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宵小雨屋簷鳴(춘소소우옥첨명) : 밤에 봄비 내리고 처마엔 물 뜯는 소리
老子平生愛此聲(노자평생애차성) : 노자는 평생 동안 이 소리를 좋아했다오
擁褐桃燈因不寐(옹갈도등인불매) : 베옷 입고 등불 돋워, 잠은 오지 않고
對妻連倒兩三觥(대처연도양삼굉) : 아내와 마주 앉아 두세 잔, 술잔을 기울이네
이는 조선시대의 어떤 기인(奇人)이었던
석주(石洲) 권필(權韠)이 지은 ‘야우*잡영*(夜雨雜詠=밤비)’이란 글이다.
이 글에서도 금세 보이듯 권필은 무척이나 술을 사랑한 선비였음이 확연히 드러난다.
불과 열 아홉 살 때 진사 초시(初試)에 장원한 그는
복시(覆試)에서도 거푸 장원급제하는 재기(才器)를 뽐낸다.
그러나 당시 집권층의 눈에 거슬리는 글자로 인해
장원급제가 무효가 되자 비분강개하여 이후론 평생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벼슬을 아니 하고 초야에 묻혀있어 봤자
누구 하나 알아주는 이 없음은 불변의 어떤 이치이자 공식이렷다.
하지만 그에겐 담양 선비 송제민의 딸인 송씨라는 부인이 있었다.
그녀는 권필의 아내이기 이전에 마음이 맞는 벗이었고
아울러 권필의 모든 면을 진정 사랑한 여인이었다.
오죽했으면 그녀는 남편이 술을 먹는 것조차 사랑했을까!
권필이 몇 달 동안이나 잇달아 술을 마셨어도 송씨는 아침이면 일어나
또 한 잔의 술을 권하며 운(韻)을 띄워 권필로 하여금 시를 짓게 하였다.
이상은 <시대를 앞서간 한국의 괴짜들>
(신경림 외 19인 공저/ 영언문화사) 중 두 번째 대목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남편이 전날 밤 모처럼 하루 ‘날을 잡아’ 폭음을 하여도
바가지 긁기를 예사로 여기는 아낙으로선 도무지 이해 못 할 것이리라.
고로 송씨의 남편사랑이 지극했음은
위에서 본 권필의 ‘야우잡영’에서 이미 다 드러난 셈이다.
평생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았고 생업에도 등한시했던
권필이었다고 하니 송씨가 생계를 이어나가야 했음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다.
그래서 요즘 같은 시각에서 보자면 당장에
이혼감 영순위에 오를 것임은 자명한 노릇이다.
하지만 송씨는 자신의 남편만을 진정으로 사랑했다.
그랬기에 허구한 날 먹고 놀며 술까지 퍼 마시는
‘한심한’ 남편에게 이튿날 아침엔 다시금 술을 권하였던 것이었다.
지난해 이혼 건수가 6년 만에 증가세로
반전되면서 2007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통계청이 4월 21일 발표한 <2009년 이혼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이혼은
12만 4천 건으로 2008년 11만 6천 건보다 7천 500건(6.4%)이나 증가했다.
그래서 말인데 송씨와 권필처럼 평생토록 변치 않고
사랑한(했)다면 필경 이혼이란 아픔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느낌의 항구에 정박하게 되었다.
*잡영*(雜詠)= 여러 가지 사물(事物)을 읊은 시가(詩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