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저녁은 참 반가운 일이 있었습니다.
그건 초등학교 동창생 중 하나가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은 것이죠.
하여 대전 거주의 동창생들이 모두 모여 그 친구를 진정으로 축하해 주었습니다.
거기서 술을 마시고 집으로 오니 여전히 건강이 안 좋은 아내가 맞아 주더군요.
“2차는 안 갔는가 보네?”
“응, 오늘은 다들 바쁘다고 해서 1차로만 끝냈어. 그나저나 저녁은 먹은 겨?”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아내의 아픈 다리를 잠시 마사지 해 주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근데 오늘 새벽엔 그놈의 빌어먹을(!)
모기들 때문에 그만 또 새벽잠을 놓치고 말았지 뭡니까!
집요하게 흡혈하는 모기 때문에 가렵고 미칠 지경이었지요.
“니들은 오늘 다 죽었어!”
도끼눈을 뜨고 예리하게 추적하여 마침내 우리 부부의 피(血)를
빨아먹곤 포만감에 젖어있던 모기 두 마리를 살충제를 뿌려 잡았습니다.
하지만 그 바람에 잠은 이미 십리 밖으로 달아나고 말았지요.
아내가 말했습니다.
“기왕지사 일어난 김에...”
자신의 다리를 콜드크림으로 마사지 해 달라고 말입니다.
“그러지 뭐.”
평소엔 그냥 맨손으로 마사지를 해 주는데 이따금 아내는
오늘 새벽처럼 콜드크림을 듬뿍 발라 마사지 해 주길 원하기도 합니다.
침대에 누운 아내의 다리 밑으로 우선 신문지를 가져다 쭉 폈습니다.
다음으론 비닐장갑을 양손에 껴곤 콜드크림을 듬뿍 찍어냈지요.
양 다리의 뒤쪽에서부터 발가락 사이로 힘을 주면서
마사지를 해 주니 아내는 시원하다며 좋아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자니 만날 건강이 안 좋아, 특히나
다리가 아파서 고생이 심한 아내가 새삼 가여웠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마사지를 하고 나니 문득 배가 고파왔습니다.
주방으로 가서 반찬을 살펴보니 밥통에
밥만 있을 뿐 정작 떠먹을 국이나 찌개는 없더군요.
그래서 오늘도 콩나물국을 제가 시원하게 끓였지 뭐예요.
팔불출같은 소리일지 몰라도 하여간 제가 왠간한
국과 찌개는 척척 잘 끓이는 손재주가 있습니다.
물론 아내가 직접 끓여준다면야 더 맛이 있었겠지요.
하지만 건강이 안 좋은 아내 대신에 남편이
주방일도 하는 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남편이라도 되니까’ 사랑하는 아내도 먹을 국을 만든다는 주장인 것이죠.
이윽고 국이 완성되었습니다.
“콩나물국 끓였는데 같이 먹을까?”
이따 먹겠다기에 혼자 대충 먹곤 설거지까지
하고 나니 어느새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가방도 맸습니다.
“다녀올게.”
“그래요...”
아내의 건강이 회복되길 바라면서 집을 나와 골목길로 접어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