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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되고서 알았다.


BY 딸 2008-06-16

우리 친정 엄마는 직장에 오래 다니셨다.공부를 잘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홀로되신 외할머니와 함께 두 외삼촌 대학 보내느라 정작 본인은 실업계고를 나오셨다.

그러다 엄마는 공무원이 되셨고,아빠를 만나 석박사 공부까지 다 시키셨다.

엄마는 항상 밝았다.그리고 당당했다.실업고 나온 사람 티도 안 났고 얼굴도 뽀얏고 키도 커서 모두들 부잣집에서 고생않고 자란 사람으로 보아왔다.

나는 직업인으로써의 엄마를 존경했다.하지만 나의 엄마로써는 그렇질 못했었다.

엄마는 남자 같은 성격이었고 다른 엄마처럼 집에서 세세한걸 챙겨주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오빠는 똑똑하고 장남으로써 대접 받았고,애교많은 막내는 막내라고 귀염을 받았다.하지만 애교도 없고 똑똑하지도 않은 나는 그리 부모의 관심거리는 아니라고 생각이 되었다.오빠가 나보다 훌쩍 크기 전까지 난 항상 남자 옷을 입고 다녔다.

자라면서 엄마한테 많이 혼나고 모진 소리도 많이 들었다.오빠와 동생은 밥 먹고 놀고 공부하고 이것만 했는데,난 엄마가 직장에 다녔기 때문에 소소한 집안일도 해야했다.그게 제대로 안되었을 경우 엄마한테 혼났다.난 그때 억울했다.오빠와 동생은 안 시키면서 나만 하는게.그리고 이건 엄마가 할 일인데 왜 나한테 시켜놓고 화풀이야,이렇게 생각했다.어떨 땐 오빠와 동생 뒷치닥거리까지 해야했으니까.그리고 더 기분 나쁜건 오빠와 동생은 내가 그렇게 하는걸 그냥 당연한거라 생각했고,지금도 그 얘기를 하면 니가 뭘 그렇게 했다고,이런다.

때때로 내가 설 잠이 들었을 때 엄마가 내 방에 들어와서 내 머리를 쓰다듬고 내 손을 어루만지던 기억이 종종 난다.그리고 그때의 어색함까지도.엄마에게 나는 항상 날 혼내는 존재였지 내가 깨어있을 때 나를 안아주거나 격려해주는 말을 했다거나 사랑한다는 말을 한번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엄마가 되고서 나는 알았다.그건 나에 대한 미안함의 표시라는걸.세월에 너무 지쳐버려서  억세지고 표현할 줄 모르는 엄마여서 그렇지 사실은 한 사람의 순수하고 연약한 여자였다는 것을.

어제 아이 우산에  실로 이름을 세기면서 예전에 엄마가 그랬었던 일이 생각났다.엄마도 나처럼 이랬었지...그러면서 엄마가 해준 일이 하나 둘 생각났다.다른 아이와는 조금은 특별났던 도시락 반찬,그래서 밥 늦게 먹는 나는 다른 애들이 반찬을 가져가서 반찬이 모자라 밥을 다 못 먹었던 기억,다른 애들 문방구에서 파는 책 싸는 비닐이나 쌀봉지로 교과서를 싸던 시대에 예쁜 색지 구해다가 책을 싸주시던 기억(물론 저학년때만.그 후는 내가 쌌고),연필깎는 칼로 직접 내 연필을 깎아 넣어주던 손길......

고등학교때도 생각났다.나를 위해 내 고등학교 친구들 엄마끼리 계해서 바쁜 와중에도 함께 모일 수 있게 했던 일들,그리고 나 교통사고 당했을 때 병실에 오던 사람들마다 붙들고 우셨던 기억(머리가 찢어져서 그렇지 다른데는 타박상 정도였는데)......

그런데 나도 엄마 자식이라고 엄마한테 표현하는 법을 못 배웠다. 아직 태어나서 엄마한테 사랑한단 말 한마디 못 해봤다.

난 애가 둘인데 큰 애는 예전 엄마가 나한테 했던거 처럼 많이 혼난다.얘한테 난 사랑한다는 말을 잘 안 하지만 얘는 지 애미를 닮지 않았는지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 단다.난 그럴때마다 어색하게 나두 사랑해,이 정도는 하지만.

하지만 난 사실 이 아이를 많이 사랑하고 또 이 아이에게 많이 미안해한다.표현은 안 했지만.

내 아이도 나만큼 커서 아이를 낳고 기른다면 내 맘을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