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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주영과의 만남'에 다녀왔습니다.


BY 왕눈이 2009-05-27

한여름 날씨같은 27일 대치도서관에서 열린 영원한 소년 김주영작가와의 만남에 다녀왔습니다.

1시간에 걸쳐 진행된 강연내용이 너무나 진솔하고 재미있어 정리해서 올려봅니다.

 

나는 작대기로 앞산을 치면 뒷산에 가서 걸리는 그런 산골에서 자랐습니다.

사방 100리안에는 공장도 없고 아직도 기찻길이 없는 그런 오지 청송에서 홀어머니밑에서 자랐습니다.

지금은 두형님이 살고 있지만 어려서는 너무나 가난하여 점심을 먹어본적이 없었습니다.

고작해야 감자로 된 도시락이 전부였고 공부는 하나 안하나 늘 꼴찌였습니다.

교과서는 국어, 산수 달랑 두권에다 노트도 한권뿐인 어두운 유년의 시간에 내가 즐겨했던것은

버스정류장으로의 외출이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낯선 사람들을 보고 산넘어에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펴는것이 즐거움이었습니다.

장날에는 학교에 가지 않고(가봐야 늘 꼴찌이므로...를 강조하시네요^^)

장에가서 낯선사람..낯선 풍물을 보는것이 또한 즐거움이었습니다.

이처럼 내 유년은 암담하고 가난하고 앞날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생활을 벗어났을 있을까'...나는 오로지 상상력으로 그 생활을 견뎠습니다.

 

사실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이 상상력이 많은것은 아니지요.

그때 공부를 잘하던 내친구들은 지금 퇴직하고 놀고 있지만 공부못하던 나는 지금도 책을 팔고

강연도 하고 더 활기차게 일을하고 살고 있고 친구들에게 밥을 살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지금의 나는 결국 상상력의 소산이며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나를 버려두고 공부도 시키지 않고 버려두었습니다.

원망이 참 많았습니다. 결국은 장례식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오십이 넘어서야 아버지를 용서했고 불과 3년전에서야 아버지의 묘소에 참배를 했습니다.

역경과 가난 조차도 유산이 될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어찌됐건 '김주영'이란 소설가로 살수 있음도 아버지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알았습니다.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역경이 나를 키웠고 그로 인해 상상력을 키웠고 그것으로 나는 소설가로 거듭났습니다.

 

현재 미국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자꾸 벼락이라고 발음이 되서 죽겠습니다..라고 하셔서 한바탕 웃음이 터졌지요)는

아이들에게 '책을 든 손으로 책을 읽어라'라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역경을 딛고 성공한 오프라 윈프리는 9살에서 14살까지 삼촌과 사촌오빠둘에게 번갈아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아버지에게 이야기 했지만 그는 외면 했습니다. (이대목에서는 그놈 아주 나쁜놈입니다..라고 흥분하셔서

또한번 웃음이 터졌습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성폭행은 고백했지만 14살에 미숙아를 낳은것은 숨겼습니다.

그사실은 그녀의 성공을 시기한 여동생의 폭로에 의해 밝혀졌습니다.

사람들이 그녀를 비난하며 물었습니다. 그녀는

'내가 부끄러워서가 아니고 그아이의 생명이 너무 안타까웠기 때문에 말할수 없었습니다.'

라고 말해서 사람들을 숙연하게 했습니다.

그런 그녀의 성공에 한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의붓아버지였습니다.

그아버지의 말한마디에 그녀의 운명은 달라졌습니다.

'책을 읽어라!' 태어나서 처음으로 오프라 윈프리는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말을 들었습니다.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책은 상상력의 보따리이며 상상력에 불을 당기는 원동력입니다.

시인이 되겠다고 했을때 내 어머니는 하루종일 울었습니다.

'지금 굶는것도 한이 안차냐?'

 

지금도 시인은 가난합니다. 그래서 소설가가 되기로 했습니다.

그계기는 바로 '박목월'선생이었습니다.

시를 갖다주고 열흘...기다려도 소식이 없어 찾아 뵈었더니

'자네는 운문에 소질이 없는것 같은데...'

그 얘기를 듣고 일주일을 누워있다 군에 자원입대를 했습니다.

나의 운명은 그때 박목월 선생의 한마디...였습니다.

문학을 버릴수 없어서 소설을 쓰기로 한것입니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회초리를 들지 마십시오.

주입식 교육은 상상력을 퇴화시키고 그 아이가 갖고 있는 상상력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달나라 도둑'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한사람이 사막에 도착했습니다. 오아시스를 찾기 위해서..

사막까지는 네비게이션과 같은 알림판이 있어 잘 왔습니다만

아스라히 오아시스가 보여도 10년 넘게 그 사람은 오아시스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상상력이 도태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나이에도 열 여섯살 먹은 여자와 연애를 할 줄 알아야 작가로서의 생명을 이어 갈수 있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하셔서 또 한바탕 웃음이 터졌습니다.)

우리가 지금 편리하게 쓰고 있는 휴대폰...컴퓨터도 상상력의 소산입니다.

상상력이 도태되면 우리의 삶도 끝나는 것입니다.

 

다 적을수는 없었지만....대략 이런 강의 내용이셨습니다.

칠순이시라는데..아직 너무 젊고 건강하시고 유머가 넘치셔서 한시간의 강연이 너무 짧았습니다.

 

점심을 사주시겠다는 지인의 약속때문에 아쉬운 시간을 접고 너무 감사하게도 친필로 사인을 해주신

'달나라 도둑'을 소중히 받아들고 행복한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음주 6월 3일(수) 청담2 예술회관에서 다시 만나뵐수 있답니다.(김영사 카페 공지 참고하세요)

요즘 많이들 우울하시죠?

영원한 소년 김주영님의 말처럼...사막에 길이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즐거운 상상력을 동원하여 오아시스를 찾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