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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기 하나만 더 낳자!”


BY 일필휴지 2010-05-28

 

오늘도 새벽 2시를 갓 넘기자마자 눈을 떴다.

그리곤 안방을 나와 주방으로 가 식탁의 주전자에 담겨있는 보리차를 한 잔 마셨다.


그럴 즈음 뒷집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엊저녁 잠 자리에 들기 전에도 울던 아기였는데 ‘그놈 참 부지런도 하네!’.


아마도 배가 고팠든지 아님 기저귀에 오줌이라도 흠씬 쌌지 싶었다.

말을 못 하는 아기에게 있어 울음은 유일무이한 자신의 의사표현일 테니까 말이다.


아무튼 새벽의 정적을 깨는 아기의 울음소리였으되

그 소리는 분명 내 귀엔 천사의 음성으로만 들렸다.

더불어 꼼지락거리는 고사리 같은 두 손에 더하여

아기의 필수품인 기저귀와 속싸개, 그리고 배냇저고리와

가제수건 따위가 아예 ‘세트’로 묶여 기억의 창고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배가 풍선처럼 빵빵해진 아내가 우리 사랑의 결실인

아들을 낳은 건 폭염이 천하를 지배하던 8월 초순이었다.

당시 날씨가 어찌나 더웠는가 하면 아들을 낳은 지

불과 이틀도 안 되어 이 ‘미련퉁이’ 마누라는

옷을 죄 벗어던지고 냉수로 목욕을 했다는 사실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그 바람에 산모 딸의 바라지를 위해 와 계시던 장모님께서도 경악을 금치 못 하셨는데.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어도 시원찮을 마당에

찬물로 목간(‘목욕’ 충청도 방언)을 혀? 너 미쳤니? 그럼 이담에 골병든다!”


장모님의 예측은 맞아 떨어졌다.

아내는 진즉부터 골골거리는 고삭부리 아낙으로 ‘변질’되고 말았으니 말이다.


하여간 아들은 늘 그렇게 제 엄마의 젖이 부족했다.

그래서 낮이고 밤에도 젖을 보채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분유를 대령했으나 그건 입에 안 맞는다며 단 한 숟갈조차 먹으려 하지 않았다.

“애 하나 키우는 게 이리 힘들어서야!!”

주야장천으로 울어대는 아들에게 질린 아내는 다신 애를 안 낳겠다고 맹세했다.


하지만 그건 약 3년 뒤 공약(空約)으로 귀착되는 허언(虛言)이 되고 말았다.

아버님께서 갑자기 작고하시는 바람에 나는

극심한 정신적 공황의 늪에 빠지게 된 까닭이다.


“우리, 아기 하나만 더 낳자!”

어르고 달래고 ‘협박’까지 하여 아내의 몸은 다시 풍선이 되었다.


그렇게 하여 가까스로(!) 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딸은 누가 한 배에서 나온 자식 아니랄까봐서 제 오빠를 쏙 빼닮았다.

녀석 또한 분유라곤 구경조차 안 하고 오로지 모유(母乳)로만 자랐으니 말이다.


세월은 여류하여 두 아이 모두 대학까지 마친 성년이 되었다.

둘 다 빨리 결혼하여 내게 손자와 손녀를 어서 안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울든 싸든 내 핏줄이니 그 얼마나 예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