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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상에 눈뜨게 해주는 오감의 열림과 닫힘


BY 짠순이 2011-01-26

자기 자신과 마주하기
내면의 자아와 이야기하기
말은 멋있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막연하고 막막한 일이다.
 

우리는 바빠서 자기 내면을 들여다 볼 시간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은 내면을 들여다 보기 두려워서 바빠 버리는 것이 아닐까?
 

올 해가 시작되면서 스스로에게 약간의 시간을 줘본다.
모든 주변 상황을 무시하고 자신과 온전하게 대화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싶은지 소위 '내면의 자아'와 이야기 해 보겠다고...
 

그런데 자꾸 잡생각이 끼어들면서 고요해지기가 어렵다.
게다가 뭔가 바쁘게 일하고 있지 않는 자신이 점점 초조해진다.
'마냥 이러고 있으면 안되는거 아냐?! 뭐라도 해야 하는게 하냐?'
 

들려오는 소리들, 보이는 영상들, 자꾸 일상으로 되돌리려는 냄새, 맛, 촉감의 자극들...
이것들을 모두 차단한 후에 찾아오는 건...
무료함. 외로움. 공허함.
결국 아무것도 만나지 못할지 모른다는 초조함.
내적 세계에 머물다 현실로 돌아오지 못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바쁘게 달려온 사람들이 정작 견디기 힘든 건 참을 수 없는 '심심한'시간들인지도 모른다.
조미료에 익숙한 사람이 양념이 전혀 안된 음식을 먹는 듯한 그 심심함...
 

============================================================<오감의 열림>과 정반대의 것을 해보는 거야. <오감의 닫힘.>
그녀는 청각기관의 스위치를 누르는 자신의 모습을 이미지로 떠올려, 귓속에 흘러들어오는 음향을 중단시킨다.
마찬가지로 시신경의 전기를 끊음으로써 영상의 유입을 멈추게 한다. 냄새와 맛과 촉감도 정지시킨다.
마침내 그녀는 그녀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그녀는 지금까지 자신이 만났던 것은 꿈속의 카산드라와 테러리스트들과 미래 세대들의 재판정과 그녀의 두려움들과 욕망들이었을 뿐, 그녀 자신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 이게 바로 한 개인의 진정한 힘의 근원이야. 자기 안에 하나의 내적 세계를 숨기고 있는 것… 그렇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고 자기 자신과 무한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 젊은이들이 침묵과 무위를 견뎌내지 못하는 것은 그들에게 자신의 내적 세계를 가꾸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래서 혼자 있을 때 그들은 자신에게 할 말이 하나도 없지. 하지만 난 나와 이야기할 수 있어
 

-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카산드라의 거울2> p. 1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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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조언해 준다.
그 심심한 시간들을 잘 보내보라고...분명 그 끝자락에 뭔가가 잡힐거라고...
정신없는 잡음을 끊고,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나 자신과 대화하는 것을 나는 지금도 시도하고 있다.
결국 무엇과 만날지는 모르지만, 뭐든 만나게 되겠지...내가 의도한 것이니까...
 

카산드라를 읽으면서 내 안에서 들려오는 말들을 적다보니,
책 속의 그녀의 여정이 어느 순간 나와 무관하지 않게 되어 버렸다.
 

' 두 여정 모두에 축복이 있을지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