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 네이버
인동초(忍冬草)는 이름 그대로 겨울의 모진 추위를 이겨내는 식물이다.
혹독한 추위가 몰아치고 눈보라가 퍼부어도
굳건하게 엷은 잎 몇 개로 자신의 생명을 지켜낸다.
옛날 백제에서는 인동무늬를 책보자기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른 일에 타협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옳은 일을 지켜내겠다는
선비정신을 ‘인동초’로 대신 그려낸 것.
“나는 혹독했던 정치 겨울동안 강인한 덩굴풀 인동초를 잊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바쳐 한포기 인동초가 될 것을 약속합니다.”
민주화 열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1987년 5월,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의 발언이 아니더라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은 인동초에 비유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의 삶은 선비들의 책보자기에 새겨진 그림 속 인동초가 아니었다.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부독재 시절에만
55차례의 가택연금, 6년여의 옥중기간, 두 차례의 망명, 수없이 넘긴 죽을 고비, 사형선고 등
그의 삶은 여린 잎으로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인동초의 삶, 그 자체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전해지자 수많은 사람들이 ‘인동초’라는 단어를
가장 먼저 떠올리며 그를 그리워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숲 속 어느 한 켠에서 이름 모를 풀이 되어 갖은 세파를 이겨낸 ‘인동초’로 비유되기엔
그의 가슴은 너무나 크고 광활했다.
“남이 알지 못한다 해도 하느님 앞에서 우린 모두 죄인이다.
난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난 모두를 용서했다.
나를 죽이려는 자들도, 나를 음해한 자들도.”
(김대중 옥중서신 중에서)
박정희 정권은 그를 바다 속에 수장시켜 죽이려 했다.
전두환 정권은 ‘내란 음모죄’를 씌워 그를 사형시키려 했다.
그러나 그는 옥중에서 자신을 죽이려던 이들에게 ‘용서’를 말하고 있었다.
글로만 남긴 게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97년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두환·노태우의 특별 사면을 건의하여 성사시켰다.
재임 중에도 전임 대통령으로서의 예우에 최선을 다했다.
오죽하면 서거하시기 며칠 전 전두환 전 대통령이 문병을 와
“김대중 대통령 재임시절이 가장 행복했다”고 회고했겠는가.
총칼을 겨눈 군사독재 앞에서도 의연했고,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의연했으며,
심지어는 자신을 죽이려는 자 앞에서도 진정한 화해를 보여줬던 그가,
통한의 눈물이 아닌 무너지는 슬픔의 눈물로 통곡하는 모습을 공개석상에서 보인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일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당신, 죽어서도 죽지 마십시오”라며,
“우리가 깨어 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죽어서도 죽지 않습니다”라며,
노 전 대통령의 죽음과 민주주의의 위기를 온 몸으로 안타까워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그런 그가 아직 국민들의 가슴 속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낸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한 겨울을 이기고 초여름에 피어난 인동꽃이 제 삶을 다한 후 스러지듯 생을 마감하고 떠나버렸다.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은
‘잃어버린 10년’을 슬로건처럼 외쳤다.
소인배들은 흉내 조차 내지 못할 ‘화해와 용서’, ‘철학과 신념’의 통 큰 정치를 보여준 두 거목의 10년 위업 앞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무너뜨린 10년’은 고사하고 자신들의 ‘초라한 1년’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대한민국 정치사에 가장 큰 업적을 남긴 큰 별이 졌다.
그가 자신의 목숨까지 담보로 내놓고 지켜낸 ‘민주주의’를 이젠 누군가가 지켜내야 한다.
독재정권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고 죽음을 기다리며 적은 잠언집에서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일갈한 고인의 외침이 귓가에 들리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