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전문직 여성이며 페미니스트인 아이샤는 한 남자의 둘째 부인으로 행복하게 산다. 일부다처제가 전통사회의 억압적 규범 안에서 때로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무늬만 일부일처제’인 세상, 여성들에게 유리한 결혼 제도는 무엇일까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는 잘 정돈된 계획도시였다. 카라치의 카오스, 라호르의 숨막히는 더위 속에서 시달리다가 시원하게 길이 뚫린 깨끗한 이슬라마바드로 오니 그동안 더위 때문에 얻은 열병이 조금 나아지는 듯했다. 라호르에 있는 페미니스트로부터 받은 주소를 들고 여성기관에서 일하는 아이샤를 찾아갔다.
아이샤는 초여름에 핀 함박꽃 같았다. 그녀의 반짝거리는 건강한 피부와 숱이 많은 짙은 검은 머리가 그녀가 입은 노란 살바(파키스탄 여성의 전통의상)와 대조되면서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아이샤는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여성 공무원이었다. 여성들의 능력을 개발하고 여성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해 생긴 정부기관에서 일하는데 지금은 국장급 공무원으로 많은 남성 직원들과 몇 명의 여성 직원들을 거느리고 일하고 있었다. 30대 후반인 그녀는 생기 넘치고 똑똑한 유능한 여성이었다.
아이샤는 대화 도중에 자신은 아주 힘든 ‘카르마’를 타고난 여성이고 자신의 카르마 때문에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면서 여기까지 왔고 지금은 자신의 삶에 대해 만족하고 모든 것에 감사한다고 내게 말했다. 무슨 그렇게 힘든 카르마를 가졌냐는 나의 질문에 그녀는 자신의 인간관계, 일과 사랑이 모두 힘들었다고 대답하며 자신은 “행복한” 둘째 부인, 여성 전문직 공무원이라 한다. 이렇게 똑똑한 페미니스트가 둘째 부인이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십여년 전에 한 모임에서 어떤 남성을 만났는데 그 남자를 보자마자 “운명의 남자”라는 걸 예감했다 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남자는 결혼한 남자였다. 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 남자를 본 후 어떤 남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다. 그동안 가족을 통해 많은 중매와 결혼신청들이 들어왔지만 그 누구도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었다. 지금 아이샤의 남편이 된 “그 남자”도 공무원인데 가난하고 낮은 카스트의 집안에서 자수성가한 남자이다. 집안의 압력으로 부잣집 높은 카스트의 전통적인 여성과 결혼했으나 사랑이 자라지 않는 결혼생활을 해왔다 한다. 아이들이 둘 생겼지만 이 부부의 문화적, 성격적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은 각방을 쓰는 부부 사이가 되어버렸다.
“인류역사상 일부일처제는 사실 존재하지 않았다고 봐요. 축첩제도, 정부, 숨겨 놓은 애인, 창녀제도 등으로 남자들에겐 다른 여자가 항상 가능했었지요. 이슬람권에서 모든 제도적 보장을 받는 법적 둘째부인은 당신 문화권의 첩이나 서양의 숨겨놓은 정부 시스템보다 더 많은 권리를 누릴 수 있지요.” - 아이샤(파키스탄 공무원, 둘째 부인)
아이샤와 지금은 그녀의 남편이 된 아메드는 이렇게 자신들의 사랑을 숨기면서 10년이란 세월을 흘려보냈다. 1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이 “운명적 사랑”에 드디어 그들은 더 이상 귀중한 인생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법적 혼인식을 올린다. 이제야 이 부부는 그들이 애타게 찾아왔던 참 평화와 행복을 누린다 했다. 왜 첫째 부인과 이혼하지 않았냐는 내 질문에 아이샤는 첫째 부인과의 이혼이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더 큰 고통과 어려움을 가져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차선책을 택했다고 한다. 이 어려운 과정을 거치면서 아이샤는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고 이제야 비로소 사회의 관습과 눈에 좌우되는 삶이 아니라 진정으로 내면의 소리를 듣는 독립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와의 인터뷰가 있었던 날, 아이샤는 나를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아이샤의 집은 예술적으로 꾸며져 있었고 부엌에서는 남자 요리사가 저녁준비를 하고 있었다. 저녁준비가 다 끝날 무렵, 아메드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메드를 보자 왜 아이샤가 그를 10년도 넘게 기다려왔는지 알 수 있었다. 파슈툰족인 아메드는 깊은 눈빛을 가진 핸섬하고 건장한 남자였다. 우리는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저녁식사를 했고 식사 뒤 큰 나무가 늘어선 이슬라마바드의 거리를 함께 산책했다. 아메드는 우리들을 끊임없이 웃기는, 유머감각이 넘치는 남자였다. 그러면서도 서방세계의 이슬람 공격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하는 비판적인 무슬림 지식인이었다. 우리 앞을 걸어가며 나를 위해 한국대사관을 찾고 있는 아메드의 듬직한 어깨를 보며 나는 아이샤에게 질문했다. “이렇게 즐겁게 같이 있다 아메드가 첫째 부인 집으로 돌아갈 때 어떻게 느껴요? 질투 나지 않아요? 그리고 아메드가 첫째 부인과 성관계를 가지는 것 받아들일 수 있어요?” 아이샤는 내게 웃으며 대답한다. “아메드가 첫째 부인을 여자로서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그녀와 아메드를 나눠 가질 수 있는 거죠. 나는 아메드가 왜 그 결혼을 떠나지 못하는지 이해해요. 아이들과 그가 속한 가족들 때문이죠. 만약 아메드가 나 아닌 다른 여자와 성관계를 가진다면 나는 그날로 아메드를 떠날 거예요.”
아이샤와의 만남은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했다. 내가 부정적으로만 생각해 왔던 ‘폴리가미’(일부다처제)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풀리지 않는 사랑과 전통사회의 억압적 규범 속에서 해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세계의 많은 인류학자들은 일부일처제가 사실은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결혼 밖의 사랑과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많은 기제들이 존재하면서 ‘무늬만 일부일처제’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남자들에게는 말이다. 아이샤의 행복한 집을 나와 호텔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이런 질문을 해 보았다. 소위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적 사랑을 만났을 때 어떤 제도가 여성에게 더 유리할까? 동양권의 축첩제도? 서양의 숨겨놓은 정부? 아니면 이슬람의 법적인 둘째 부인? 만약 내가 아이샤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쉽지 않은 질문이다. 어쨌든… 나는 아이샤가 행복하고 자기 삶을 꽃피우며 살고 있어서 좋다.
글·사진 현경 교수 미국 유니언신학대학원 cafe.daum.net/chunghyunky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