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만드는 궁합
오래 전에 친척들의 모임이 있었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식사가 끝나갈 무렵이면 우리네 삶에 춤과 노래는 의상이라 가무 유흥의 차례는 어김없이 있었다.
주최자가 호명하는 대로 자신의 애창곡을 부르는 시간이었다.
노래를 부르는 차례에서 먼 친척 누나가 지명을 받고 노래를 불렀다.
부르는 노래가 ‘배신자’라는 노래였다.
누나는 인물은 남한테 떨어지지는 않았는데 시력이 워낙 나빠 이것을 자형은 흠으로 생각했다.
자형은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고부터 함께 출타하는 것조차 꺼려할 정도로 누나를 기피했다.
그 반면 누나는 사람이 너무 어질었고 자형을 많이 좋아했다.
아니 오로지 자형만을 사랑했다.
말하자면 세상에 그럴 수없이 자형만을 유일한 남자로 사랑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자형은 지성적인 외모에 차분한 사람이었지만 다소 바람둥이였다.
결혼하고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면서 자형은 노골적으로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다.
그 기간이 몇 년을 두고 그런 행동을 했고 더구나 한 때는 누나와 헤어지려고 여러 번 고심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위의 만류로 거기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이런 와중에 누나도 자형에 대해 참담한 배신감을 느끼고 크게 가슴앓이를 하며 지냈다.
그래서 그 쓰린 심정을 이따금 이렇게 노래로 자신의 비애를 달래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람들은 원래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상황을 나타내는 노래를 즐겨 애창곡으로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실연한 사람은 노래를 들어도 실연의 노래만 즐겨 듣고 그리고 배워도 이런 노래만 주로 배운다.
누나도 그랬다.
속 타는 자신의 심정을 이런 노래를 배워 부르며 위로했다.
나는 노래가 누나에게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어렸을 때는 한 동네에 살며 우리들을 참 많이 보살펴 주었던 누나였기에, 나는 누나를 아끼는 마음에 노래가 끝나자 얼른 다가가서 이렇게 이야기해주었다.
“누나, 앞으로 노래를 배워도 배신한다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다거나 하는 그런 노래는 배우지 마라. 즐거운 노래를 부르면 즐거운 인생이 되고, 실연의 노래를 부르면 진짜 실연하게 된다. 다음에는 그런 노래 말고 밝고 명랑한 노래를 배워 불러라. 알겠제!”
그 후 누나가 다른 노래를 배워 불렀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는 일이 바빠 그 모임에는 자주 빠졌고 내가 참석하면 누나도 빠졌을 때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마도 누나는 다른 노래를 배웠을 것으로 안다.
그러니까 그 후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자형과 헤어지지 않고 며느리도 보았고 사위도 보았으며 지금은 두 부부가 그 어느 부부보다 더 다정스럽게 살고 있으니 말이다.
자형은 잠시 한눈은 팔았어도 사람이 착해 살면서도 폭언과 폭력은 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말하자면 자형이 비열하거나, 잔인하거나, 포악하거나 하는 그런 심성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더구나 누나가 심성이 워낙 착해서 조신했기 때문에 그런 언행을 당하지 않았다고 함이 옳다는 생각을 한다.
부부싸움도 결코 어느 한 사람만 무조건 잘못했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여자가 너무 내주장이 강하면 그 어떤 남자도 이성을 잠시 잃을 수 있으며 그래서 폭력과 폭언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누나는 불만의 말보다 섭섭한 마음과 감정만 표현했을 뿐 오로지 나는 당신만을 사랑한다는 자세로 일관했기 때문에 그래서 자형으로 하여금 극단적인 상황까지는 가지 않게 했던 것이었다.
어쩜 누나가 자형과 다시 다정하게 된 것은 누나의 자형에 대한 진실한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사랑은 그 어떤 것에도 생명을 불어 넣을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배신할 경우가 있다.
자신의 잇속 때문에 의리를 배신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우연히 정분을 나누다 보니 그 정에 끌려 먼저의 정을 배신할 경우도 있다.
그 어떤 배신이든 배신을 당한 사람은 노래가사처럼 원망의 마음을 갖게 되고 그리고 알게 모르게 그 배신에 대한 울분을 토하게 된다.
당연히 배신하면 안 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가까운 사람들이 그 어떤 오해로 돌아서는 경우를 보면 일방적으로 잘못을 누가 저질렀으니 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좀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물론 배신한 사람이 원인제공을 먼저 했기 때문에 그에 상응한 죄 값은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야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그 잘못이 비록 의도적이라 해도 가까운 사람과의 인간관계를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듯이 따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나처럼 잘못에 대해 침묵과 용서로 대하며(물론 누나는 자형에 대해 순수한 사랑을 가졌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행동이라, 이 우직한 방법이 일반론이 되지는 않겠지만) 그 잘못을 깨닫기를 기다린다면 그 기다림이 반성의 기회를 주게 되고 그렇게 되면 웬만한 지성을 갖춘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은 조금의 잘못도 없는데 상대가 일방적으로 배신했다는 그런 배신은 없다.
스스로 자기 자신은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상대가 정말 구제불능의 개망나니 같은, 사랑할 가치도 없는 그런 인간이라면, (아무리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아이는 사랑하지 않아도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는 다른 상황으로 봐야 한다.) 그 어떤 이유와 명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사람과의 인연은 영원히 지우는 것이 백번 낫다.
이것은 기준이 적용 안 되는 그런 특이한 경우로 사주팔자상의 문제가 되기 때문에 여기서는 예외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는 경우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외로 자기 자신은 완벽하고 상대가 일방적으로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매사 따지는 그 성격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를 각박하게 만들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자기에게 도움을 주는 좋은 사람조차 오히려 모두 떠나가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록 ‘배신자’라는 노래를 부르며 원망의 마음을 표할망정 상대에 대한 관대한 용서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삶을 훨씬 더 여유롭게 하기 때문에 이런 마음가짐이 실제 행복한 인생을 사는 처세가 된다는 것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며 이런 자세가 바로 살면서 만드는 궁합이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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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명인 미 담 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