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여전히 환경이다뭐다해도 재래시장에선 빼놓을 수 없는 까만 비닐봉지.
딸을 가진 탓인지 저는 유난히 입덧이 심했어요.
임신중에 제 별명은" 개코"였거든요.
저는 그때 부산시 수영동에 살았고 저희친정은 울산입니다.
그날도 여전히 변기를 붙들고 통 사정을하고 기운없어 누워있다가
갑자기 겨울김장김치를 금방지은 기름진 쌀밥에 척 걸쳐얹어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 그 아이가 12세이니 그때만 해도 김치냉장고가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어요.
그때도 김치냉장고가 있었나도 모르겠네요.
만만한게 친정이라고 친정엄마한테 전화를 해봤어요.
그때가 4월달 이였을거에요.
마침 냉동고에 얼려놓은 김치가 있다며 울산에서 가는 동안에 녹을거라며..
뭐라도 먹고싶으니 다행이시다며 곧 출발을 하시겠노라 했어요.
저는 기쁨에 들떠 맛있게 먹을 상상을 하면서 얼른 밥을 했습니다.
두시간쯤 지났을까 버스를 세번이나 갈아타시고 친정엄마가 낑낑거리며 들어오시더군요.
인사를 할겨를도없이 보자기를 나꿔채서는 밥을 양푼이에 하나가득 퍼갖고 보자기를 풀어헤첬더니...
"세상에!!!"
까만 비닐봉지 세봉지를 풀어 헤첬는데 김장김치가아닌 버리기 아까와서 모아둔 김칫국물...
저는 애처럼 펑펑 울었어요.
입덧을할때의 엄마들은 제심정 이해하시리라..
아닌가?제가 좀 심했나?
엄마는 미안하신지 허탈해하시며 아버지께 원망의 전화를..
아버지께서 또 다시 챙겨서 오신다며 엄마는 저를 달랬어요.
오만가지 심통을 부리며 기다렸더니 아버지께서 택시를 타고 오셨네요.
짠돌이로 소문난 노인네가 거금 4만원을 주시고 총알택시를 타고 오셨더군요.
고마움은 뒷전이고 또 까만 비닐에 쌓여진걸 나꿔채서 걸신들린 사람처럼 정신없이 먹었습니다.
그때 그 맛은 잊을수가 없어요.
그날이후로 그날의 맛을 느껴보질 못했습니다.아직까지도...
정신을 차리고보니 엄마께도 화낸게 미안하고 아버지까지 오시게 한것도 미안하더군요.
꽁꽁 얼어있던 김치국물이 얼마나 무거웠을까요?
그걸들고 버스를 여러번 갈아타고서 자식 먹일려고..
저도 그렇듯 엄마께 효도는 못해드린것같은데...
오신김에 주무시고 가시랬더니 그래야 될것같다며 사위랑 소주한잔할 생각에 귀한 안주를 챙겨왔다네요.
그러면서 또 까만 비닐봉지하나를 꺼냅니다.
저녁에 남편이 퇴근하고 남편에게 꿩요리를 먹을줄 아시냐며 은근히 어깨에 힘을 주시더군요.
남편이 좋아라 하자 손수 요리를 해오시겠다며 주방으로 나가시더니..
껄껄껄 웃으시며 내평생에 두번다시는 까만 비닐 안쓰시겠다며 황당해하시더군요.
어렵게 구한 꿩한마리인줄알고 사위랑 드실려고 아껴뒀다 가져왔더니...
그건 먹다남은 치킨.그것도 가슴팎살만 모아둔 치킨였어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날이후 까만 비닐봉지만 보면 그때생각이나서 웃습니다.
더불어 부모님께서 절 생각해주신 그사랑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