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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세보다여유다운시프드족vs도전즐기는일벌레예티족~~~


BY 신길동 2009-08-08

출세보다 여유 다운시프트족 vs 도전 즐기는 일벌레 예티족

작년 9월 김대진(29·가명)씨는 한 대기업을 그만뒀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1년 만이었다. 그 대기업은 대학생들에게 ‘취업하고 싶은 회사’를 조사하면 매번 상위권에 오르는 곳이었다. 튼튼한 회사란 이미지에 연봉도 높기 때문이었다. 김씨는 회사를 옮기면서 연봉이 30% 정도 줄었다. 김씨는 “좀 더 여유 있는 생활을 위해 회사를 옮겼다”며 “연봉은 줄었지만 만족도는 더 높다”고 말했다. 김씨는 “예전 회사에선 새벽 2~3시까지 일하기 일쑤였고 주말에 쉰 적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라며 “하지만 이젠 퇴근 후에 친구들과 만날 수도 있고 여자친구도 생겼다”고 말했다.

정진교(35)씨는 4년 전 대기업에서 공기업으로 직장을 옮겼다. 정씨는 “4500만원에 달했던 연봉이 3000만원 선으로 줄었지만 인간적인 분위기에 자기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는 게 좋다”고 말했다. 정씨는 “이곳엔 다른 회사를 다니다가 온 직원이 한둘이 아니다”라며 “옮긴 사람들 모두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는 말을 한다”고 덧붙였다.

▲ 일러스트 유재일

다운시프트족(Downshifter)
지나친 경쟁·디지털 시대의 속도에 거부감
20~30대 직장인 40% “여유로운 삶이 곧 성공”


한국 20~30대 직장인 사이에서 ‘다운시프트족(Downshifter)’이 늘어나고 있다. 국내의 다운시프트족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취업 전문업체의 설문조사 등에서 이들이 늘어나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작년 7월 취업 전문업체 인크루트가 직장인 1079명을 대상으로 ‘성공에 대한 인식’에 대해 조사한 결과, 전체의 40.6%(438명)가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는 것이 성공’이라고 답했다. ‘평균 이상의 소득과 경제적인 풍족함(27.2%)’을 얻거나 ‘직장에서 신임과 인정을 받는 것(13.0%)’은 그 뒤를 이었다. 같은 해 5월 코리아잡서치의 설문조사에서도 5점 만점에 3.5점으로 ‘다운시프트족’이 20대 직장인의 성향을 나타내는 신조어 1위에 올랐다.

그렇지만 다운시프트족은 지난해 갑자기 등장한 현상은 아니다. 이미 지난 2002년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한 카드사의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 문구는 당시 20~30대 직장인들 사이에서 다운시프트 경향이 증가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최근 늘어나고 있는 슬로비족(Slobbie), 로하스족(Lohas) 등도 넓은 의미의 다운시프트족이라고 할 수 있다. 슬로비족은 ‘천천히 그러나 더 훌륭하게 일하는 사람(Slow But Better Working People)’의 약칭이고, 로하스족은 ‘건강과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생활패턴(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의 약칭이다.

