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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예전에 제시한 공직자의 기준


BY 예전에 2008-02-28

*주간조선 2005.03.14. 1845호*

일반적으로 공직자에게는 높은 도덕성이 요구된다. 공직에 유독 훌륭한 인품과 도덕성을 지닌 분이 필요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정부가 하는 일은 기업이 하는 일과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먼저, 정부가 하는 일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국민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이다. 기업의 경우는 다르다. 소비자 한 사람이 어떤 기업의 제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기업의 제품을 사면 그만이다. 그러나 정부의 경우 국민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주어지지 않는다. 정부의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에도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싫어도 정부 정책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정부는 또한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력의 크기에 있어서 기업과 사뭇 다르다. 기업의 경우에도 유행을 선도하는 제품 개발을 통해 새로운 생활양식을 창조하는 등의 방법으로 소비자의 생활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경우와는 근본적으로 영향력의 차원이 다르다. 정부가 결정하면 국민은 그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고, 정부의 결정은 국민의 삶에 실로 엄청난 영향력을 갖는다.

정부의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아무리 일을 잘못해도 절대로 도산(倒産)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업의 경우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소비자의 외면을 받으면 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의 경우 강제로 징수하는 세금으로 운영되므로 망할 염려가 없다.

또한 정부가 하는 일은 결과의 잘잘못을 따지기가 곤란하다는 특징을 갖는다. 국민에게는 정부가 과연 얼마나 부실하고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알아낼 방법이 별로 없다. 기업의 경우 많은 이윤을 남기면 일을 잘했다고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경우 ‘기업의 이윤’과 같은 편리한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의 경우 매우 복잡하고 때로는 상호모순적인 다양한 가치를 동시에 충족시켜야만 한다. 이러한 이유로 정부가 얼마나 일을 잘하고 있는가를 알기란 매우 어렵다.

요컨대 정부는 국민에게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효율성이나 성과의 평가가 어렵고 아무리 부실하게 운영되어도 망하지 않는, 힘세고 통제하기 어려운 존재다. 그러므로 국민은 자신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이지만 정부의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전문성만으로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공직자, 특히 고위 공직자를 선발하는 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정부를 만들기 위해서는 남이 보지 않아도 사심 없이 최선을 다하는 높은 도덕성을 지닌 일꾼이 필요하다. 기업가에게 높은 도덕성은 필수조건이 아니다. 기업가가 높은 도덕성을 갖고 있지 않아도 기업은 얼마든지 좋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그러나 공직자의 경우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다. 위법성 여부는 말할 필요도 없다. 편법 시비에서 자유롭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국민에게 양해를 구할 성격의 문제도 아니다. 편법적인 투기의혹을 받고 있는 경제수장(首長)의 거취 결정이 국가 경제의 장래에 대한 우려로 이루어진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로 이루어진 것인지 우리 국민은 도무지 알 방법이 없다. 결정을 내린 분의 도덕성을 믿는 수밖에 없다.

바로 이것이 공직자에게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이유다.

<이명석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