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에 잠이 오지 않아 TV를 틀었는데, 마침 S 방송사에서 스페셜로 [박수근 빨래터 위작논란]편을 하고 있었어요.
잠도 안오고 미술 쪽의 핫 이슈라 흥미롭게 보았는데요~~
진품이냐 아니냐는 그림을 그린 당사자가 없는 마당에, 과학적인 판단기준이나 사람들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겠
지요. 진품인지 위작인지에 대한 대충의 얘기들은 신문이나 인터넷을 통해 많이 접하였지만, 어제 티비에서 나온 내용
중엔 충격적인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박수근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던 미국의 한 개인이 미술 경매사를 통해 작품을 내 놓았습니다. 그런데 박수근이 생전에
찍었다는 이 작품의 사진을 박수근의 장남이 가지고 있었어요. 취재진이 사진과 경매에 내 놓은 작품을 비교해 본 결
과, 우상단에 적힌 사인이 전혀 다르고 여인의 발 모양새가 달랐습니다. 취재진은 진품이 아닌것 같다는 의견을 넌지시
전했고, 소장자는 충격에 빠진 모습이었죠. 소장자는 그 작품을 팔아 암으로 투병중인 아들의 병원비에 보태겠다고 하
였는데, 만약 그 작품이 진품이 아니라고 결정되면 돈을 돌려주고 작품을 돌려받겠다고 말했습니다. 매우 안타깝고 충
격적인 현실이더군요.
미국 유명 미술 경매인 크리스티에서도 몇 년전 박수근의 작품이 위작으로 판단된 적이 있어 한국 작품에 대한 실사를
강화했다고 합니다. 미국의 경우 미술 시장이 오랫동안 기반을 다져왔기 때문에, 이런 감정기구가 잘 구축되어 있나봐
요. 한국의 경우 이해 당사자가 될 수밖에 없는 화랑 관계자들과 몇몇 평론가들이 모여 감정을 하더라구요. 티비에 나
온 상황에서만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기관이 따로 없는 건 확실한 거 같았습니다. 박수근 빨래터 위작 여부
도 서울대학교에서 감정하고 있다고 하던데.....따라서 소수의 사람들이 주관을 내새울 수 밖에 없는 현실이고 미술계
의 현실을 감추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는 미술감정과 관련된 교육 기관이 제대로 없고 전문가와
과학 시설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합니다. 외국같은 경우는 그림 감정에 대한 전문 인력을 생성하며 미술계의 발
전을 위해 끊임없는 연구와 투자가 지원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실을 비난하기보다는 열악한 한국의 미술계상황을 개
선시켜야 할 것 같아요.
티비를 끝까지 지켜보며, 박수근의 빨래터가 진품인지 위작인지에 대한 궁금함보다도 일단 제일 먼저 부끄러움이 앞서
더군요. 아들의 항암 투병을 위해 소중히 간직했던 작품을 내 놓게 되었는데, 그 작품이 위작이라고 판명될 위기에 처
한 아주머니...만약 그 작품이 위작이라고 판명되면 평생 한국을 원망하면서 사실거 같았습니다. 박수근님은 미군 PX에
서 일하시며 그렸던 작품들을 미국인들에게 많이 보내주셨다는데요. 이러한 일이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그 훌륭한 박
수근님의 작품을 보면서, 작품을 감상하기에 앞서 "이게 진품일까 위작일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섭니
다. 더불어 박수근의 작품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자의든 타의든 피해를 보게 되겠지요. 뭐 이슈화되면서 이익을 보게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요.
소송은 소송을 낳습니다. 현재 모옥션과 모 잡지사가 큰 소송을 벌이고 계신거 같은데요. 악플이 무플보다 나은 것처
럼, 미술계의 현황을 꼬집어 말하는 기사 때문에 미술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늘어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 관심은
굉장히 부정적이고 조롱적인 관심이겠지요. 소송으로 진품과 위작을 가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대중들
에게 개방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술품에 대한 감정진위 여부는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터져나온 문제입니다. 미술 시장이 발전해 나갈수록 이런 문제
들은 더 많이 터져 나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미술에 대한 수준이 높아지고 관심이 늘어가고 있는 이 시점
에서도 한국 미술 시장은 여전히 너무 폐쇄적입니다. 정보를 감추려 하며 관련 기관과 사람들이 폐쇄적입니다. 이런
구조에선 문제점들이 곯아서 한번에 터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한국 미술의 발전을 위해서는 하루빨리 정보가 깨끗하게
오픈되고 체계적인 교육과정이 열리며 제대로된 미술기관들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한국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
유롭고 편안하게 미술을 즐길 수 있는 문화강국이 되었으면 합니다. 어렵게 계획해서 삼청동 갤러리 들리는 것이 미
술문화가 아닙니다. 일상 생활에 녹아서 언제든 편안하게 갈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미술문화겠지요. 각 지역마다 대안공
간도 활성화되고 오픈스튜디오도 활성화되었으면 더더욱 좋겠네요.
티비보고 한숨나와서 적어봅니다. 퐁피두 전시 등 좋은 미술뉴스들도 많은데 이런 안 좋은 미술계 뉴스를 스페셜로 해
주다니 정말 안타깝네요. ㅜㅜ 하루빨리 진위여부가 밝혀지고 대중들이 깨끗한 정보를 알 수 있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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