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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과 내리막


BY 미개인 2014-06-17

어떤 것이든 정상에 오른 순간부터 조금씩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라시안--

 

그라시안(1601~1658) 스페인.철학자.작가.

간결하고 미묘한 언어 속에 과장된 재치를 담아내는 사유양식인 콘셉티스모의 대표자로 알려져 있다.

예수회 신학교 학장을 역임했으며,그의 초기작은 대개 세속생활의 윤리를 가르치기 위해 쓰여졌다.

깜짝 놀랄 만한 은유를 사용해 끊임없이 독자에게 충격을 주는 기발한 작법과 콘셉티스모에 관한 그의 문학사상은

'미묘함과 천재예술' 속에 잘 드러나 있다.

상급 성직자의 눈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3부작 철학소설 '비평쟁이'를 익명으로 발표했는데,

19세기 독일의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이를 지금까지 쓰인 가장 훌륭한 책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했다.

 

산행을 하면서 느끼는 것인데...

올라가는 길이 있으면 반드시 내려가는 길이 있다.

크고 작은 오르막 내리막을 오르락 내리락 하다가 정상에 올랐지만,거기 머무는 시간은 아주 잠깐.

대부분의 정상은 아주 좁아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가 보여 오래 머물 수가 없다.

그리고 집에 돌아갈 생각을 하면 아무도 없더라도 오래 있을 수가 없다.

살갗을 파고드는 차가운 바람에 밀려 서둘러 내려오게 된다.

내려오는 길도 시종일관 내려오기만 하는 게 아니다.

하산을 하면서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된다.

그리고 내려오는 게 올라가는 것보다 더 힘들고,무릎 등을 다칠 위험도 커진다.

우리들 인생과 한 치의 차이도 없이 똑같지 않은가?

 

우린 평생을 살면서 딱 한 번만 정상에 오르고 나머지를 내려오는 데 전적으로 할애하진 않는다.

인생의 피크가 있고,거기서 내려오다가도 다시 오르고 그러다 다시 내려오고를 반복하는데,

그 하산 길에 조금만 삐끗하면 황천길에 접어들 수도 있고,크게 다칠 수도 있다.

그 피크에서 오래 머물고 싶어하다가 끝내 집에도 못 돌아가고 마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스티븐 잡스의 경우를 보더라도 어렵사리 정상에 올라서도 더 높은 곳만 바라보며 마구 치오르다가 

안락한 집에서의 휴식은 취해보지도 못하고 정상에서 인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빌 게이츠는 정상에 오른 후 이내 하산길에 접어들어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와 편안히 쉬고 있다.

적절히 나누며 존경도 받고,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하산길을 여유있게 누리고 있다.

산행을 갔다가도 일찌감치 서둘려 내려오면 주변 관광지를 한두 곳 더 보고,맛있는 음식도 맛볼 수 있는 것과 같다.

설악산에 부지런히 올라 대청봉에 오른 후 기념사진 한 방 찍고 서둘러 내려오면,

예약해둔 차시간이 한참 남아있어서 속초쯤에 가서 시장구경도 하고,시장 좌판에 퍼질러 앉아 맛있는 회도 양껏 먹어볼 수 있잖은가?

 

큰 그림을 그리자.

그리고 그 그림에 마디를 정하고,분수에 맞게 에베레스트를 오를 것인지,북한산을 오를 것인지를 계획하고 ,거기 맞춰서 준비를 하고 오르기 시작하자.

언제까지 오를 것인지를 정하고 부지런히 오르고,정상에 다다르면 거기 만족하고 내려오자.

그리고 집에 가서 씻고 편안히 쉬면서 산행일지도 쓰고,누군가 나와 비슷한 길을 가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정리하자.

그런 느낌과 경험 등을 나누며 유유자적하고,분수에 맞게 산책이나 하면서 내리막길을 마무리 하면 되는 것을...

오르고 또 오르려고만 하면 산에 오르다 힘이 달려 오르는 길위에서 노상객사를 하고 말지도 모른다.

정상에 다다르면,피크에 당도하면 바로 내리막길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산행일지를 쓰면서 추억하는 기쁨도,후배들에게 경험을 나누는 것도 못하고 ,더 높은 어떤 산에 오르는 길에서 쓰러지고 말 것이다.

 

나는 산엘 오르기 시작하면 앉아서 쉬지를 않는다.

꾸준히 오르고 내리며 마무리를 하는데,템포를 조정하는 것으로 휴식을 대신하고,요깃거리도 간단한 것으로  준비하고 걸으면서 요기를 한다.

마구 달리듯 오르는 사람도 보곤 하지만 중간에 지쳐서 늘어져 있는데,

느릿느릿 볼 거 다 보고 ,가끔은 올라온 길을 되돌아도 보면서 걷는 나와 별로 차이가 없다.

그리고 산행을 하면서도 길이 아닌 곳을 탐험하듯 헤매는 걸 좋아하는데,

조금은 험하고 걸리적거리는 것도 많지만,의외의 장관을 보게 되거나 ,아기자기한 모습을 접하는 나만의 기쁨이 있어서이다.

물론 그런다고 늘 그런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그런다고 하더라도 남들이 가는대로만 가지 않은 것에 대한 자부심이랄까?그런 게 있다.

 

인생을 마라톤이나 산행으로 자주 비유하곤 하는 나이니,나의 인생도 산행 스타일과 비슷하다.

체력도 능력도 부족하니 남들처럼 잘 뛰진 못하지만,대신 꾸준히 쉬지 않고 가자는 철학이다.

그러면서 잠쉬 뒤도 돌아보고,길 가의 자그마한 야생화에 취해도 보고,지나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덕담도 주고 받으면서 ,

재미있고 즐겁게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가고 있다.

내가 50대 초반이니 너무 빠른 것도,너무 느린 것도 아닌 것이라 생각하고 이후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스스로 호구지책을 마련하고,불의와의 투쟁도 하면서 ,나누기도 하고,꿈까지 틈틈이 꾸고 있으니...

나는 이런 내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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