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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어도 준치 썩어도 생치


BY 일필휴지 2010-05-06

 

다니던 직장을 나와 사무실을 얻어 독립한 건 약 4년 전부터이다.

4년 전에 근무한 직장은 개인 소유의 사업장이었는데

사장님이 사업을 접는 바람에 나 또한 덩달아 그만 두게 되었다.


나이도 나이려니와 더 이상은 구속되고

싶지 않다는 편견의 작용이 그처럼 독립을 하게 된 연유이다.

사무실을 혼자 얻기엔 벅차서 선배님과 같이

쓰는 걸로 얻었는데 하지만 매달 관리비를 내기에도 허덕여야 했다.


그럴 적마다 ‘사무실을 괜히 얻었네...!’라는 자괴감을 느끼기도 부지기수였다.

여하튼 이렇게 얻은 사무실에서 일하며 어쨌든

두 아이를 올 2월에 대학졸업까지 시킬 수 있었으니 천만다행이다.


오래 전부터 사무실로 들어오라는 ‘러브콜’이 있는 직장의 사장님이 계셨다.

그분과 그제 충남 대천항으로 회를 먹으러 갔다.


거기서 다시 나온 얘기가

“한 달에 수 십만 원이나 들어가는 사무실은

이제 접고 우리 사무실로 들어오시라.”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터였기에 흔쾌히 답을 드렸다.

“네, 그럼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니 오는 5월 17일부터 출근하겠습니다!”


병역의무를 필하고 처음으로 들어간 직장에서부터

나는 어쩌면 군계일학(群鷄一鶴)의 첨병(尖兵)이었다.

남들처럼 높은 학력이 있는 것도 아니요, 또한 늘상

군색의 경지를 벗어나지 못 하는 지리멸렬한 삶이 바로 나의 현주소였다.


그러하였기에 그야말로 앞만 보고 뛰는 준마(駿馬)처럼

그렇게 가히 절차탁마(切磋琢磨)의 각오로 업무에만 매진했던 것이었다.

그 결과 전국 최연소 영업소장의 위치에까지 올랐던 것이 나름의 객쩍은 자화자찬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선배님께는

“인생은 어차피 회자정리(會者定離)인 것이니

제가 여길 떠난다고 해도 헛헛해 하진 마세요.”라는 언질을 드린 바 있다.


서로가 어렵다 보니 늘 그렇게 상부상조하는 마음가짐으로 꾸려온 사무실이다.

때론 점심 값이 없어서 사무실에서 라면을 끓여먹기도 다반사였다.


그랬기에 벌써부터 서운한 감정은 이루 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긴 하더라도 이미 결정은 났다.


나는 이제 다시금 ‘직장인’으로 복귀한다.

앞으론 지금과 같이 헐렁한 입성이 아니라 건물과

그 직장의 ‘브랜드’에도 맞게끔 정장을 하고 근사한 넥타이도 매고 볼 일이다.


그 길은 물론 지금과 별반 다름없는 비정규직의 세일즈맨이다.

하지만 또 다시 제 2의 절차탁마 심정으로 업무에 매진하리라 다짐해 본다.


그렇게 또 열심히 일하여

본래 좋고 훌륭한 것은 비록 상해도 그 본질에는

변함이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

‘물어도 준치 썩어도 생치’라는 칭찬을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