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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렴 혼자 죽으슈”


BY 일필휴지 2010-07-09

 

운전면허를 취득한 건 지난 1988년이다.

경비를 아낄 요량으로 자동차학원을 다니지 않고 ‘독학’으로 면허를 땄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단번에 땄다는 건 아니다.

두 번 연속으로 낙방한 뒤 세 번째 도전에서야 비로소 면허를 손에 쥘 수 있었으니까.


당시는 내가 생업으로 하였던 일이 썩

잘 되는 그야말로 화풍난양(和風暖陽)의 호시절이었다.

고로 돈벌이 또한 잘 되었기에 차가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다.


아무튼 면허를 취득하자마자 당시로선 최신형인 승용차를 한 대 ‘뽑았다’.

그리곤 운전을 잘 할 요량으로 한적한 도로를 골라 막바지 주행연습에도 공을 들였다.


주변의 운전을 오래 한 지인이

“차는 초장부터 길을 잘 들여야 해!”라며 조언을 하였다.

그가 핸들을 잡고 나는 조수석에 올라 고속도로에도 진입했다.


바람처럼 잘 달리는 내 차에 새삼 탄복하며 나도 멀지 않아

지인처럼 폼 나게 운전을 잘 해야지... 라는 다짐을 마음에 집어넣었다.


그 즈음 동서형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차 샀다며? 내일 일요일엔 보문산 사정공원으로 와.

김밥이랑 돼지 불고기도 만들어 갈 테니까.”


“우리도 차 샀다!”며 아내가 방정(?)을 떠는 바람에 소문이 난 것이었다.

이튿날 아내와 아이들도 태우고 집을 출발해 보문산을 향해 출발했다.


지인으로부터 ‘개인연수’를 받기까지 했으나 역시나 초보는 초보였다.

불과 30여 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를 초보운전자답게

버벅대느라 한 시간도 더 걸려서야 겨우 사정공원의 초입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초행길인 데다가 길을 잘 못 드는 바람에

고갯마루 부근에서 그만 차의 시동을 꺼 먹게 되었다.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운 채 시동을 걸어봤으나

시동이 걸릴만하면 차는 자꾸만 뒤로 가는 게 아닌가!

아연긴장하면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궁여지책으로 차의 뒷바퀴에 돌을 괴고 가까스로 시동을 거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브레이크 페달과 가속 페달을 동시에 떼고 밟는데 아직도

익숙지 않은 초보였음에 차는 또 시동이 꺼지거나 아님 뒤로만 가려고 난리였다.


“이러다 우리 식구 다 죽겠네!”

겁이 난 아내는 서둘러 아이들도 데리고 하차했다.


당시는 지금처럼 휴대전화가 없는 시절이었기에

아내는 형님에게 달려가 SOS를 청해야 했다.


겨우 그 난관을 벗어나긴 했으나 대저

자라보고 놀란 가슴은 솥뚜껑 을 보고도 놀라는 법이었다.


“오늘은 야외로 나가 갈비라도 뜯고 올까?”

그러나 아내는 눈에 쌍심지를 켜면서 동시에 손사래까지 마구 쳤다.


“혼자 가서 실컷 드슈, 난 더 살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