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317

돼지고기집 돼지는 슬퍼야 마땅하다?


BY 재재맘 2009-10-20

어제 퇴근길에 아들과 통화를 했는데 아들녀석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감기다 들어오려나?  남편이 애들에게 닭죽을 먹이잔다. 닭죽먹이고 푹 재우면 괜찮다고^^
그래서 아들과 딸, 남편과 나, 네 식구는
영양센터에 갔다.  삼계탕과 전기구이 통닭을 한마리 시켰다.
애들도 애들이지만 어제는 내가 입맛이 꽤 당겨서 참 맛있게 먹었다.
 
그러던 중 아들이 이런말을 한다.
아들: "엄마, 고기집에 가면요.. 돼지가 엄지손가락을 들고는 웃는 얼굴로 있는 그림들이 있잖아요...?"
엄마: "응, 그래"
아들: "근데 그게 제 생각엔 쫌 잘못된거 같아요."
엄마: "왜에?"
아들: "돼지들이 그렇게 웃고 있는게 이상하잖아요.  자기들이 잡혀먹는건데.... 울고 있어야죠."
         (아들은 엄지손가락 두개를 땅쪽으로 향하며 돼지가 슬픈 흉내를 낸다)
엄마: "어머, 그래 맞다. 네 말이 맞다"
 
돼지고기 브랜드 마케팅을 할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대부분 돼지고기 회사들이 '웃는 돼지'를 모델로 해서 자사의 브랜드를 광고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 때마다 나는 '돼지'가 아닌 '돼지고기, 육질' 등을 보여주는게 더 낫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물론 아들의 말처럼 우는 돼지를 내세우는 것도 말이 안되지만,  일단 돼지고기 브랜드에 웃는돼지를 쓰는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을 평소에 했었는데... 아들의 생각이 재밌다.
아들이 그린 그림이다.
 
원래 식당에 걸린 돼지고기는 이런 표정을 짓고 있어야 한단다..^^ (엄지손가락을 주목해서 보기 바람^^)

pig.JPG
 
 
그리고 이렇게 도망을 가는게 맞는지도 모른단다 ㅋㅋ^^
pig2.JPG

나는 이런 아이가 사랑스럽다. 구구단을 매끄럽게 다 못외워도 이런 아들이 참 좋다.
다른 시각을 보는 아이..
 
녀석이 저녁에 드라마를 보며 말한다.
 
아들: "엄마 왜 드라마에서 교통사고가 나면 왜 에어백이 하나도 안터져요?"
엄마: "어머, 정말, 그러네?"
아들: "원래 에어백이 터져야 하는데 맨날 저렇게 얼굴에 피흘리는 장면만 나와요."
엄마: (ㅎㅎㅎ 녀석 대단한데.. 난 늘 드라마마다 그런 장면이 나와도 그러려니... 했는데)
 
옆에 있던 남편은 한 술 더뜬다.
"아무래도 저녀석을 대안학교에 보내야하는거 아냐. 녀석의 독특함을 살려줄 수 있는..
아마도 선생님께 가서 '선생님, 드라마에서는 왜 교통사고 날 때 에어백이 안터져요?'라고 물었을 때
선생님은 '이 녀석, 넌 왜 공부안하고 드라마만 보니?' 라고 말하실까?
아님 '어머, 재용인 참 남들이 못보는 걸 보는, 좋은 장점을 가졌구나..!' 라고 칭찬을 해주실까?"
 
저 그림을 그리는 아들의 모습이 참 행복해보였다.
바로 전 엄마와 수학문제를 풀던 아들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누구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아들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아들이 원하는 삶을 행복하게 즐겁게 살 수 있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학년 2학기 들어서 '영어학원'을 그만두었다.
주변에 엄마들은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고 타박(?)이다.
영어에 대해선 나한테 더이상 묻지도 않는다. 아마도 그런 방면에서 우리 엄마들 사이에 나는 왕따일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이렇게 영어학원을 안보내도 되는건가?... 가끔 밥먹듯 갈등을 하곤 하는데..
아직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영어학원을 그만두게 했지만
아들의 상황과 선택을 존중하려고... 하지만 내 판단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맞는걸까?
 
그럴 때마다 위로가 되는건
'초등 저학년에는 아이가 사는게 참 재밌다, 행복하다, 세상은 살만한거구나'
라는 생각만 들게 하면 된다는 어느 소아정신과 의사가 쓴 책에서 읽은 한마디다.
 
어제 밤 재용인 행복했다.^^
 
작성자 재재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