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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과 북핵문제 진전은 통찰력의 승리


BY 청와대 브리핑 2007-10-19

남북정상회담과 북핵문제 진전은 통찰력의 승리
남북정상회담 성과와 비전 - ①
등록일 : 2007-10-18 백승권 국정홍보비서관실 행정관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인 2000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판단력…역사적 안목을 기르는 일"이라고 답했다. 대통령으로서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역사적 통찰력을 꼽은 것이다. 도대체 역사적 통찰력이란 무엇인가. 참여정부 임기 동안 벌어진 북핵 문제의 해결 과정을 살펴보면 그 말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2003년은 2차 북핵 위기의 어두운 그림자가 한반도에 짙게 드리워져 있는 상황이었다.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전체가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긴박하게 돌아갔다. 미국의 중유공급 중단에 반발해 북한은 핵시설 봉인을 해제하고 IAEA 사찰단을 추방했다. 미국이 공공연히 무력제재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한반도는 전쟁위기로 내몰리고 있었다.  

전쟁위기에서 평화체제로, 역사의 순리 믿고 정확하게 대응한 결과

그로부터 4년 반이 지난 2007년 10월 남북은 정상회담을 갖고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이와 때맞춰 북핵문제는 분명한 해결의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핵시설 폐쇄와 봉인 조치가 끝났으며 한국을 필두로 중유공급이 개시돼 중국에 이어 미국도 조만간 중유를 공급할 예정이다. 지난 10월3일엔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와중에 북핵 불능화와 신고, 미국의 대북제제 해제를 이행해 나가는 로드맵 등 6자회담 합의내용이 발표됐다. 한미정상회담과 남북정상회담에선 한반도의 전쟁상태를 공식적으로 종료시키는 평화체제 수립 문제가 심도 있게 논의됐다.

과연 이런 변화는 시간이 흘러 저절로 만들어진 것일까. 아니면 주변국들의 북핵 문제에 대한 입장과 이해관계가 갑자기 바뀌어 묶였던 매듭이 풀린 것일까. 평화와 협력이 역사의 대세이자 순리라고 판단하고, 상황을 정확하게 분석·예측해 전략을 마련하고 역사적 흐름에 대응하지 않았다면 한반도의 운명은 아직도 심각한 위기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북한이 일시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을 할 때에도, 핵실험으로 상황이 최악이 됐을 때도 참여정부는 평화를 지키기 위한 신뢰의 끈을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다. 북한에게 핵무기를 포기하면 안전에 대한 보장과 개방을 통한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에겐 무력이 아닌 평화적 해결이 유일한 길임을 설득했다.

북핵 문제는 참여정부 기간 동안 대략 네 차례의 변곡점을 지나왔다.

한미회담→9·19→핵실험→2·13, 원칙으로 고비 넘기고 마침내 해결의 길로

첫 번째는 2003년 취임식부터 한미정상 회담까지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적 여론은 북폭설이 나돌 만큼 무력 해결 주장이 비등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북한 핵문제가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며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들과 긴밀하게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은 그해 5월 한미정상회담 등을 통해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원칙을 관련국들로부터 이끌어냈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또 한 가지는 한미관계다. 대통령이 지지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것은 북핵문제를 해결하는데 한미동맹의 역할이 매우 중대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를 바탕으로 한미 양국은 많은 우여곡절 속에서도 북핵 문제에 대한 해법을 일관되게 조율해 왔다. 대통령이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북한을 놓쳐서도, 미국을 놓쳐서도 안 된다”며 ‘친미친북’을 강조한 것도 그 이유다.

두 번째는 9·19 공동성명을 전후한 상황이다. 관련국간 평화적 해결이란 합의 속에서 2003년 8월부터 6자회담이 시작됐지만 2004년 3차 회담 이후 북미 관계의 악화로  평화적 해결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북한은 2005년 2월 ‘핵보유’를 선언하고 ‘6자회담 참가 무기한 중단’을 선언했다. 우리 정부는 한편으로 북한에 특사를 보내 대북송전 제안과 함께 회담 복귀를 촉구하고, 다른 편으로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대북 불공격 약속을 재확인하는 등 6자회담을 재개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재개된 4차 6자회담 2단계회의에서 마침내 북핵 페기와 북미관계 정상화, 동북아 안정과 평화 방안을 담은 9·19 공동성명이 채택되게 된다.   

