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 아직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시계 바늘은 10시를 지나고 차츰 빗발도 심해지건만 남편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걱정이 되는 마음에 수화기를 들다가 이내 그만 내려 놓고 맙니다. 혹 제 전화를 받다가 운전 중에 사고라도 날까 두려운 마음때문입니다. 네, 저희 남편은 버스 운전 기사입니다. 평소에는 회사에서 운전을 하고 오늘 같은 주말에는 따로 차를 빌려 관광버스를 몹니다. 참 걱정입니다. 몸도 성치 않은 그 사람이, 방광, 당뇨, 위, 간 ..어디 하나 제대로 성한 곳이 없는, 몸무게가 채 50도 안넘는 그 사람이 자신의 몸보다 몇배도 큰 버스를 새벽에 죽한잔 마시고 늦은 밤까지 몰고 있습니다. 하루라도 약이 없으면 버틸 수 없는 남편은 그래도 웃으며 괜찮다고만 합니다...몸이 아파 잠을 자다가도 끙끙 시름을 내며 제대로 잠도 못이루면서,, 제가 놀라 일어나 어디가 아픈거냐고 물으면 이내 아픈 내색을 지우며 그냥 잠시 앓은 것 뿐이라며 그만 피곤할테니 그만 자자고만 하는 남편입니다. 그러고보니 남편과 함께 한지도 20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그 세월 동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신혼초 남편이 보증을 잘못 선탓에 신혼집 전세금까지 날리고 몇년을 그 빛을 대신 갚느라 정신없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거기에다 얼마후 남편이 병에 걸리고 회사를 그만 둔 후 집안의 생계를 제가 도맡아 했지요..아이 둘을 키우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공장에서 일을 하고 집안 청소를 하고...지금 생각해봐도 그 시절 참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제가 공장에 가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울고불며 엄마 가지마~라며 떼를 쓰던 아이들이 벌써 대학생이 되었고 남편도 비록 하루하루 약에 의지하지만 다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전에는 제 나이 50살이 되어서 처음 22평짜리 주공아파트, 우리집이 생겼습니다..어둠이 가득 드리워진 창가를 바라보니 빗발이 아까보다 더 거칠고 심하게 쏟아지고 바람 또한 지독하게 불어댑니다...문득 지난 저희 과거가 마치 저와 같다다고 , 그랬었노라고 생각되어집니다.. 그러나 저 비바람이 그치면 또다시 파란 하늘과 상쾌한 바람이 온몸에 스며들겠지요..아직도 저는 젊었을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공장에서 보냅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밥을 짓고 7시에 공장에 가서 10까지 내내 서서 일을 합니다. 귀를 꽝꽝 울리는 둔하고 탁한 소음과 기계들의 열기로 공장안은 온몸에 땀을 배이게 할 만큼 덥습니다. 내내 서서 일을 하므로 다리와 허리가 걸리고 지칠때로 지치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평온합니다. 왜냐하면 제겐 저를 어머니라 부르는 착한 아들 딸과 그리고 아내라 불으는 남편이 있으니까요..앞서도 말씀드렸다시피 남편은 몸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남편으로인해 가슴앓이도 많이 한 것도 사실이였습니다. 몇번이고 그런 현실을 탓하고 탓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럴때마다 제게 힘을 주는 남편이였습니다. 남편을 대신해 일을 하는 제게 미안해 하던 남편은 몸도 잘 가누지 못할때에도 제가 오기전에는 방을 닦아놓고 설거지를 해놓으며 이불 밑에 밥한공기를 넣어두었다가 제가 오면 밥상을 차려 두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밤엔 독한 공장 약품에 튀어 살이 부러터지고 부은 제 손을 어루만지며 울고 있는 남편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눈을 뜨면 남편이 민망해할까봐 일부로 눈을 감고 있는데 남편이 울면서 말했습니다. " 나 때문에 이 고생이구려. 남편이라고 해주는 것도 없고..한평생 이리도 고생만 시키기만 하구려. 미안하오, 미안해..다 내가 못난 탓이지..다 내 탓이야. 나 같은 놈만 안만났더라면 당신, 고운 옷 입고 잘 살 수 있었을 텐데..미안해. 미안하오..." 남편의 말에 일부러 잠든척 하고 있었는데..