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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고 ,,,,,,,,,


BY 밥좀묵자 2008-04-09

그 때가 아마도 사월 중순이 넘었던 것 같았다.

가끔 나를 둘러 싼 일상이 마치 줄에 묶여서 뺑뺑 돌리면
죽어라하고 원을 그리면서 돌지만, 영원히 벗어 날 수 없는
돌맹이와 같은 심정이었는지, 가끔 아버지께 말씀을 드리고는
혼자서 발 닫는 데로 길을 떠나곤 했다.

특히 해가 지고 내 일을 마치고 나면
적막하기 짝이 없는 고요속에서
아직은 세상과 부대끼고 싶고, 살았던 도시의 웅성거림이
그리운 철없는 나이인지라 자주 흔들렸던가보다.

그런데 희안하게도 발길은 서울로 향하기보다는
집 보다도 더 적막하고 사람이 드문 곳으로 향하였으니
지금 생각해도 이해불가..

그 날은 가까운 쌍계사에 벗꽃이 한창이라니 꽃구경도 하고
아예 하루 외박을 하고 오리라는 야무진 각오로 길을 떠났다.

쌍계사가는 버스를 타고 중간 화계에서 내려서는 거기서 부터 걸어서
벗꽃길을 가는데 마주치는 사람이 열 댓명,
앞서거니 뒷서거니 가는 사람도 서너 사람...이렇게 근 십리를
한적하고 호젓하게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면서 꽃길을 걸어 걸어 쌍계사를 향하였다.

그 때는 좁은 비포장도로에 아름다리 벚꽃나무가 터널을 이루어
정말이지 말 그래도 꽃 터널을 걸어가는 장관을 연출하였다.
그 후에도 몇 번을 서울서 내려온 형제간들과 그 길을 걸었지만
그 때 호젓하게 걷던 그 꽃길은 아마 눈을 감기전에는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그 때만 해도 절 주변엔 선물용품집 두 어개가 있었을 뿐이고
소박한 민박집이 대 여섯집이 있었을 뿐인데,
오후 늦으막히 도착한 나는 오늘은 혼자 거기서 밤을 나고
아침에 불일폭포를 가기로 작정을 하고 민박집을 구하였다.

아주머니는 아가씨가 혼자 와서 방을 달라고 하니
조금은 의아한 눈길로 바라 보시더니 이내 사람좋은 미소를 지으시면서
봉창문을 열면 바로 계곡물이 콸콸 흘러내리는 작은 방으로 안내를 해 주셨다.

짐이랄 것도 없으니 그냥 방을 휘 둘러보고는
솔더백만 방에 두고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보기도 하고
절 입구에 떠억 버티고 선 사천왕상의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기도 하고
조용한 산사에 구석진 뜰을 거닐기도 하다가 내려오니

조금은 배가 고팠지만 경제사정상 하동에서 점심겸 저녁을 먹었기에
참기로 하고 다시 내 방을 돌아오니 계곡의 물소리는
아까보다 더 우렁차게 들리고 밤이 깊어가니 이건 벽력같이 들렸다.

자다 깨다, 물소리에 잠을 설치고 있는데 갑자기 문을 두들기는 소리.
" 아가씨야, 우리 참 묵는데 같이 좀 무라고...퍼뜩 나오거래이" 하시는 주인집 아주머니.
부시시 눈을 부비고 나오니 아직은 한 밤중인데 안채엔 불이 환하고
그 집 식구들은 그 오밤중에 한창 식사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의아해서 쳐다보는 내게 아주머니는 숟가락을 쥐어주면서 설명을 하신다.

고사리를 뜯으러, 아니 베러 가려고 일치감치 새벽밥을 먹고 있다는 것이다.
장장 서너시간을 산을 타고 올라가면 고사리 군락지가 있는데
아예 낫으로 베어서는 가마니에 콱콱 넣고 굴려가면서 고사리를 베어 온다는 것이다.
힘은 들지만 부수입으로 짭짤해서 이 맘때면 몇 번은 하는 행사라고 하신다.

"아가씨 아까 본께, 동네를 슬슬 다니기만 하고 식당엔 안들어가데?
그래서 배 고프지 싶어 불렀다 아이가, 마이 무래이~~" 하시면서 재차 권하시니
자다가 일어났는데도 산나물에 된장국, 그리고 보리밥 한 그릇을 게 눈 감춘듯이
먹고는 길 떠나는 아주머니, 아저씨, 그리고 같이 가시는 동네분들을 배웅하였다.

그리고 조금 눈을 붙이고는 나도 십리갸량 떨어진 불일 폭포를 향해서
외지고 고요한 산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아무 생각없이, 단지 계속 나를 따라 오면서 이 가지, 저 가지 사이를 옮겨다니는
작은 새의 지저귐과 서걱거리는 풀잎사귀와 나뭇잎에 떨어지는 이슬 방울 소리만 들리는
새벽 산 길을 걸으면서 어린 나이에 삶에 대해서 무엇을 그리도 깊이 느꼈겠냐만은....

외롭다는 것...아직은 가끔은 돌봄을 받고 싶은데 모셔야 할 어른들이
아직은 여린 내 어깨가 지탱하기엔 가끔은 버겁다는 것...
그러나 내가 져야 할 짐이라는 것, 그래서 나는 내게 힘을 실어줘야 하며
지금 바로 그런 작업을 하는 것이라는 것...아마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무심히 걷고 걷고 걸었던 것 같다.

이윽고 불일폭포에 도착하니 거기서 텐트를 치고 야양을 하던 몇 몇 사람들이
벌써 일어나 폭포물에 세수도 하고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 보인다.
소에는 물보라가 곱게 피어 오르고 푸르름은 문뜩 비치는 아침 햇살에
더욱 더 푸러러지고 안개에 의해 아른거리는 몽환적인 분위기였다.
길게 떨어지는 폭포의 긴 여운을 바라보며 한 쪽에 앉았다가 나도 시원한 폭포물에
세수를 하고는 다시 오던 길을 내려왔다

올라올 때 작은 비닐 봉지와 나무 젖가락을 하나 준비해서는
내려올 때에 눈에 띄는 담배 꽁초나 작은 휴지를 담으면서 내려왔다.
거창하게 자연보호니, 의로운 행동이니...그런 건 전혀 아니었고
다만 이렇게 풍요롭게 자신을 찿는 인간에게 작은 고마움을
지리산에게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었을 뿐....

민박 할머니께 인사를 하니, 대충 식사를 하면서 사는 이야기를 들으셨던 지라
그저 잘 살아래이, 잘 살아래이, 또 온나 라는 말씀만 되풀이 하신다.

짧은 여행길에서 돌아 온 손녀딸을 반기시는 할머니의 환한 미소와
"좋더나?" 하시면서 웃으시는 아버지,,,그리고 언제나 처럼 아무 말씀도 없으신 할아버지.
대충 치우고 빨래를 고무다라에 잔뜩 이고는 시냇가 빨래터로 향하였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지리산과 그 안에 묻힌 사람의 情이
우리 동네의 낮으막한 동산들이 더 정답게 보이게 하고
함께 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사랑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