세 번째는 북한의 핵실험을 전후한 상황이다. 안타깝게도 9·19공동성명은 곧이어 터진 BDA 문제로 첫걸음도 떼기 전에 표류하고 말았다. 대통령은 2006년 한미정상회담에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미국과 합의해 교착상태에 빠진 북핵문제의 돌파구를 찾으려 했으나 몇 달 뒤 북한의 핵실험으로 국제사회의 여론은 악화되고 한반도의 긴장은 다시 최고조에 달하게 된다.

이 무렵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해 사사건건 시비를 붙던 한나라당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의 즉각 중단을 주장하며 ‘국지전도 감수해야 한다’ ‘핵무기 개발을 검토해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까지 서슴지 않았다. ‘안보불감증’ ‘친북좌파정권’ ‘핵무기 개발 지원’ 등의 공격적 표현이 보수언론의 지면을 가득 메웠다. 그러나 대통령과 정부는 평화적 해결이라는 원칙을 저버리지 않고 북한과 미국을 대화의 장으로 불러내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네 번째는 2·13합의 이후 남북정상회담까지다. BDA 문제가 풀리고 2·13합의로 9·19공동성명의 초기이행 단계가 실천되면서 북핵문제 해결과 북미관계 개선의 큰 물줄기가 잡히기 시작했고 마침내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결과적으로 남북정상회담 개최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진전이 이뤄져야 남북정상회담을 할 것이라는 취임 이후 대통령의 일관된 원칙과 약속이 실현된 것이다.  

남북회담, 북핵문제 해결과 선순환 이루기 위해 오래도록 인내

“남북정상회담과 같은 큰 행사는 정치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매력적인 행사인 것은 사실입니다. 누구든 바라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에겐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더욱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정상회담을 하느냐 마느냐는 결국 북핵문제, 그리고 남북관계 진전에 얼마만큼 도움이 되느냐 하는 판단이 먼저 앞서야 합니다.”(2004. 7.21 한일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

“남북정상회담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북핵문제를 풀고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는데 전략적으로 유효하면 정상회담은 좋은 것이고 유효하지 않으면 정상회담 자체가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2005. 7.13 보도·편집국장 간담회)

“내 임기와는 관계없이 정상회담이 6자회담의 결과를 더욱 더 공고히 하고 진전시키는데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적절한 시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점은 우리가 임의로 앞당기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6자회담의 진전을 위해서 뒤로 늦추어서도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2007. 5.31 AP통신 인터뷰)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의 정치적 이용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고 6자회담과의 선순환 관계를 만들기 위해 오래도록 인내하고 기다렸다. 멀리 보고 판단하는 통찰력이 없었다면 남북정상회담은 한차례 정치적 이벤트에 그쳤을 뿐, 지금처럼 커다란 성과를 남기긴 힘들었을 것이다.

동북아 시대 구상, 4년 반 만에 ‘추상적 선언’에서 현실로

앞으로 한반도 문제가 풀리면 동북아 지역은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9·19공동성명에서 합의한 동북아 다자안보체제가 경제·사회·문화 분야의 협력으로 발전해 갈 것이다. 군사분계선에 가로막혀 사실상 대륙과 유리된 섬과 같은 처지였던 우리나라는 이제 유라시아 대륙으로 연결되는 노둣돌을 놓게 됐다. 중동 특수보다 더 강력한 북방경제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북핵문제 해결과 함께 한국경제의 새로운 비전을 갖게 된 것은 대통령이 북핵 위기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당면한 문제에 고착되지 않고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 구상이라는 새로운 틀,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동북아시대 구상은 한반도의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동북아 지역 국가들 간의 반목과 대립을 해소하고 협력과 통합의 새로운 질서를 구현해 번영의 길을 만들어내자는 전략이다.

“동북아 시대를 열자면 먼저 한반도에 평화가 제도적으로 정착되어야 합니다. 한반도가 지구상의 마지막 냉전지대로 남는 것은 20세기의 불행한 유산입니다. 그런 한반도가 21세기에는 평화를 발신하는 평화지대로 바뀌어야 합니다.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을 잇는 동북아의 평화로운 관문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부산에서 파리행 기차표를 사서 평양, 신의주, 중국, 몽골, 러시아를 거쳐 유럽의 한복판에 도착하는 날을 앞당겨야 합니다.”

대통령은 2003년 2월25일 취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많은 사람들은 북핵 위기도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동북아시대 구상을 얘기하는 것은 현실성 없는 이상이거나 추상적 선언에 불과하다고 단정했다. 이것이 4년 반 만에 현실이 될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지 못했다. 역사적 통찰력은 이렇게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