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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BY 횬이 2009-04-29

95년 12월 28일.

유난히도 많은 눈이 내리던 날 엄마의 진통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제 나이 15살. 그러니까 저에게는 띠 동갑을 훨씬 뛰어넘는 동생이 태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장남인 아버지와 결혼을 하신 엄마는 결혼 후 15년 동안 딸만 셋을 낳으셨고, 그로써 당신 때문에 대가 끊긴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40이 넘은 늦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노산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처음부터 이렇게 엄마의 심정을 이해한 것은 아닙니다.

엄마가 처음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땐 '거짓말, 거짓말일거야, 그래 엄마가 우리에게 장난을 치고 있는 거야'라며 극구 부인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말들이 사실이라는 증거들이 제 머릿속에서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산부인과를 다니시던 엄마, 밥상을 뒤로 한 채 화장실로 가시던 엄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서 부인은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은 저는 이젠 나를 지킬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만 보아왔던 아들과 딸의 차별. 동생이 아들일 경우에는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다. 라는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15살 어린 나의 일기장에는 처음으로 증오라는 말이 쓰여지기 시작했습니다.

한권이 모두 동생에 대한 미움으로 채워지는 동안에도 나의 마음은 놓이질 않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엄마의 진통이 시작되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엄마를 따라 병원에 갔을 땐 눈이 많이 내려 빙판길 사고로 병원은 몹시 붐비고 있었고, 그로써 엄마의 수술은 지연되고 있었습니다.

 

아침 8시부터 시작된 기다림.

오후 5시가 되어서야 엄마는 수술실을 나올 수 있었습니다.

마취에서 막 깨어난 엄마는 몹시 고통스러워하고 계셨고, 처음으로 엄마가 아파하는 모습을 본 나의 눈에선 통제할 수 없는 눈물이 마구 흐르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 눈물은 그동안 엄마에게 했던 몹쓸 내 모습의 죄책감과 동생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얼마 후 간호사가 아이를 안고 나오며 보호자를 찾았습니다.

"아들입니다" 간호사는 아버지에게 아이를 건네주며 어머니께서 그토록 듣고 싶었던 아들입니다 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너무너무 화가 날 줄 알았던 저는 뜻밖에도 엄마가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왜 이렇게 늦게 아이를 낳을 수밖에 없었는지 등등...

그러면서 자연히 저의 마음에서 동생에 대한 증오가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퇴원 후, 주위의 축하가 이어졌고, 저도 진심으로 동생의 탄생을 축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아침의 단잠을 깨우며 울리던 전화기. 그 전화선을 타고 병원에서 들려온 말은 우리가족을 모두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아이의 검사결과가 이상하니 급히 병원으로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급히 병원으로 달려간 우리에게 의사는 동생이 다운증후군-정신지체 장애아라는 판명을 내리셨습니다.

그리고 다운증후군의 50%가 선천성심장병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과 동생의 심장소리가 이상하니 검사를 받아보아야 한다는 말도 함께 전해주셨습니다.

 

예약일을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잠들어 있는 동생의 손을 잡고 무교임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늘에 정말 신이 있다면,,, 제발 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제발 아니게만 해주세요.. 제발"

제 간절한 소원이 하늘에 닿은 것일까요?

동생은 다행히 건강한 심장이라는 판명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심장병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동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

아이들을 보며 으레 하는 말, "아유~ 귀여워" 라는 말이 내 동생에게만은 들을 수 없는 말이 되어 있었고, 그냥 한번 힐끔힐끔 쳐다보는 시선만이 존재할 뿐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당한 일에 저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집으로 돌아와 동생의 얼굴을 쳐다보고 또 쳐다봤습니다.

'이상하네 눈, 코, 입, 정상으로 다 있고 내 눈에는 이쁘기만 한데, 뭐가 이상하다고 쳐다보는 걸까?'