다운시프트족에겐 직장에서 열심히 일해 인정 받는 게 그다지 큰 관심 사항은 아니다. 보수는 적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인생의 여유를 즐기는 데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 그들은 “경제적 활동을 위해 모든 삶을 투자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고액 연봉을 포기하면서도 여유로운 일자리를 찾는다. 대학원생 백지영(25)씨도 마찬가지다. 백씨는 대학졸업 후 1년 정도 회사생활을 하다 대학원에 진학했다. 백씨는 “이제는 읽고 싶은 책도 마음껏 읽고 글도 쓸 수 있어 만족한다”며 “연봉을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다시는 직장 생활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전까지 열심히 일해 승진하는 걸 제일로 여겼던 사회 분위기에서 다운시프트족은 새로운 움직임이다. 심상민 성신여대 문화·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다운시프트족은 디지털 급행에 대한 반기의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점점 더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다운시프트족’의 등장은 필연적인 사회문화적 현상이란 것이다. 다운시프트족은 2000년대 초 한국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1994년쯤부터 급증한 인터넷 이용으로 지나친 속도감, 막대한 콘텐츠 분량에 따른 압박감이 절정인 상태였다. 심 교수는 “지나친 속도감과 압박감에 대한 돌파구로 사람들은 느림, 아날로그뿐만 아니라 다운시프트의 생활을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더욱 더 ‘빨리빨리’ 변화하려는 사회 분위기를 고려할 때 국내에서 ‘다운시프트족’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전까지 산업화로 인해 정신없이 달려만 왔다면, 지금은 빠른 속도에 대한 반발과 한계에 부딪히면서 비껴가는 방법을 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며 “현대는 다양성의 사회인 만큼 이렇게 새롭게 나타난 가치관을 존중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예티족(YETTIE)
“일에서 얻는 성취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매일 야근에 휴일도 반납… 자기계발에 올인


20~30대 직장인 중에는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삶의 의미를 찾는 ‘다운시프트족’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일을 하면서 얻는 성취와 만족감으로 살아가는‘예티족’도 있다.

전통적인 일벌레가 단순히 본연의 업무에만 충실했다면 21세기형 일벌레인 예티족은 자신의 발전을 위해 일한다. 과중한 업무를 할지라도 언젠가 본인의 자산이 될 것임을 믿고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인기 게임 ‘카트라이더’의 개발자인 정영석(39) 넥슨 개발본부장은 대표적인 예티족이다. 정씨는 “게임 개발에 착수하면 남들처럼 7시에 퇴근해 집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2~3일씩 밤을 지새워야 할 때도 빈번하다”고 말했다. 전자공학을 전공했던 정씨는 대학 졸업 전에 그래픽디자이너로 게임 업계에 합류했다. 그리고 게임 기획자로 변신을 했다. 정씨는 “처음엔 대기업에 입사한 대학 동기들이 첫 해부터 많은 연봉을 받는 걸 부러워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며 “성장하는 게임 산업에서 게임 개발자로서 능력을 인정 받게 돼 더 큰 성취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정씨는 또 “끊임없이 새로운 걸 창작할 수 있어 행복했다”며 “하나의 게임이 탄생하기까진 극도의 긴장감의 연속이지만 여전히 이 일이 좋다”고 말했다. 정씨는 성공한 게임 개발자이지만 여전히 공부하고 있다. 게임과 마케팅과 관련한 기본을 쌓기 위해 9년 만에 대학을 다시 찾았다. 또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를 위해 영어, 일본어 등도 배우고 있다.

외국계 광고회사에 근무하는 장지영(36)씨는 매일매일 야근에 눈코 뜰 새 없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일을 할수록 자신이 발전되고 커가는 뿌듯함이 너무나 크다”고 말했다. 장씨는 “매일매일 새로운 광고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새로운 트렌드를 쉴 새 없이 공부해야 한다”면서도 “이 모든 노력이 훗날 나만의 고유가치를 높여 줄 것으로 믿는다”고 전했다.

▲ 밤늦도록 업무에 열중하는 사람들. / photo 조선일보 DB

케이블 방송사에서 케이블용 CF를 편집·방영하는 기획PD 박모(27)씨는 오전 8시에 출근해 새벽 2~3시에 퇴근하는 게 일상이다. 그렇지만 “지금 고생이 언젠가는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며 “때문에 ‘명문대 나와 왜 그러냐’는 주위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씨는 “지금 내가 하는 분야는 국내에 몇 명 없는 블루오션”이라며 “지금은 미개척 분야로 힘들지만 앞으로 더 큰 영향력을 가질 ‘내’가 되기 위해 당장의 피곤함은 참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예티족은 이 시대의 새로운 야심가”라며 “외환위기 이후 양극화 되고 치열해지는 사회 분위기를 다운시프트족과는 달리 ‘성취’라는 가치에 우선을 두고 발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뭐든지 한쪽으로 치우친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예티족과 다운시프트족 각각의 라이프 스타일이 조화될 수 있도록 사회·국가적 차원에서 교육이나 제도적인 극복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운시프트족  다운시프트는 ‘자동차를 저속 기어로 바꾼다’는 뜻으로 ‘다운시프트족’은 1970년대 이후에 태어난 유럽인 중에서 소득이 줄더라도 빡빡한 직장생활보다는 자기 마음에 맞는 일을 느긋하게 즐기려는 직장인이 늘어나면서 등장한 신조어다. 시작은 유럽이었지만 이후 미국·아시아 등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갔다. 시장조사기관 데이터모니터에 따르면 2003년 유럽에서 근로시간을 스스로 단축하거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직업을 바꾸고 도시를 벗어나 전원으로 이주한 경우가 1200만명에 달했다. 이 수치는 1998년 이후 6년 동안 약 30%가 늘어난 것이다.

