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당초 딱히 그러고자 하는 의도는 없었다.
다만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고 공부 역시도 미리부터
준비하면 쉽다는 걸 알게 된 건 초등(국민)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였다.
시험을 보는 족족 100점을 맞기 시작하자
단박에 성적은 반에서 1등으로 우뚝 올라서게 되었다.
“짜식~ 공부 되게 잘 하네!”
“그러게, 저 녀석은 우리완 달리 과외라도 받는 거 아냐?”
하지만 그같은 급우들의 시기심은 기우였다.
편부와 애면글면 어렵게 사는 처지의
가난한 놈이 어찌 감히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있었으랴.
다만 아버지께선 내 나이 여섯 살 때부터 천자문에 이어
한글공부까지를 두루 익히도록 매를 드신 적은 많으셨다.
아무튼 그 덕분으로 승승장구의 성적을
도출해냄에 따라 지금도 동창회에 나가면
‘공부 잘 했던 친구’로 기억되는 즐거움이 잔존한다.
그러나 인생사는 새옹지마(塞翁之馬)인지라
나의 ‘가방 끈’은 이런저런 풍상에 휘둘리다 그만 초등학교에서 정지되었다.
그게 천추의 한이 되었기에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과 관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아울러 ‘맹모삼천지교’를
능가하는 어떤 ‘맹부사천지교’의 극성까지도 마다치 않았다.
이런 나에게 아이들은 학교에서 경쟁적으로
상장을 받아오는 화합으로 맞장구를 쳐줬다.
그 여세를 몰아 딸은 또한 전교 수석으로 고교를 졸업한 뒤
모든 고교생들의 로망이랄 수 있는 S대를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반면 이 무능한 아빠는 여전히 빈곤의 뒤안길에서 서성이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딸내미처럼 1등을 전혀 하지 못 하는(했던) 건 아니다.
술을 잘 마시기론
“전국대회에 나가도 1등 할 거!”라는 게 평소 아내의 타박이니까. (^^;)
그제 저녁엔 지인들과 모처럼 한밭야구장을 찾았다.
곧바로 마주보이는 보문산 바로 아래의 야구장 전광판 앞에는
35와 23, 그리고 21이란 숫자가 또렷이 빛을 밝히고 있었다.
이는 ‘독수리 군단’으로도 회자되는 한화 이글스 야구단에서
우뚝한 족적을 남겼던 장종훈 선수(35번)와 정민철 선수(23),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송진우 선수(21)의 현역시절 번호가
3번째로 대전구장에선 앞으로 ‘영구결번’을 의미하는
의미와 칭송의 상징으로써 그렇게 반짝였던 것이다.
프로야구 관중 1억 명 돌파의 주역이기도 했던 그들은 이제 현역에서 떠났다.
하지만 그들의 현역시절 번호는 대전구장 외야석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음을 보자니 느끼는바 적지 않았다.
누구라도 자신은 물론이요 자녀들 역시도 공부와 인생에서도 1등을 하길 바란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무에 걱정이 있을까마는
좌우간 그 건 인위적으로 하기 힘든 영역임에 틀림이 없다고 보는 시각이다.
다만 바라는 건 대전구장 외야석을 오늘 밤도
환히 비출 ‘영구결번’의 숫자처럼 내 아이들이 어딜 가도
“그(저) 사람은 심신이 건강하고 따뜻해서 진정한 1등 신랑(붓)감!”이란
‘숫자의 칭찬’을 들었음 하는 것이다.
인간은 어차피 숫자라는 굴레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