그러나 아무리 부인해도 다른 또래의 아이들과 함께 앉아 있을 때는 확연히 다르다는 게 티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제 동생은 집에서는 귀염둥이, 밖에서는 찬밥 신세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가족 모두 시장을 보고 돌아오던 길, 휠체어에 앉은 너무나도 가녀린 한 소녀를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제 동생을 쳐다보듯 똑같이 쳐다보고, 손가락질하며 지나갔습니다.

그때 엄마가 말씀하셨습니다..

"저 아이를 봐라, 사람들은 저 아이를 보고 불쌍하다, 이상하다 하며 손가락질하고, 저 아이 때문에 저 가족이 불행할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우리를 봐. 아니지 않니, 우리는 네 동생 때문에 한번이라도 더 웃을 수 있고 행복하지 않니? 저 가족도 마찬가지야"

 

그랬습니다.

어쩌면 비장애인 가족들은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동생의 재롱 앞에서 웃음 짓고, 그곳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보통 아이들이 걸음마를 할 때, 내 동생은 처음으로 허리를 세우고 앉을 수 있었고, 아이들이 뛰어다닐 때, 내 동생은 우리의 손을 빌려 겨우 일어나 걸음마를 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아마 그런 모습을 보며 또 '쯧쯧.. 아직도 그것 밖에 못해?'라고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모습에서 감사함을 느낍니다.

 

그래, 비록 다른 아이들에게는 좀 뒤쳐질지도 모르지만 네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있으면 되리라. 우리는 그렇게 동생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결승선에서 빨리 오라 재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족 모두 동생의 손을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함께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14살이 된 제 동생은 아직도 말을 잘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기억하고, 따라하는 모습, 그 재롱에서 우리가족은 행복을 느낍니다.

가족이란 그리고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바라는 것보다는 아픔이 있다면 나누고, 좀 뒤쳐진다면 기다려줄 줄 알고, 작은것에 감사할 줄 아는 것이지 않을까요?

그래서 우리가족은 오늘도 동생의 아픔을 함께 나눕니다.

동생은 사랑하는 우리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의 마스코트 현우에게 띄우는 편지~★

 

현우야~ 14년전 네가 태어났을 때 그 벅찬 감동을 누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어

그땐 언제 목을 가눌까... 노심초사하며 너를 주시하고, 언제 걸을 수 있을까... 하며 걱정의 눈물을 흘린 적도 많았지

그런데 그 걱정이 무색할 만큼 어느 덧 14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은 신나게 뛰어다니는 네 모습에 기쁨의 눈물을 흘린단다.

 

네가 처음 장애를 가졌다는 걸 알았을 때는 두렵고 막막하기도 했었어

이 험한 세상을 어찌 살아갈까 싶어서...

그리고 역시 세상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그리 호락호락한 모습이 아니었어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언제나 홀로 놀고, 또 또래아이들에게 놀림도 당하는 네 모습에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도 많이 겪었지.

 

그런데 우리 현우..

비록 장애를 가졌지만 언제나 밝게 웃고 우리가족에게 행복을 선물해 주는 네 모습을 보면서 누나는 오히려 많이 배운단다.

 

현우야~ 아직은 이 세상이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살아가기 좀 힘든 세상일지라도 우리 힘내자~ ^^

너의 밝은 웃음을 보면 사람들이 가진 장애에 대한 편견도 좀 나아지지 않을까?

누나는 그렇게 믿어.

우리가 희망을 가지고 더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반드시 더 좋은~ 더 아름다운~ 세상이 너를 기다릴 거라고 또 누나는 믿어 .

 

앞으로 살아가면서 더욱 많은 시련이 네 앞에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몰라.

하지만 누나는 지금처럼 그때도 현우가 멋지게 이겨낼거라 믿어.

장애를 가졌다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 강인한 모습으로 앞으로도 멋진 사회인이 되어서 사회생활도 척척 잘 해내리라 예상해본다

 

힘이 들 때는 누나에게 잠시 기대도 돼

누나는 언제나 현우 편이니까~~ ^^*

현우야 지금처럼 우리 힘내자.

 

그리고 현우야 지난 날 누나가 철모를 때 이유 없이 너를 미워했던 것 정말 미안하고,

항상 건강한 모습으로 누나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그리고 너무너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