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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훈 이야기


BY 일필휴지 2010-05-27

 

“너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

이러시면서 아버지께서 작명하신 나의 원래 이름은 외자로 선(善)이다.


말 그대로 착하게 살아야 한다며.

이러한 아버지의 바람 때문이었을까...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나는 비교적 악하지 않고

착하게 살려는 기조를 견지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선친께서 그같은 바람을 나의 이름에 담으신 의도는

당신께선 한 때 주먹세계서 이름을 날렸던 때문의 반증 적 귀착이다.


그러다가 결국 초등학교에 진학하기 전 선친 친구 분의

“그 이름은 단명할 수야!”라는 작명에 의해 지금의 이름으로 고착화되었지만.


아들이 불과 세 살 일적에 타계하신 아버지는 나에게 더욱 심한 고립감을 안겨주셨다.

그래서 서둘러 둘째를 보게 되었는데 그 녀석이

바로 지금도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인양 나의 눈에까지 담겨있는 금지옥엽 딸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들)’이란 바로 이같은 주장의 뚜렷한 방증이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에 나름의 가훈(家訓)을 하나 만들었다.


구구절절의 내용보다는 함축적인 걸로 택했다.

그건 바로 <정직><성실>, 그리고 <신용>이었다.


진부한 얘기겠지만 정직이 사라진 가정과 사회는 거짓과 악당만이 판치기 마련이다.

성실하지 않으면 이 풍진 세상에서 등댓불조차

하나 없는 격랑의 밤바다인양 도통 살아나길 길조차 막연하다.


또한 평소 신용을 쌓지 아니하면 급한 경우

단돈 1만 원조차 주변에서 융통할 수 없다. 


하여간 선친께서 생전에 강조하셨던 ‘착하게 살라’는 주장의

핵심과 골격은 내가 정한 가훈 중 하나인 ‘정직’과 부합되는 것일 터이다.


이어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께서 가르쳐주셨던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는 주창(主唱) 역시 ‘성실’에 부응하는 것이라 알고 있다.


세월이 더 흘러 입사한 첫 직장의 신입사원 연수에서

소장님이 열변을 토했던 “세일즈맨은 실적으로 말한다”는

강조 또한 ‘성실’의 범주 안에 들어있음이라 믿고 있다.


그제 아들에 이어 딸과도 통화를 나누었다.

신입사원 아들에겐 “오늘도 힘든 하루였지? 기운 내!”라고 했고

백수인 딸에겐 또 무언가를 보내 줄 요량으로 “뭐 또 필요한 건 없니?”를 물었다.


둘 다 성년이라곤 하지만 모두 객지에 나가있는 터이다.

하여 내 마음은 늘 그렇게 어지러운 롤러코스트를

타고 있는 어린 아이들을 보는 양 위태롭고 헛헛하다.


바람이 있다면 두 녀석이 이담에 결혼을 하더라도

최소한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집에 왔다 갔음 하는 것이다.


더 늙어서 자식들의 관심조차 없다면 이게 바로

행시주육(行尸走肉)이지 무슨 사람다운 삶이라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