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할아버지!
목메이게 애타게 불러봅니다.
미안해요.고마워요.사랑합니다.
고백을 할려보니 이미 고인이 되어버려 내 가슴을 더욱 아프게 만드네요.
내나이 벌써 사십을 넘었습니다.
백일도 안된 핏덩이를 엄마도 없이 시골에서 미음을 끓여먹이며
애지중지 키워 주셨는데...
늘 투정만 피우고 떼를 쓰며 할머니 가슴을 애타게 만들던 때가 얹그제 같은데,
초등학교 6학년이 될때까지 내 손으로 머리한번을 감게 만들지않고 늘 안아서
감겨주시던 할머니의 따뜻한 숨소리를 다시한번 느끼고 싶습니다.
엄마없이 자라는 아이라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을까봐 늘 노심초사하시며 항상
옷도 새옷으로.남들은 고무신 신고 다닐때에도 나는 늘 운동화에 슈즈를 신고
다녔죠.
도시락 반찬은 그때는 귀해서 모아 두었다 사위만 오면 내놓으셨던 계란 부침
을 턱하니 도시락 위에 부쳐 얹어 주셨죠.
학생이였던 삼촌과고모들에게도 주지않으셨던 그 귀한것을..
밥상도 흰쌀밥에 생선이 올라가던 할아버지와 겸상을 시켜주셨고..
할아버지께선 늘 생선살을 발라 나에게만 주셨죠.
할아버지는 생선을 않좋아하시는줄 알았었죠.
그때는 당연한듯 알았어요.
세월이 지나 생각해보면 고모,삼촌들만도 여덟이나 되었는데...
부유한 부농의집안도 아니였고 가난한 집에서 늘 저때문에 무리를 하셨던 할머
니의 그 따뜻한 배려를 이제사 깨닫게 되었네요.
할머니, 할아버지 덕분에 잘자라서 시집을 갔는데도 늘 아이대하듯이 ,
일주일에 한번씩은 경주에서 부산으로 머리에 한보따리를 이고선 기차와버스
를 갈아타시면서 밑반찬과 감자따위의 무거운 야채들을 갖고 왔었죠.
그럴때마다 돈으로 사면 몇푼이나 한다고 이런걸 미련스럽게 들고 오느냐며
핀잔을 줬었네요.
할머니의 그 따뜻한 사랑은 헤아리지도 못한채...
제가 아이를 낳았을때 새엄마를 못 미더워하셔서 손수 고령의몸으로 제 산후조
리를 해줄때에도 그저 짜증만 부리고...
할머니!
나는 철이 왜이리 늦게 들었을까요?
그때 그아이가 벌써 열세살이 되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제게 베푸신 그 사
랑의 십분의 일도 못 베풀면서 키우고 있는것 같아요.
두분 지병으로 누워계실때도 장사를 핑계대며 자주 들여다 보지도 못하고..
그저 임종하시고 난후엔 아차!하늘이 무너지는것같았고 ,그저 영전앞에서 울음
을 토해내며 아쉬움을 남겼죠.
두분의 그 크신 사랑에 단한번도 미안함,고마움. 사랑의 표현도 못해드리고 보
내드린점 이제와서 새삼 가슴이 저리도록 후회됩니다.
나에게 또 다음 생 이있다면 그때도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녀로 다시 태어나
그때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제게 베푸신 넘치는 사랑 꼭 보답하며 살겠습니다.
겨우 기제사에 서너번 참석해 영정 사진앞에 술잔 올리는 것으로 그 크신 사랑
을 어찌 다 갚으리오.
제 머리카락을 다 뽑아 짚신을 삼아 드려도 두분께서 제게 베푸신 남달랐던 사
랑을 어찌 다 보답하리오.
아직도 한번씩 꿈에 나타나 인자한 모습으로 웃어주시는 할아버지,할머니!
저 잘살고 있으니 염려마시고 편히 눈감으세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