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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손자와 외손자


BY 일필휴지 2010-06-09

 

아내의 오늘 눈(백내장) 수술을 앞두고 어제 아들이 집에 왔다.

아빠가 알아서 챙길 테니 걱정 말라고 했으나

자타가 공인하는 효자인 아들에겐 소용없는 얘기였다.


저녁에 퇴근하니 벌써 집에 온 아들은 모처럼 우리 가족 모두 외식을 하자고 했다.

근데 마침 딸의 걱정 차원에서 오전엔 장모님도

우리 집을 방문했다 가셨다는 아내의 전언이 이어졌다.


아들은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도 모시고 같이 가자고 했다.

그래서 모처럼 우리 세 식구와 장인, 장모님까지

모두 다섯이 돼지갈비를 잘 하는 집으로 가기에 이르렀다.


푸짐한 고기에 냉면까지 먹고 나니 바늘만

갖다 대도 배는 금세라도 뻥하고 터질 것만 같았다.

모처럼 포식을 하신 때문이었을까...


장모님의 외손자 칭찬이 이어졌다.

“고맙다! 오늘 네 덕분에 잘 먹었다,

한데 힘들게 번 돈인데 오늘 과용을 해서 어떡하니?”


아들은 염려마시라며 거동이 불편한 제 외할아버지의 손을 잡아 일으켜드렸다.

커피 한 잔 하고 가라기에 처갓집에 들렀다.


간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으신 장모님께선 말동무가

왔다 싶었던지 최근의 불편했던 속내를 다시금 죄 ‘까발리셨다’.


내용인즉슨 대학에 이어 군복무까지 잘 마치고

대기업에 취업한 친손자가 하지만 제 친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너무도 무관심하다는 불평이셨다.


그 녀석은 아들보단 두 살이 연하인데 이런저런

곡절로 말미암아 어려서부터 장모님이 건사하다시피 하였다.

고로 따지고 보면 장모님이 자신의 친엄마 이상인 셈이다.


그러함에도 평소 안부전화는커녕 첫 월급을 받으면

부모님께 내복을 사 드린다는 한국사회의

어떤 전통까지도 치지도외했다는 따위의 불만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우린 장모님의 비난의 대상이 남도 아닌

처조카인 터였음에 그저 씩 웃으며 듣기만 하였다.

다만 “녀석이 신입사원인 데다가 경황없이

바쁘니까 그랬겠죠...”라는 얼버무림은 잊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은 맛없는 음식을 억지로 먹곤 명치끝에 꽉 챈 듯한 그런 불편함이었다.

“우리 그만 이제 일어서자꾸나.”

나의 재촉에 아들은 고개를 꺾어 인사를 드렸다.


“다음에 또 내려와 맛난 음식 사 드릴 게요.”

“그래, 잘 가거라.”


손자(孫子)에는 아들이 낳은 친손자와 딸이 낳은 외손자가 있다.

우리 속담에 ‘친손자는 걸리고 외손자는 업고 간다’는 게 있는데

그렇다면 이는 딸에 대한 어떤 극진한 사랑의 방증인 셈이다.


물론 속담과는 달리 되레 외손자를 걸리고

친손자만 업고 가는 할머니(할아버지)도 계실 터이다.


여하튼 여전히 제 외할머니로부터 귀염을 듬뿍 받는

아들이 마치 *결은신*과도 같아 나는 어제 마음이 흡족했다.

처조카도 앞으론 제 할머니께 더욱 관심과 정성을

쏟았음 하는 바람을 동시에 지니며 집으로 돌아왔다.


* 결은신(물이 새지 않게 하려고 기름을 발라 흠씬 배게 한 가죽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