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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친데 덮친격


BY 통통돼지 2008-11-04

아이가 감기에 걸렸다.

아니 감기는 거의 나아가는데 장염이었나보다.

 

지난 토요일 저녁, 11월의 첫날밤을 화장실과 방을 오가며 보냈다. 낭군도 없이..

퇴근하고 현관에 들어서니 아들은 거실 소파에서 TV보느라 인사도 하는둥 마는둥 한다.

힘들어서 저녁도 생략하고 냉장고에 먹다 남은 사과 한 조각만 입에 넣고 주방 정리를 끝냈다.

세수도 대강하고 방에 들어가자마자 아이가 따라 들어오며 배가 아프단다.

옆에 눕히고 배를 문질러 주었는데  그때부터 시작이다.

후다닥!!  화장실로 달리더니 속옷과 바지를 가져다 달란다.

구부정한 자세로 방에 들어오길래 화장실에 가보니

욕조에 벗어놓은 옷이랑 양변기 주변에 .. 진동하는 냄새하며..  난리다.

대강 치워놓고 방에 돌아와서 배를 문질러주고 약먹이고

다시 후다닥!!

애가 나오자마자 화장실에 가서 다시 치우고.

배를 문질러 주다가 잠들었길래 안심했는데 좀 이상해서 애를 깨워보니

웬걸 .침대위에 자면서 싸버렸다.

애를 화장실로 보내고 침대시트 걷어내고 환기부터 시키고

옷 가져다주면서 뭐라 해놓았더니 자기방으로 가버렸다.

벗겨놓은 시트랑 화장실에 가득한 아이옷을 치우려니 애가 아프다는 사실보다는

저놈이 내말 안듣고 뭘 먹었길래 저러나 하는 생각에 화가 났다.

 

"너 엄마가 먹는거 조심하랬지?

여기서 자다가 또 싸면 이 두꺼운 이불까지 엄마보고 빨라고?

빨랑 안가? 낮에 도대체 뭘 먹은거니? 엄마가 아무거나 사 먹지 말랬잖아.

너는 서럽다고 여기 와서 울다가 자면 그만이지만 니가 벗어놓은 빨래랑 화장실정리는 누가 다 하는데?

엄마 오늘 하루종일 사무실에서 힘들었어"

 

다른 날보다 좀더 바쁘고 신경쓸일이 많았던건 사실이지만

내 배아파 낳은 자식이 끙끙 앓는데도 안스러운 맘보다 짜증이 앞서서

해서는 안될 말까지 해버렸다.

방에서 냄새난다고 패브리즈 흠씬 뿌려놓고 다시 애를 데려다 눕혔다.

그래도 짜증이 안가셔서 씩씩거리며 TV를 켜놓고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서랍에서 약을 찿아다가 하나 더 먹인 다음에

안방에서 전기패드를 가져다 배에 놓아주려다가 시어머니 잔소리 듣기 싫어서 나 편하자고 애를 그냥 놔두고

배 문질러 달라는데도 조금 하다가 그냥 자라고 소리쳐놓고

또 이불에 사고칠까봐 바닥에 얇은 이불만 깔고 재웠다.

 

눈물 얼룩이 있는 채로 잠든걸 보려니 그제서야 맘이 짠하다

그나마 남편이 없던게 다행이지 싶다.

안그랬으면 아빠까지 가세해서 아이 맘에 상처만 더 늘었겠지..

주방에 나가 아침에 죽끓일 쌀을 담가놓고 이불에 누웠다.

조금 나아졌는지 숨소리가 고르게 난다.

 

 

으이구!!  니가 엄마 맞니?

배탈 자주 나는거 너 닮은거 맞거든?

너 몸이 냉해서 온식구 똑같이 먹고도 너만 식중독걸리고,

툭하면 배아프다고 데굴데굴 구르고 밤새 엄마 잠못들게 화장실 들락거리고,

토하고 싸고 하느라 새벽빛이 드는것도 모르고 그랬었잖아?  기억이나 나니?

'우리 애기 빨리 나아라~~ 어쩌다 이렇게 아프누?'

내 배에서 손을 떼지 않던 친정 엄마랑 어쩜 그렇게 다르니?

잠든 아이 옆에서 반성아닌 반성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아침에 멀쩡한 얼굴로 일어나 앉은  아이를 보면서 헛웃음이 나왔다.

흰죽을 끓여주니까 다른 식구들은 맛있는거 먹고 자기만 맛없는 흰죽이라고 투덜댄다.

나 참, 기막혀서..

밤새 잠못자고 화장실 들락거린건 다른 가족은 까맣게 모르고

어머님은 그냥 먹고 싶은거 주라고 하신다.

일요일이라 병원도 못가니까 오늘 하루는 흰죽 먹어야 한다고 호통쳐놓고

어젯밤에 아이 맘에 상처낸 벌로 나도 흰죽을 앞에 놓고 앉았다.

엄마도 흰죽을 먹는걸 보더니 조금 위안이 되는지 아무말 없이 먹는다.

 

 

감기끝에 몸이 힘드니까 장염까지 왔지.

낮에 힘들었는데 잠도 못자고 아이 볼라니 힘들어서 그런걸.

애도 나도 엎친데 덮친거라고 핑게를 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