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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는 신이 없다


BY 일필휴지 2010-06-25

 

어제는 퇴근하자마자 아내와 삼겹살을 먹으러 갔습니다.

간판이 매우 특이한 집(‘심청아 배고파’)인데 그러나 값은 매우 저렴합니다.


1인분에 고작 2,100 원이니 왜 안 그렇겠습니까!

값이 헐하다고 하여 맛까지 도매금의 같은 선상으로 봐선 곤란합니다.


일명 ‘대패삼겹살’로도 불리는 이 삼겹살은 달궈진

불판에 올리면 금세 익어 먹기에도 참 좋거든요!


아울러 파절이무침과 고추, 그리고 된장은 물론이요 김치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이 삼겹살을 먹자면 반드시 함께 먹어줘야 마땅한 부수적 양념까지를

손님이 맘껏 먹을 수 있도록 셀프서비스 체제까지 갖춘 식당입니다.


그러므로 아내와 둘이 가서 3인분(기본)에 소주 한 병, 그리고

밥 두 공기까지를 먹어 배가 남산만 하게 빵빵한 데도

불구하고 셈을 치를 적엔 고작 1만 1,300 원밖엔 안 나왔지요.


이 식당을 알게 된 건 불과 얼마 전입니다.

이 식당이 개업을 하면서 1톤 트럭에 마이크를 달고는

저렴한 삼겹살집이 문을 열었다는 광고를 요란스레 한 때문입니다.


하여 얼마 전에도 함께 와서 먹었는데 아내도 대단히 흡족해 했지요.

대저 우리네 서민들의 정서는 비슷한 법입니다.

즉 싸고 맛있는 식당이 제일이라는.


셈을 치르고 나오면서 아까 들어섰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아내의 손을 잡고 나왔습니다.

마치 그 식당의 간판처럼 심청이가 앞을 못 보는

자신의 아버지 손을 꼭 잡고 길을 인도하듯 말이죠.


그리곤 집까지 약 20여 분을 걸었습니다.

아내는 그런 와중에도 힘이 들다며 중간에

몇 번이나 앉아서 쉬었다 일어서길 반복했지요.


평소 가뜩이나 고삭부리 아내는 최근엔 양쪽 눈의

백내장 수술까지 받은 터여서 더욱 몸이 쇠잔해진 상태입니다.


그런 때문으로 어제의 식당 ‘나들이 ’역시도 어렵게 간 것이었지요.

우린 서민인지라 제 아무리 폭염이 맹위를 떨칠지언정

따로 짬을 내 피서를 간다는 건 솔직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어제처럼 냉방까지 잘 돼 있는 저렴한 가격의 식당을 이따금

이용하는 걸 개인적으론 나들이, 혹은 잠시의 ‘피서’라고까지 여기는 경향입니다.


전에는 고기가 먹고프다 싶으면 늘 재래시장에 가서

돼지고기 삼겹살에 이어 상추와 풋고추 따위를 아울러 사 와 집에서 구워먹곤 했지요.

하지만 방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구워먹는 치밀함 뒤에도

미끈미끈한 돼지고기 기름 튀김 현상은 여전했기에

찜찜한 구석의 앙금은 하는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여하튼 그렇게 다정하게 집으로 돌아오자니

저만치서 동네 할머니께서 아는 체를 하시더군요.


“날도 더운데 그렇게 다정하게 손까지 잡고 어딜 댕겨 오는 겨?”

우린 그래서 얼른 손을 놓았지요.


그러나 넉넉한 웃음만큼은 놓지 않았습니다.

<우주에는 신이 없다>는 데이비스 밀스가 쓴 책입니다.


이런 맥락으로 치자면 가정에도 가정의 안위와 행복만을

만들어내는 전지전능한 신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가정에는 부부와 가족 간의 사랑과 배려가 있기에

우린 제 아무리 빈곤이 몽니를 부릴지라도 기꺼이 순응하며

오늘도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