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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거리가 많은 집에선


BY 일필휴지 2010-04-29

 

며칠 전 일이다.

사이버 대학의 오프라인 강의가 있어 강의가 열리는 모 노총 사무실에 갔다.


여기선 우리의 주경야독 공부를 지원하는 차원에서 소회의실을 공짜로 내 준다.

더불어 커피와 녹차까지 전폭 지원해 주는 바람에 여간 감사한 게 아니다.


강의가 있는 날이면 으레 내가 가장 1등으로 도착한다.

그날도 이같은 패러다임엔 변화가 없었는데 소회의실에 가니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노총 사무실에 들어서니 재작년 함께

사이버 대학의 1학년으로 입학했던 동기생이 인사를 꾸벅 했다.

그 친구는 업무가 과중하여 현재는 학업을 일시중단한 상태다.


아무튼 동기는 동기였으므로 악수를 하면서 근황을 물었다.

“(재작년에 낳은) 아기는 잘 크지?”


“그럼요, 그나저나 홍 선생님의 자제분들은 이제 대학을 모두 마쳤지요?”

“그럼~ 아들은 취업까지 했는 걸!”


그러자 그 친구는 평소 비정규직의 권익보장을 위해

투쟁하는 업무답게 이어 묻는 말이 적이 내 마음을 출렁이게 했다.


“한데 아드님은 정규직예요, 아님 비정규직예요?”

“그야 물론 정규직이지!”


나는 지금껏 어언 30년 이상을 비정규직의 변방만을 떠돌고 있다.

그러하기에 비정규직에 대한 설움과 사회적 불이익의

상처와 앙금은 그야말로 켜켜이 쌓인 성(城)이다.


하여 아들과 딸만큼은 반드시(!) 정규직의 안락한 삶을 살기를 여망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바람을 먼저 이룬 게 바로 아들이다.


아들은 이른바 ‘스펙’을 쌓기 위한 열정의 과정을 이미 대학 1학년 때부터 열중했다.

토익과 텝스의 실력향상에도 부단한 노력을 기했음은 물론이다.


그러한 결과가 바로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대기업의 신입사원 공채 합격이란 귀결로 나타난 것이었다.

오늘도 비정규직의 내 생업은 어제와 별반 다름없이 지지부진의 연속일 게 뻔하다.


하지만 아들과 딸을 떠올리자면 이깟 빈한(貧寒)의

현실은 능히 이겨낼 수 있는 지엽(枝葉)적인 것이다.

아들에 반해 딸은 백수, 아니 이른바 ‘백조’이다.


그렇지만 대학원을 나와 석사학위까지 따고 나면

아들 못잖은 직장에 취업할 개연성이 높아 걱정을 안 하는 중이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는 <마음의 집>이란 글에서

‘먹을거리가 많은 집에선 저녁상을 금세 차린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아들과 딸은 내게 있어 먹을거리가 푸짐한 밥상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은 밥상에 고작 신김치와 보리밥만 달랑이지만

마음만큼은 그 어떤 진수성찬도 부럽지 않다는 주장이다.


먹을거리가 가득한데 무에 반찬걱정이 필요하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