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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생을 사랑하는 연유


BY 일필휴지 2010-07-17



지난 달, 모 문학회에 응모한

신인작가 공모전에서 수필 부문으로 등단의 기회를 얻었다.

 

기쁜 마음에 친구와 지인들에게 문자메시지를 일괄(一括)로 보냈다.

내용은 길지 않았으되 다소 협박조(脅迫調)였다.

 

이래저래하여 작가가 되게 생겼으니 축하해 주시면 고맙겠다고.

그리 하면 ‘자그마치’ 3대에 걸쳐 복을 왕창 받으실 거라고.

 

의도했던 바대로 답신은 100% 다 왔다.

직접 전화를 걸어온 이들을 포함하여.

 

며칠 뒤 초등학교 동창회 대전분회 정기모임 날짜의

조율관계 차원으로 총무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데 친구는 정작 본론은 생략한 채

다짜고짜 칭찬의 덕담부터 소나기로 퍼붓기 시작했다.

 

“네가 올해는 운수가 대통하는 해인가 보구나!

아들은 대기업에 들어갔지, 딸은 서울대롤 졸업했지,

그도 모자라다고 너마저 이제는 작가가 되었으니 말야...”

 

대저 칭찬이란 건 다다익선인 법이다.

그렇긴 하더라도 연신 부럽다는 친구의 전화에

나는 점점 무어라 대꾸할 지 딱히 맞춤한 피난처를 찾을 수 없었다.

 

“고마워! 등단식 마치고 와서 한 턱 낼게.”

같은 고향서 나고 자란 우리는 같은 초등학교까지를 다닌 명실상부한 ‘불알친구’들이다.

 

하여 대전 동창회 때의 언젠가는 여자 동창들에게도

“우린 다 불알친구들이여.” 라는 얘길 했더니

단박에 면박(面駁)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우린 여자인데 불알이 어딨니?”

“.......”

 

세월은 여류하여 우리들은 이제 머리가 벗겨진 50대 아저씨로,

또한 뱃살이 푸짐하여 마치 임신한 여자인 양의 아줌마들로 변모했다.

 

그렇지만 우린 지금도 만나면 그 옛날 같은 동네서

어울리며 비석치기며 고무줄 놀이를 했던 악동시절로 회귀한다.

 

식당에서의 1차 뒤 2차인 노래방으로 이동하면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모나리자>를 필두로

<나 어떡해>와 요즘 히트곡인 <사랑을 한 번 해 보고 싶어요>까지도 두루 합창한다.

 

그러면서 우린 다시금 우정이란 탑에 견고한 주춧돌을 더욱 끼워 넣는 것이다.

기왕지사 ‘불알친구’의 얘기가 나온 김에 첨언하지 않을 수 없게 생겼다.

 

‘불알 두 쪽만 대그락대그락한다’는 속담이 있는데 내가 꼭 그랬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 이 속담처럼 나는 참 거지보다 없는 삶을 살았다.

 

그것도 참 오랫동안이나.

그래서 자격지심에 동창회에도 한동안 의도적으로 나가지 않곤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동창들은 여전히 변함이 없는 동화속의 순수함 그대로였다.

여하튼 친구의 덕담(德談)에 나는 속으로 이렇게 읊조렸다.

 

‘니들 모두를 사랑한다!!’

유치한 고백이었기에 차마 밖으로 표출하진 못 했으나 그건 나의 진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