더더욱 눈을 질끈 감고 힘을 주지만 흐르는 눈물만은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힘든 생활에서도 제가 웃을 수 있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 이런 남편 때문입니다. 남편은 제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제게 있어 남편은 너무나 귀한 많은 것을 준 사람입니다.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두 아이들을 제게 안겨주었고 누구보다 진솔한 사랑으로 저를 어루만져 주는 존재이니까요..비록 50이 넘은 지금까지 고단한 삶이지만 저는 제가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물질적인 것이 아무리 풍족한들 마음이 괴로우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지금 제겐 작지나마 따스한 우리들의 보금자리가 있고 건강하고 착한 두 아이들이 있고 ..늘 제 손을 잡아주는 남편이 있으니 ..저처럼 행복한 사람도 드물것이라고 혼자 되뇌여 봅니다. 그 순간 초인종이 울립니다. 급한 마음에 얼른 문쪽으로 뛰어가 누군인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문을 엽니다. 역시 남편입니다. 비바람 때문에 옷이 다적고 머리가 흥클어진 남편의 오늘따라 유난히 더 작고 외소하게 보입니다. "많이 피곤하죠? 얼마나 피곤해요..이렇게 비바람 부는데 운전하느라 많이 고생했지요?..밥은, 밥은 먹었어요?" 안타깝고 걱정되는 마음에 한번에 이것저것 안절부절 물어봅니다. 그러자 남편은" 허허, 한번에 그렇게 많은 걸 물어보면 무슨 대답부터 해야하나? 비바람이 세긴 하지만 다행히 이렇게 잘 갔다왔지..당신도 오늘도 공장에 나갔으니 피곤했을텐데,, 열쇠로 열고 들어오면 되는데 자지 뭘하러 지금까지 기다렸소? " 라고 오히려 제 걱정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 저를 이끕니다. " 앉아보시오. 사실은 2시간전에 도착했었는데 뭐 좀 사느라 내 이렇게 늦고 말았지. 하, 이거 하나 사는데..내가 원체 이런 걸 사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그러면서 허겁지겁 윗옷주머니를 뒤적이며 뭔가를 꺼냅니다. " 어디 눈 한번 감아 보오." 별일이라 생각하면서도 눈을 감습니다. 그 순간 무언가가 제 손에 끼워집니다.. 눈을 뜨니 반짝이는 황금 빛깔 반지가 제 손에 끼어져 있었습니다. 깜짝 놀라 말을 잃은채 남편을 바라보니 " 미안하오. 비싼 다이아 반지도 못해주고 고작 이런 금가락지 하나 해줘서...보증 때문에 당신 결혼 반지까지 팔아서..당신 손에 그동안 반지 하나 끼워지지 않은 걸 보고 내 마음이 너무 안되어서..그래서 그동안 주말에 번돈 받은 걸 보아 이거라도 샀소...근데 너무 보잘 것 없지?...오늘이 당신과 함께 한 21주년인데..."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남편입니다.. 그 순간 제 눈에선 눈물이 흐릅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제게 남편이 있다는 것 그리고 제가 남편 옆에서 있을 수 있다는 사실..그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합니다. " 윤대 아빠, 제게 미안하다는 말 하지 마세요..전 당신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든든하고 행복한지 몰라요. 그렇게 아프면서도 늘 제 걱정을 먼저 하는 당신...오히려 당신께 저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 몰라요.. 우리 앞으로 더 아끼면서 건강하게 잘 살아요.. 정말 사랑해요. 윤대 아빠." 늦은 저녁밥을 물리치고 베란다 넘어 하늘을 바라보니 이젠 요란하던 비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런 일도 없었다듯이 고요한 어둠만이 가득 메워져 있습니다. 왠지 내일은 파란 하늘이, 따스한 햇살이온몸으로 느껴지는 그런 날이 올 것만 같은 느낌이 듭니다. 당신이 내게 선물해준 21년...
그 누구보다 저는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행복할겁니다. 당신이 내 곁에 있기에.. 나 또한 당신 옆에 있을 수 있음에
그저 그것만으로도 저는 행복합니다.
언제나 이렇게 사랑을 주는 남편에게,
아침부터 땀 흘리며 일하는 남편을 향한
향긋한 내음을, 사랑하는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도록,
그 향기로움으로 조금이라도 기운을 내실 수 있도록
꼭 남편에게 햇살 가득한 날 향기로움을 전하고 싶은
간절한 바람에서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