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이곳을 떠났던 이들의 아픔 그리고 사랑이 숨결 채 느껴지는 인천, 월미도에 위치한 한국이민사박물관.
<인천 월미도 지구에 위치한 한국이민사 박물관>
내나라, 내 민족을 두고 떠나던 동포들의 한 서린 길인만큼 숙연해지는 가슴을 안고
박물관을 찾았다.
글로벌 속에서 한민족의 힘을 과시할만한 기업들의 공단이 즐비한 인천 월미도에 미주 이민100주년 기념을 위해건립되었던 이민사박물관이 우뚝 자리잡고 있었다.
<제물포를 중심으로 뻗어나간 일본 이민 항로>
나는 세계각국에서 한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엿보았던 경험이 있던 터라, 세계한인의 날 리포터가 되어 그곳을 찾는 만큼 더욱 가슴이 벅찼다.
인천은 2009 인천방문의 해를 준비 중에 있어서 그런지 곳곳이 축제 분위기였다. 특히 황금연휴로 도로는 정체가 계속되고 있었지만 월미도 끝자락에 위치한 박물관은 가을 햇살을 머금고 여유를 부리는 듯 한산했다.현대적 건물 속에 해외 700만 동포들의 과거에서 현재 미래에 이르기 까지 삶과 애환이 살아 숨쉬는 박물관은총 4전시실로 이루어져 있었다. 로비에는 우리 선조들의 해외에서의 개척자적인 삶을 기리고 그 발자취를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힘쓴 이들의 명단이 가장 먼저 나를 반기었다. 평상시에는 도슨트 자원봉사를 하는 이들이 있다지만, 개천절이어서 그런지 상주하고 있지 않았다.한인들의 이민 첫발처럼 나도 홀로 탐방을 시작했다.
<한국이민사박물관 로비에 위치한 건립 기념문>
건물 외관에서 보았던 장엄함과는 조금 다르게 사실상 건물 2층에는 미주이민의 역사와 현재에 이르기까지의이야기를 담고 있었고, 1층에는 미주 이외에 분포되어있는 이민자들의 삶을 엮어 둔 것 같았다. 올해 6월에 문을 연지라 아직 전시물들과 스토리를 채워가고 있는 박물관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먼저 제1~2전시실에서는 1860년 유이민에서 1909년 공식 이민으로까지의 모습을 시작으로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난 이민자들의 애환을 담고 있었다. 1902년 공식이민이 이뤄지기 시작하면서 노동의 조건을 건 이민자 모집 광고(고시)가 널리 퍼지게 되었던 것이다. 또 이민을 담당한 유민원에서 발행한 공식 여권인 집조 등을 통해 개항시 시대상과 생활상도 만나 볼 수 있었다.
<하와이 이민자 명단>
<하와이로 간 최초 이민선, 갤릭호>
극복과 정착
하와이에 도착한 한인들은 사탕수수농장에서 일을 하는 등 하와이 호놀룰루에서는 신민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그런데 남성의 이민자 수가 많았던 터라 현지적응과 정착이 힘들게 되자 국내에서는 사진신부를 파견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사진만 보내 중매를 하는 식의 결혼 방식이 도입이 된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 이민자들이 가정을 이루고 현지에 정착하는데 이바지 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이민자로 타국에 적응해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 않았을까 싶다. 어떻게 보면 이게 우리나라의 국제결혼의 시초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유민원 보호아래 발행된 여권들> <사진신부>
<한인들의 정착과 이국땅에서의 출발>
이외에도 일제강점기에 토지와 생산수단을 빼앗긴 농민과 노동자들이 만주와 일본으로 이주하였다. 이것은 정치적 난민과 독립운동가들에겐 나라를 위한 기회였으며, 세계 곳곳에서 우리 동포들은 독립에 힘을 보탰었다. 그리고 여성들이 한인공동체를 창립해 꾸준한 기독단체 활동과 생활체육 활동 등을 통해 이민1.5세대와 2세대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었다.
그들은 자신의 꿈은 곧 조국의 미래와 같다는 생각으로 쉼 없이 전진한 결과 단순히 해외로 이주한 대한민국 사람을 넘어서 민간 독립운동가이자 조국, 대한민국의 든든한 일꾼들이 성장해 나온 것이다.
<한인공동기독생활을 엿볼수있는 성경>
<한인 금메달 리스트 새미리
<사탕수수 농장에서 든든한 먹거리통>
한민족의 아픔과 슬픔을 고스란히 생활 속에서 승화시키며 조국을 위해 끝임 없이 노력했던 이민자들을 머릿속에 그리다 보니 어느새 제3~4전시실로 발길이 옮겨져 있었다. 이곳은 멕시코와 쿠바를 비롯해 중남미 한인사회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미주사회가 리틀 대한민국을 형성한 곳이라면 이곳은 한인들이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방랑자들의 삶을 시작되었었고, 현재에는 제3세계에 이르기까지 한인들의 힘이 각 나라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고 있음이 빛났다.
마지막으로 제4전시실에서는 이민사회와 한인문화가 나라마다에 미치는 커다란 영향에 대해 과시되어 있었고, 자랑스러운 대한인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꿈을 찾아 떠난 세계화 속 한국 이민자들의 발걸음이 많게는 미국(이민자수 2,016,911명)에서부터 세인트루시아(이민자수 5명)와 같은 나라에 이르기 까지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세계시장을 움직이는 한인들의 모습을 통해 지식강국 대한민국의 성장을 볼 수 있었다. 또 대한인으로 다시 한번 자부심과 긍지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소박하지만 꽉 찬 박물관을 빠져나오면서 사진에서 영상물에 이르기까지 초기 한인 이민자의 삶을 엿보았다면 이제는 나를 포함이 그들을 이해하고 이민자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다른 민족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네 이야기가 아직도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우린 세계 속에서 지금도 시시콜콜에서부터 뉴스에 이르기까지 내 민족의 이야기가 오가고 있지만 내 이야기 아니면 그냥 지나쳐 버린다. 옛 우리의 정서 중 대동정신은 온데 간데없이 살아진 지 오래 되어 버린 것 같다. 지금부터라도 전세계에 분포해 있는 이민자들의 삶에 관심의 첫 단추인 한국이민사 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겨보는 것은 어떨까 <UCC기자단>
<가장 많은 이민자들의 체류하고 있는 미국 주별 이민자들의 분포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