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도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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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첫눈에 젖은 서울 삼청동 골목길에서 앞 못 보는 아이 20여 명이 환
성을 질렀다. 국내 처음으로 시각장애인의 미술작품만 전시하는 '우리들의 눈'
(Another Way of Seeing) 갤러리가 문을 연 것이다.
개관 기념 《한·일 시각장애학생 미술로 만나다》전(展)은 두 나라 시각장애 학
생 31명의 작품 40점을 선보이는 전시다. 점토로 관악기를 빚은 작품, 오렌지색
크레파스로 덩치 큰 안내견을 그린 그림 등 눈이 어두운 아이들의 솜씨라고 쉽게
믿기지 않는 작품이주택가 벽돌집에 세든 조촐한 전시장(60㎡·18평)을 가득 채
웠다.
어린 작가들은 각각의 작품에 천진한 작품설명을 곁들였다. 한성현(13)군은 손
가락만한 흙 인형들이 올망졸망 성루를 지키는 모양을 빚고 "어려서 레고를 제일
좋아했다"고 적었다.
"시력은 점점 사라져갔지만 그때 만져본 레고의 기억은 아직 그대로예요. 기억이
시력보다 힘이 센 것 같아요." 박인범(13)군은 피스톤이 여럿 달린 길쭉한 나팔을
빚고 "나는 브라스밴드에서 관악기 유포니움을 분다"고 썼다.
"유포니움은 반질반질하고 또 반짝인대요. 나는 어둠과 밝음만 구별해요. 반짝인
다는 것은 어떤 거예요? 선생님은 어둠에서 밝음으로 변할 때의 느낌이 아주 빠르
게 반복되는 것을 상상해보라 하시던데…. 아~ 그게 반짝임과 비슷할 것 같아요."
이 전시는 화가와 큐레이터 등 20명으로 구성된 한국시각장애인예술협회가 기획
했다. 이들은 1997년부터 충주성모학교·서울맹학교·한빛맹학교 학생들에게 미술
을 가르쳤다. 매년 8000만~1억원씩 들여서 아이들 미술재료도 사고 공모전도 열
고 점자 책도 낸다. 이 돈의 30%는 문예진흥기금으로, 나머지는 회원들이 각자
자기 그림을 팔아서 번 돈과 개인 후원자 50여 명이 낸 성금으로충당한다.
회장 엄정순(47·화가)씨는 "사람들은 '안 보이는 아이들에게 왜 하필 미술을 가르
치느냐' '차라리 안마가 현실적이다' 라고 하지만 통념과 달리 미술은 눈이 보이건
안 보이건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엄씨는 건국대 미대 교수로 일하던 1997년, 충주성모학교에서 열린 워크숍에서
그곳 학생들이 눈이 보이는 아이들 못지않은 솜씨로 찰흙 조각을 빚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이듬해 미대 교수 자리를 내놓고 이후 이 일에 전적으로 매달
려왔다.
"
일본에서는 30여 년 전부터 시각장애인 미술 교육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
어요. 몇 년 전 우리나라를 찾은 50대 일본인 침구사가 '나는 지금 미술로 먹고살진
않지만, 어려서 미술을 배운 경험이 한 인간으로서 품위를 지키는 바탕이 됐다' 고
했지요."
'우리들의 눈' 갤러리는 보증금 2500만원에 월세 150만원짜리 셋집이다. 개인 후원
자들이 지난달 바자회를 열어서 1년치 집세를 마련해줬다. 협회는 앞으로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사진과 미디어아트 등을 교육할 계획이다. 《한·일 시각장애학생…》은
다음달 20일까지. (02)733-1996
김수혜 기자 goodluc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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