사회를 위해 헌신한다는 부자들의 정신과 양심이 준비 되지 않는 이상, 양극화의 해소는 쉬운 작업이 아니다. 정책과 법제정은 한계가 있다. 즉 정부의 정책이 아니라 자본가들의 심령이 변하지 않는 이상 양극화는 끊임이 생겨난다.

그나마 양극화를 억제하기 위해서 참여정부는, 종부세를 실시하여 지역균형을 꾀하고, 대출억제와 금리인상을 통해서 부동산투기를 막고, 임대주택을 계속 늘려나가는 정책을 펴고 있다. 중심인들은 더 이상 집을 소유하지 못하게 하고 주변인들은 집을 소유하게끔 하려는 정책을 행하고 있다. 정부가 건설 경기를 죽였다고 하소연은 많으나 사회는 많이 투명화되었고 불로소득으로 돈을 버는 욕망이 사라지게 했다. 현재는 부동산에 투자되었던 유동자금이 증권가로 흘러가 많은 기업들이 살아나고 있다. 부동산 역시 망국적 암병이다.

이와 같이 참여정부는 망국의 암병인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여 중심은 주변으로 주변은 중심으로 들어가기를 꾀했던 것이다. 즉 종부세와 양도소득세 등을 부과함으로 두 채 있는 집은 한 채를 처분하게 하고, 무주택 소유자는 집을 소유하게끔 하는 가능성을 갖게 하고 있다. 이는 자본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을 주변으로,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가게끔 하기 위한 정책이다. 소득적 균등화를 우리기 위한 선진정책이다.

정치적 주변

우리사회에서 정치적 주류는 친일파와 독재정권의 잔당들이다. 이승만 독재정권부터 노태우, 김영삼 야합정권까지 친일파와 군부들이 함께 했다. 그 이외의 반열에 있는 사람들은 정치적 주변부에 속했다. 흔히 지금은 부패로 전락한 당시의 민주세력들이었다. 그들은 김대중 정권을 통해 중심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들은 중심에서 계속 머물고자 했기 때문에 부패로 얼룩진 것이다. 물이 고이면 썩듯이 말이다. 중심은 주변으로 나가는 것이 민주주의 정신이건만 중심에 남기만을 원해서 부패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끊임없이 주변을 향했던 지도자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원칙을 고수한 꼬마민주당 출신으로서 정치적으로 철저하게 주변인이었다. 경남이라는 지역기득권까지 멀리하여 고향에서도 천대받는 주변인이었다. 그는 학벌적으로도, 자본적으로도, 신분적으로도(장인의 좌익성), 정치적으로도 주변인이었다. 그러나 주변인인 그가 대중들의 희망 열의와 기대로 인해 중심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중심에 들어간 노 대통령은 중심에 남지 않고 끊임없이 주변으로 나가려고 했다. 주변국가인 북한을 달래 6자회담을 끌어냈고, 왕의 언어를 벗고 민중적 언어를 구사함으로 중심언어에서 주변언어로 나가려 했으며, 약자와 노인들, 이주노동자들, 북한의 헐벗은 민족들 등의 지원을 통해 끊임없이 주변으로 향하려 했다. 중심에 있던 수도까지 주변으로 가져가려 했다. 불발에 그쳤지만 행정수도는 이동하는데 성공했다. 이제는 대학까지 주변으로 향하고 있다.

저소득층을 대학에 들어갈 경우 많은 혜택을 주려 하고 있으며 나아가 지방대학을 지원하여 세계 200위권에 드는 대학을 육성함으로서 군데군데마다 서울대학을 만드려고 하는 것이다. 중심을 주변으로, 주변을 중심으로 향하게 함으로 주변국인 한반도를 세계중심의 국가로 만드려는 정책을 펴고 있다. 한반도가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내부적으로는 중심과 주변이 별차이가 없어야 한다.

직위에 있어서 중심에 선 노대통령은 중심에 머물지 않고 국가나 언어, 지역, 자본, 사람들, 대학, 부동산 등을 주변으로 끌고 나가 중심을 주변으로, 주변을 중심으로 가져가기를 원했던 것이다. 한나라당과의 대연정발언도 더 이상 정파적, 지역적 이기주의를 멀리하고 서로 단결을 모색함으로 주변국인 한반도를 동북의 허브로 끌고 가기를 원했던 것이다. 즉 주변국들끼리 조그만 땅떵어리 안에서 미주알 고주알 싸우지 말고 서로 정치적으로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타협할 것은 타협해서 지역적 정당을 뛰어넘고 북한까지 포용해, 일본과 중국에 맞서서 대응할 수 있도록 강력한 한반도를 만들어 동북아의 중심이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한국이라는 주변을 중심으로 끌고가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주변인 북한을 끌어들이고 북한을 포용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북한을 포용하지 않고는 미국의 경제공격에 대해서 대항할 수가 없다. 캐나다 알버타 대학의 재정관리학 담당 교수인 제이슨 리도 미래에는 북한의 값싼 노동력과 한국의 고도의 기술이 합해져야 중국과 일본을 능가할 수 있다고 했다.

북한을 포용해서 미국으로부터 FTA를 끌어낸 것은 주변인인 노무현이 중심에 서 있지만 끊임없이 주변으로 나가려는 자세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중심에 있지만 주변으로 나갈 수 있는 자세가 있어야만 주변을 중심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중심에 서 있었지만 그는 창기, 세리, 귀신들린 자, 간음한 여인 등 죄인들과 친구를 함으로써 주변으로 나갔다. 예수는 결국 그들에게 천국의 열쇠를 줌으로서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보다 더 중심에 서게 했던 것이다. 교회는 약자의 친구가 되어야지 머리깍고 기득권을 구하겠다는 기득권자들의 친구가 되다보면 사회에서 점점 주변으로 밀려나가게 되는 것이다. 교회가 주변으로 나아갈 때 사회는 교회를 중심으로 몰아주는 것이다.

예수의 삶처럼 정치인들도 자신이 중심에 서있지만 끊임없이 주변에 서있는 민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입장에 서야 한다. 그래서 민들을 중심에 서게 한다면 결국 민들은 그 정치가를 중심으로 미는 역동적인 힘으로서 작용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민주주의이며 대의주의인 것이다.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 법칙이다. 주변으로 나아가려하면 중심으로 서게 되고, 중심에만 머물려면 결국 주변으로 밀려나게 되는 것이다. 중심에만 서려했던 아테네는 패먕하고 주변정책에 성공한 로마는 세계최대의 강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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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생략...(대선 이야기네요)

황규학 목사/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