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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심청이


BY 일필휴지 2010-05-25

 

언제부터인가 문자메시지를 보내도 당최 함흥차사였습니다.

그래서 “왜 내가 보낸 문자를 매번 ‘씹고’

답장조차 안 하는 거야?”라고 항변을 했지요.

그러자 아내 하는 말이 “안 보이는 걸 어쩌란 거야?”라는 겁니다.


그 때 당장에 안과에 갔어야 했었습니다.

아내는 당시부터도 시력이 매우 안 좋아졌거든요.

하지만 아내는 노안(老眼)의 일반적 증상 아니겠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더군요.


“그렇긴 하더라도 당신보다 나이가 더 많은 나조차 아직 문자(메시지)는 잘 보는데...”

지난 5월 8일 어버이날에 직장인인 아들이 집에 왔습니다.

여전히 시력이 안 좋다는 아내에게 안경을 맞추시든가

아님 당장에 안과에 가자고 성화를 부렸지요.

아내는 그러자 “내가 다 알아서 할 게.”라며 그 때도 간과하는 여유를 부렸습니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서 시력이 더욱 저하되었습니다.

만성 고삭부리인 데다가 눈마저 부실한 할머니 아닌 할머니가 된 아내가 가여웠습니다.

하여 장을 보는 일부터 심지어는 설거지까지도 제가 알아서 척척 하는 중입니다.


얼마 전 안경원에 간 아내는 거기서 시력검사를 받았답니다.

근데 안경원 직원 말이 안과에 가서 정밀진단을 받아보랬다네요.

안과로 이동한 아내에게 의사는 백내장 수술을 권했고요.

오늘 아내는 안과에 가서 수술 날짜를 잡는다고 했습니다.


“수술 일자를 잡는 대로 나한테 전화 해!”

아들과 딸이 모두 객지에 나가 있어 집에는 언제는 아내와 저, 둘 뿐입니다.

고로 아내가 수술을 받는 날이 되면 결근하고 아내를 부축해야 할 것입니다.

그 생각을 하자니 문득 ‘아내와 심청이’라는 느낌으로 마음이 짠했습니다.


즉 앞을 잘 못 보는 가여운 아내를

부축해야 하는 저는 어쩌면 심청이라는 그런 상념 말입니다.

심청의 아버지 심학규는 앞을 못 보는 사람이었지요.

그러다가 심청이 인당수에 빠진 뒤 후일에 왕비가 되자 눈까지 떴다지요?


물론 아내의 눈을 심학규에 비유한다는 건 너무 비약적인 것이란 걸 잘 압니다.

그렇긴 하더라도 모쪼록 아내가 눈 수술을 잘 마쳐 앞으론

모든 사물을 예전처럼 명확히 바라볼 수 있길 바랍니다.

아울러 잃었던 건강도 되찾길 소망합니다.

이게 바로 저와 아이들 모두가 바라는 공통의 화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