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주 오랫만에 명동 근처를 나갔습니다.
결혼하고 경기도사람 된 이후로 나올일이 참 많지 않더라구요
결혼 15년,
친정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형제도 없는 내게 서울은 아련한 추억속의 도시가 되어버렸습니다.
집앞에서 좌석버스 타면 한시간 조금 더 걸리는 거리에 살면서두요
명동, 을지로, 충무로.. 그 좁은 골목골목들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 한켠이 먹먹해지곤 해요
가장 예쁘고 아름답던 그 찬란하던 젊은시절을 보냈던 곳이라서일까요
퇴근하고 나면 친구 혹은 동료들과 을지로등지의 좁은 골목들을 누비며 허름한 선술집을 찾아 그날 쌓인 업무의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고 젊음의 낭만을 풀어내기도 했었지요
어제는 오랫만에 을지로 골뱅이 골목도 들어가 맥주 한잔도 하고, 저동 인쇄골목 사이사이를 훓으며 돌아다녔습니다.
저쪽에서 한 무리 흰 와이셔츠를 입은 무리가 지나갈때 혹여 그 안에 당신의 얼굴이라도 있을까 자꾸 쳐다보게 됩니다.
말도 안되는거 알면서도.. 가슴 한켠이 아려옵니다.
왜 우리는 그때 이 좁은 골목길 사이사이도 함께 손잡고 걸어보지 못했을까요
왜 마음만 가지고 있을뿐 서로 손을 내밀지 못했었던 걸까요
그때는 당신을 이해했었습니다
내게 손을 내밀지 못하던 당신을 이해했고 그래서 원망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난 당신을 원망하고있습니다.
당신을 떠날때 난 미련도 없었습니다
어차피 안되는 사이라고 생각했었고 일찌감치 마음 접었었거든요
그리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나는 내 가정에 충실했다고 생각해요
일년에 한번 정도씩 뜬금없이 꿈에 당신을 보고나면 한 이삼일은 나조차도 이해할수 없으리만치 당신 생각이 간절해졌지만 그렇게 이삼일 지나면 또 괜찮아지곤 했으니까요
어디서 잘 살겠지 했어요
아마 결혼도 했겠지.. 아이도 한둘은 있겠지..생각했었구요
지난주 우연히 알게된 당신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서 아주 심상한 표정으로 돌아서면서 생각했지요
지금은 실감이 안 나지만 아마 내일이나 모래쯤부터 당신때문에 아프겠구나하고..
벌써 십수년전에 이십대의 나이로 이세상 사람이 아니라구요 당신이?
전날 동료들과 퇴근하고 탁구도 치고 간단하게 술자리도 하고 돌아갔는데 다음날 아침 심장마비로 떠났다고 연락이 왔다고 하더군요(옛날 당신 동료를 우연히 만났거든요)
결혼하고 한 칠팔년동안 해마다 당신꿈을 꿨었습니다
그때도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던거군요
난 그것도 모르고 언젠가는 한번쯤 만나겠지 했었어요
머리에도 이젠 어느정도 희끗희끗한 새치가 번져있겠지, 얼굴에도 아랫배에도 살이 올라 있을지도 몰라..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예전같은 마은은 아니더라도 젊고 아름답던 시절에 짫게 함께한 추억을 떠올리며 서로를 축복해줄수만 있으면 족하리라 생각했었거든요
젊은 시절 우리가 처음 만났던 명동의 거리를 사람들에게 치이며 걸으면서 처음 당신을 원망했습니다.
바보같은 사람, 멍청한 사람이라고
그것밖에 못 살고 갈것을 무슨 생각은 그리 했던거에요
차라리 그냥 내게 손 내밀지 그랬어요
그냥 솔직하게 마음 가는데로 다른것 생각하지 말고.. 그럴걸 그랬어요 잘못했어요 우린
그랬더라면.. 그랬더라면
마지막 가는 그 순간까지 당신 좀더 따뜻하게 살 수 있었을텐데
사랑했던 추억을 간직하고 당신 하늘 나라로 떠날수 있었을텐데
우린 너무 생각이 많았고 쓸데없는 자존심만 강했던거죠
결혼 앞두고 마지막 통화에서 잘 살라고 했잖아요 내가. 좋은 사람 만나라고 했잖아요
너도 떠나고 무슨 낙이 있겠냐고 농담처럼 말했을때 나도 농담처럼 받았었죠
떠나기전에 잡았어야지.. 웃으면서
우리둘다 진심이었던 거에요
참 준수하고 실력있고 착한 사람이었는데..
잘자란 아들이었고, 촉망받는 인재였는데..
누군가의 남편이 되었더라면 자상하고 좋은 남편이 될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보고싶네요
사석에서 볼때 오빠라고 부르라고 했었는데 한번도 그렇게 못불러봤어요
한번 불러볼걸 그랬어요
점심때 몰래 만나서 한시간 남짓한 데이트 난 달콤했었어요
알아요? 그때 당신 눈빛도 내게 반해있었었죠
사랑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사랑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이들어요
결혼하고 칠팔년을 해마다 한번씩 당신꿈을 꾸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미안해요
그때 그렇게밖에 못해서 미안해요
그리고 당신 소식 이제야 알아서 미안해요
추억해줄게요
잊지않을게요
지금 있는 그곳에서 잘 살아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