예티족  예티란 ‘젊고(Young)’ ‘기업가적(En-Trepreneurial)’이며 ‘기술에 바탕을 둔(Tech based)’ ‘인터넷 엘리트(Internet Elite)’의 머리글자를 딴 ‘YETTIE’에서 나온 말이다. 이는 IT분야의 엔지니어뿐 아니라 마케팅, 홍보, 애널리스트 등 신(新) 경제 영역을 개척하면서 열정적으로 일하는 젊고 능동적인 직장인을 통칭하는 말로도 사용한다. 예티족의 특징은 민첩하고 유연하다는 점이다. 야근과 주말 근무도 마다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자기 계발에도 힘쓴다.

| 서일윤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가 보는 新 종족들 |

“고대엔 인종·종교에 따라 종족을 나눴지만 21세기에는 생각과 가치관의 차이가 기준”

최근에 다운시프트족, 예티족뿐 아니라 보보스족(물질적 실리와 정신적 풍요를 동시에 누리는 상류계층), 갤러리족(회사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바라만 보는 직장인), 셀러던트족(공부하는 직장인) 등 ○○족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종족을 찾아서’란 책을 내는 등 국내 종족 연구의 대표 주자인 서일윤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에게 현대적인 종족 개념의 탄생과 그 의미에 대해 들어봤다.

다운시프트족·예티족이란 용어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다운시프트족과 예티족은 언론이나 트렌드 연구가가 새롭게 창조해낸 집단이 아니다. 사회 발전과 환경 변화에 따라 같은 생각과 가치관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하나의 집단이 된 모습을 그 집단의 특성을 보여주는 단어로 명명한 것뿐이다. ‘다운시프트족’은 현대 사회의 일과 성공 중심의 사회 분위기에 반기를 들고 역행하는 집단이고 ‘예티족’은 이런 분위기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적응한 집단이다.”

21 세기에 종족 개념이 주목 받은 이유는 무엇인가. “과거 인종적·종교적·국가적 기준으로 논의돼 왔던 집단화의 본능은 현대 사회에 올수록 기호나 취미생활, 문화활동 중심으로 변화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종족들은 과거의 집단화 개념이나 국가적 문화 코드, 인종적 특성보다 세계 경제와 소비시장 등에서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가진 집단으로 성장한다. 때문에 학계나 매체에서도 이 새로운 집단이 만들어내는 문화적 특징과 사회 이슈에 주목하는 것이다.”

현대적인 종족 현상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1970년대 초반 ‘히피족’이 처음으로 언론 매체를 통해 보편화됐고 이후 ‘보보스족’ 등 과거의 틀로는 규명하기 어려운 새로운 집단이 등장하자 현대인의 종족 현상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시작됐다. 이런 과정에서 종족의 이름을 붙이는 트렌드는 언론 매체를 통해 전파됐고 보편적인 현대인의 특성을 담는 의사소통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종족의 의미와 가치는. “기업은 새롭게 등장하고 변화하는 종족을 통해 새로운 소비자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진화해 나가야 한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종족으로 범주화된 모습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찾아갈 수 있다.”


/ 김소연 인턴기자·성신여대 문화커뮤니케이션학부 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